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었다. 민수 씨는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흥의 행방을 찾아다녔지만, 그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 다고 했다. 심지어 SNS 메신저의 대화 기록조차 모두 사 라진 상태였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가출은 민수 씨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안겼다. 그동안 아내를 위해 쏟은 애정과 금전 적 지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렘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 다는 사실에 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한국에 입국해 영주권을 얻을 목적으로 자신과의 결혼을 이용한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민수 씨가 다시 필자를 찾아왔다. “이제는 아내가 떠난 현실을 인정하고, 법적으로 혼 인관계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혼인무효나 혼인취소는 어려워, 결국 이혼소송 제기 필자는 서둘러 법률적 검토에 착수했다. 우선, 혼인 무효나 혼인 취소를 통해 결혼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지 검토해 보았다. 민수 씨의 경우, 「민법」 제815조제1호 에서 정한 혼인 무효 사유인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사례에 대한 판례(2022.1.27.선고 2019므287판결)가 존 재해, 이를 바탕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다. 판례의 사실관계는 베트남 배우자가 대한민국에 입 국하여 3주 만에 가출하였고, 지속적으로 금전을 요구하 면서도 동거기간 성관계를 갖지 아니하고 가출을 했다는 점으로 원심에서는 혼인무효사유로 인정했지만, 대법원 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이 베트남 배우자와 혼인할 경우, 대 한민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베트남 법령 에 따라 혼인신고 절차를 마치고 혼인증서를 교부받아야 한다. 이후, 베트남 배우자는 출입국관리법령에 따라 결 혼동거 목적의 사증을 발급받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혼인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양국 법령에 따른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상 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혼인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할 때, 단순한 사실관계만으로 배우자의 혼인의사를 쉽게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즉, 대법원은 외국인 배우자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다음 단기간 내에 가출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 로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외국국적의 아내가 진정한 혼인의사를 가지고 결혼하여 입국하였더 라도 상호 애정과 신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 에서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인 부적응, 배우자와 성격차이 등으로 단기간에 혼인관계의 지속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결국 외국인 아내가 혼인신고 당시 명백히 혼인에 관한 진정한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 를 면밀하게 심리해서 혼인무효 여부를 결정하므로, 혼인 신고를 할 때 혼인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 다. 그러나 민수 씨의 사례는 혼인무효로서의 요건을 갖 추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혼인취소는 어떨까. 「민법」 제800조에서 는 18세 미만인 자와의 혼인, 배우자가 있는 자, 혼인 당 시 악질사유 존재, 사기·강박에 의해 혼인한 경우로서 혼 인취소 사유를 정하고 있다. 민수 씨의 경우, 흥이 단순히 비자와 영주권을 얻을 악의적인 목적으로 결혼한 뒤, 목적 달성 후 잠적해 버린 경우로써 사기결혼을 주장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이 경우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혼인취소청구 권을 행사(「민법」 제823조)해야 하는 것으로 소멸시효가 매우 짧았다. 민수 씨는 아내가 가출한 지 1년이 훌쩍 넘 었기에 혼인취소를 주장해볼 여지가 없었다. 결국 민수 씨에게는 혼인관계를 정리할 카드가 통 상의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민수 씨도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이혼소송으로 하는 수밖에 없겠 다”고 인정했다. 09 2025. 03. March Vol.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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