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4월호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된다. 그렇게 필자는 ‘진실을 전하는 편지’처럼 항소이유 서를 써 내려갔다. 확인서가 강력한 반박 증거임은 분명 했지만, 전략적으로 이를 첨부하지 않기로 했다. 거짓진 술을 반복해온 K의 성향을 봤을 때, 재판부가 원고의 신 빙성을 평가하는 결정적 시점에 꺼내는 것이 더 효과적 이라고 판단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항소이유서가 제출되자 원고 측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지인의 진술서를 제출, 원 고와 K가 현재도 공동생활을 하며 같은 주소지에 거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항소심 준비서면에서 요청한 주민등록초본은 끝내 제출하지 않 았다. 사실혼 관계를 주장하면서 정작 공동거주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차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1차 변론기일이 잡혔다. 법정에서 원고와 K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영자님은 크게 위축되었다. 재 판부는 피고에게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며, 소송구 조를 통해 선임된 대리인이 대신 출석할 수 있도록 했다. 영자님은 용기를 내보았지만 직접 대면은 힘들 것 같다 고 했다. “법무사님이 해주시면 안 될까요? 변호사를 선임하 고 싶지 않고, 법정 출석도 너무 두려워요.” 필자는 고민 끝에 변호사가 양해해 준다면, 서면을 직접 작성해 볼 테니 기일에 참석할 수 있는 변호사를 찾 아보라고 했다. 다행히 영자님은 1심 때와 달리 여성 변 호사를 선임했고, 필자는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2차 준 비서면을 작성했다. 여기서는 드디어 불륜장소로 지목된 아파트 실제 거주자의 사실확인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필자는 이 문 서가 원고 측의 주장을 결정적으로 흔들 수 있으리라 판 단했고, K가 어떻게 대응할지 내심 기대했다. 한참 뒤 K 는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실상 변명 에 가까웠다. 그는 더 이상 피고의 거짓 주장에 대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며 공격했지만, 원고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 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첨부했 을 뿐이었다. 자신이 불륜 장소로 지목했던 주소가 명백한 허위 로 드러났음에도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못한 K의 태도 는,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필 자는 영자님의 그간 말씀이 모두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 질 수 있었다. 판결을 기다리며 - 영자님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자님과 필자는 판결 선고 일을 기다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이 2심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희 박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영자님은 1심에서 500만 원의 화해 권고 결정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이걸 받아들이면, 제가 잘못한 걸 인정하는 게 되 잖아요. 전 절대 그런 짓 한 적 없어요.” 그 말 속에는 오랜 세월 자신의 삶을 묵묵히 견뎌온 이의 자존심과 마지막 남은 삶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 다. 도와줄 이 하나 없이 억울한 오명과 모욕을 견뎌야 했 지만,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통스러운 소송의 전 과정을 감내했다. 영자님의 싸움은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다. 누군 가에겐 불륜을 둘러싼 사적 분쟁일 수 있으나, 그녀에겐 평생의 삶을 부정당하는 고통이었고, 노년의 마지막을 ‘상간녀’라는 이름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투 쟁이었다. 또한, 영자님의 싸움은 우리 사회에서 약한 존 재가 얼마나 쉽게 악의적 기획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지 를 드러낸 울림이었다. 2심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영자님 은 더 이상 숨어 울지 않는다. 낙인이 아닌, 명예로운 이 름으로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 마침내 정면으로 싸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11 2025. 04. April Vol.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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