2025 법무사 2월호

했다. 삼삼오오 동기회 모임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조합 은 항상 실망스러웠다. 거의 모든 술자리에서 영교는 ‘고 주’로, 난 ‘망태’로 개명하곤 했으니까. 내 새벽잠을 깨운 것이 추위인지 두통인지 전혀 가 늠되지 않았다. 으깨질 듯 욱신거리는 두통을 달래려 두 손으로 머릴 감싸자, 이번에는 아랫도리가 끊어질 듯 아 리고 시렸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뒤 방구석을 둘러봤 다. 숙직실을 채운 세간은 무척 단출했다. 일으킨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간이침대와 출입문 곁에 놓여있는 탁자. 그 곁의 이인용 소파…. 와이셔츠 차림으로 침대 위에서 영하 이십 도를 견 딘 내 몰골은 차라리 호사스럽다. 소파 위에 웅크린 모습 으로 잠든 누군가가 있었다. 사내 외투를 뒤집어쓴 덕에 얼어 죽지는 않은 듯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필름이 끊기기 전의 가뭇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그 존재가 ‘고주’일 거라 판단되자 적이 황당하였으나, 당황 도 잠시 우선 그녀의 안위가 걱정됐다. 슬쩍 외투를 들어 올려 옷매무새까지 확인했다. 틀림없는 영교였다. 에르메 스 숄더백을 베개 삼은…. “밤일들은 제대로 했냐, 우리 모교 운명이 너희 둘 밤 종사(從事)에 달려있다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반장과 부반장의 조합, 그 이세(二世)에 대한 우리 동기들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지?”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 숙직실 출입문이 덜컥 열렸 다. 탁자 위 빈 소주병과 부스러기 안주를 치우는 동이 녀석이 선창하면, 국자로 해장국을 퍼 나르는 점이 년이 후렴하는 모양새다. 귀가 차량의 출발은 오후가 되어서야 가능했던 건 지난 밤 과음한 탓도 있지만, 굳이 변명거리를 찾는다면 지독한 추위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중부에 해당하는 이 곳이 서울 이북 지방 추위를 뺨치는 건 독특한 산세(山 勢) 때문이다. 백두·태백 준령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던 칼바람이, 잠시 산세가 끊긴 이곳에서 서쪽으로 풍향을 바꾼, 그곳에 우리 학교가 있다. 한겨울에 틀어둔 에어컨 방풍구 앞이라고나 할까! 서릿발을 긁어낸 SUV 차량 네댓 대가 거의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영교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SUV에 몸 을 실었다. 상행선 뒷좌석 차창문이 열리고, 열린 창문으 로 영교가 상반신을 내밀었다. 내민 얼굴이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다. 되새김질로도 숙성을 마치지 못한 술 때문일 까, 아님 옛 추억 때문일까. 서릿발을 긁어낸 SUV 차량 네댓 대가 거의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영교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SUV에 몸을 실었다. 상행선 뒷좌석 차창문이 열리고, 열린 창문으로 영교가 상반신을 내밀었다. 내민 얼굴이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다. 되새김질로도 숙성을 마치지 못한 술 때문일까, 아님 옛 추억 때문일까. 75 2025. 02. February Vol.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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