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기보단 저 바다를 훌쩍 뛰어넘어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어볼까 하는데….” “글쎄, 작품의 독창성은 그곳에서도 충분히 인정받 았다니까.” 그다음엔 어김없는 그림 강매이다. 강매 대상이 친 구쯤에 이르면 사태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그림 매매 뒤 의 진한 소주 파티, 따로 차비 조로 줘야 하는 금전 등 등…. 모두 단단히 경을 치른 경험이 있는 터라, 그의 작 품론을 귓전으로 흘려버린다. 그에겐 이런 태도가 무척 이나 섭섭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야, 너 정물화 상당히 괜찮던데 좀 많이 그려서 팔 면 어떻겠니. 하룻밤에 열 장도 그릴 수 있다며….” “너의 꽃이나 과일 그림, 실물하고 똑같더라. 어쩜 그렇게 그릴 수 있어!” “상상화니 비구상이니 하는 그딴 어려운 그림은 모 르겠고….” “인마, 싸구려 그림도 좋으니 좀 많이 그려 팔아라. 너 나이도 생각해야지.” 그러나 친구들의 이런 조언이나 간섭이 그에게는 전 혀 족쇄가 되지 못했다. 어쩜 이런 참견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경의 잠꼬대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야, 이 인간들아, 버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쓸 줄도 알아야 한다.” “동양화가 어디 그림이디!” “피카소는 고사하고 신윤복이도 모르는 주제에….” 이때 그가 언급하는 동·서양화나 등장인물을 화풍 으로 바로 연결했다간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최측근이 아니면 대화(對畵)로 오해하기 ‘딱’ 좋은 그의 망발은 기실 여성편력에 대한 자부였다. 사업차 방문한 뉴욕에서 화가들을 만난 것은 전공 이 전공인지라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자기 앞에 금발미 녀가 줄을 선 것은 뜻밖이라 했다. 호주머니(monny)를 염두에 두기에 앞서 그림으로만 서양화를 익힌 자신에게 걸어 다니는 서양화는 매우 낯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색함도 잠시, 금발미녀가 “Oh, my Oriental handsome guy!”라 속삭이며 팔짱을 끼는 순 간부터는 그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대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호주머니의 머니 로 그치지 않고, 타임스퀘어 상가 쇼 윈도에 당번을 선 쇼걸에 합당한 인건비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광고회사 자본금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그러든, 마흔 문턱에 든 빈털터리라고!” “어딜 가나 여전히 들려오는 이십 대 여성들의 저 아우성, 들리지 않던?” 그런 술자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기도 전, 또다시 그의 부름이 반복된다. “어이, 좀 나와 봐라.” 누가 동행하였노라는 사족은 필요 없다. 그 의기양 양한 ‘톤’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옆자리에 젊은 여자 팬 이 있기 마련이니. 대부분이 스무 살 후반쯤 되는 여성의 공통된 특징은 무언, 무변, 무예측이다. 삼 불가사의(三 不可思議)! 전혀 말이 없고, 무슨 말 을 들어도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고, 직업을 감 잡을 수 없다는. 이를 꿰뚫어 본 그는 -그런 날이면-영락없이 무 전취식(無錢取食)에다 여비 명목으로 상당한 돈을 요구 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던 그의 작품 활동이 뚝 끊겼다. 막걸리촌 골목을 드나드는 횟수마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병색이 완연하여 돌이킬 수 없을 무렵이 되어서였 다. 간 경변으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그의 발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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