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3월호

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로맨틱한 동화 속 신데렐라 이야 기 같다. 하지만 막상 황제의 여자가 된 엘리자베트의 삶 은 꽃길과 거리가 멀었다. 귀족이지만 자유분방한 환경에 서 자라온 그녀에게 엄격한 황실 생활은 답답함 그 자체 였고,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로부터는 지독한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다. 워커홀릭에 마마보이였던 남편, 프란츠 요제프는 그 녀를 지극히 아꼈으나 막상 아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지 는 못했다. 고독과 우울에 시달리던 엘리자베트는 자신 을 가꾸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피부 관 리, 옷맵시 등에 모든 것을 투자했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 기 위해 매일 우유와 오렌지 6개로 끼니를 때웠다. 속박에서 도망치기 위한 엘리자베트의 또 다른 선 택은 여행이었다. 그녀는 극소수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유 럽 전역을 누비기 시작했다. 황실에서의 업무수행과 자녀 교육도 나 몰라라 했다. 황후의 이러한 처신은 국민들의 불신과 온갖 구설들을 낳게 된다. 결국 그녀는 스위스 여 행 도중 무정부주의자 루케닌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 을 맞았다. • 제비꽃 설탕절임, 고독했던 황후의 최애 간식 생전에는 훌륭한 황후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워낙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때문인지 오늘날 오스트리 아를 방문하면 엘리자베트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의 호프부르크에 있는 ‘시씨 박물관’에는 그녀가 생전에 입었던 드레스와 사용하던 물건들, 심지어 암살도 구까지 전시돼 있다. 황제 일가가 살던 쇤부른 궁전에서도 프란츠 요제 프 일가의 발자취를 보존하고 있다. 기념품 상점에서는 시씨와 관련된 ‘굿즈’가 넘쳐나는데, 그중 하나가 ‘제비꽃 설탕절임’이다. 엘리자베트는 외모 관리를 위해 식단을 엄격히 제 한하면서도 가끔씩은 폭식을 했고, 달콤한 간식을 먹으 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그녀의 최애 간식이 바로 ‘제비꽃 설탕절임’과 ‘제비꽃 샤베트’였다. 제비꽃은 황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했다. 황 실에 과자류를 납품하던 카페 ‘데멜’에서는 설탕 옷을 입 힌 제비꽃과 샴페인을 섞은 제비꽃 샤베트를 진상했고, 이들 메뉴는 지금도 현지에서 판매 중이다. ‘제비꽃 설탕절임’이라고 하면 일본 작가, 에쿠니 가 오리의 동명 시집이 먼저 떠오른다. 진짜 이런 게 있을까 싶겠지만 유럽에서는 설탕 옷을 입힌 제비꽃잎을 생각보 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주전부 리로 좋아했다고 하며, 제비꽃의 고장으로 알려진 프랑 스 남부 툴루즈에서는 꽃잎으로 만든 시럽, 리큐어, 아이 스크림 등을 관광 상품으로 판매한다. 꽃으로 만든 음식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이른 봄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놀이를 즐겼다. 다만, 꽃 자체가 별다른 맛과 향이 없 다 보니 운치에 더 치중하는 느낌이다. 이는 일본에서 봄 철 시식으로 먹는 벚꽃차, 벚꽃 절임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장미나 제비꽃처럼 강한 향을 지닌 꽃을 음 식으로 활용할 경우, ‘화장품’이 연상되며 호불호가 갈리 곤 한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식용 장미를 가공해 잼이나 시럽으로 만든다. 오스만 시대 술탄이 즐기던 귀한 음식 이었다고 한다. 제비꽃 역시 향을 즐기기 위해 활용되는 식용 꽃이 다. 우리나라에서 봄철 피어나는 작은 제비꽃을 생각하 면 그 향이 금방 연상되지는 않지만, 워낙 변종이 많은 식물이다 보니 향수나 화장품, 식품으로 쓰이는 종류가 있다. ‘제비꽃 설탕절임’은 꽃잎의 모양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공정을 거치는 고급 과자이므로 지금도 고가 에 팔린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섬세한 제비꽃에 황후 엘리자 베트는 자신을 투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꽃이 되려는 강박 대신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가치를 알았더 라면 그녀의 삶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77 2025. 03. March Vol.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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