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4월호

으로 달라고 요청해 영자님은 여동생에게 돈을 빌려가서 까지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결국 식당은 단전·단수 조치 로 문을 닫았고, 두 사람은 생계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1심 소송자료에 포함된 K의 ‘기일지 정신청서’는 그들의 의도를 더욱 의심하게 했다. 그 서류 에는 “승소하더라도 피고가 부동산을 처분하면 추심이 어려우니, 조속히 선고를 내려달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K가 이미 피고(영자님)의 경기도 2층 주택 소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하면, K와 원고는 오직 ‘돈’ 을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제 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두 사람이 물귀신 작전으로 영 자님에게 억지로 불륜의 누명을 씌워 위자료를 받아 챙 기려 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 단하고, 쟁점들을 정리해 항소이유서 초안을 작성했다. 결정적인 증거가 될, 사실확인서 한 장의 힘 “법무사님, 오래 기다리셨죠? 말씀하신 그곳에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여기요, 이것 좀 보세요.” 며칠 뒤, 직접 담근 김치 한 통을 들고 나타난 영자 님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서류 한 장을 건넸다. 불륜 장 소로 지목된 주소지 아파트의 실제 거주자가 직접 작성 한 사실확인서였다. “영자라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본인은 수년간 이 집에 홀로 거주 중입니다.” 사실확인서에는 거주자의 주민등록증 사본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필자는 안도감과 동시에 마음 한편 죄 송함이 밀려왔다. ‘혹시’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의심 을 품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필자는 영자님에게 며 칠 동안 공들여 작성해 둔 항소이유서 초안을 조심스럽 게 건넸다. 서류를 말없이 들여다보던 영자님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 사건이 단순한 법적 다툼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이 싸움은 법정 에서의 승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씌워진 억울한 낙 인을 지우는 일이었다. 소송에서 서면이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간 결하고 명확하게 쟁점을 짚고,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제 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필자는 가능하면 의뢰인의 마음을 서면에 담으려 한다. 글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억 울한 사연에 공감하고 진심을 담아 작성된 서면은 때로 영자님의 싸움은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불륜을 둘러싼 사적 분쟁일 수 있으나, 그녀에겐 평생의 삶을 부정당하는 고통이었고, 노년의 마지막을 ‘상간녀’라는 낙인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투쟁이었다. 2심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영자님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명예로운 이름으로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 정면으로 싸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법으로 본 세상 — 열혈 황법의 민생사건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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