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4월호

떠올라 그 후 왕비의 처소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정성왕후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따라서 영조는 원자를 얻어 정통성이 보장된 왕위 계 승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궁 정빈 이씨 소생의 효 장세자가 9세에 죽고, 그 후 7년 동안 아들이 없어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중, 뒤늦게 영조 나이 42세에 영빈 이씨 소 생의 늦둥이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그 기쁨이 오죽했으랴. 태어난 지 1년 만에 전례 없이 부랴부랴 세자로 책 봉된 사도세자는 어릴 적 총명함을 보여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성장하면서 학문보다는 무예를 좋아하는 등 영조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갈등이 시작되 고 증폭되어 결국 비극의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더불어 사도세자는 영조의 지지기반인 노론계보다 는 소론계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모종의 위기감 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 한과 그 동생 홍인한, 사도세자의 여동생 화완옹주까지 사도세자를 옹호하기보다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한 몫 했음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결국 사도세자는 부왕의 높은 기대치와 당쟁의 폐 해로 희생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날의 비극을 지켜본, 구부러지고 뒤틀린 회화나무 한여름 공포의 뒤주 속에서 더위와 목마름, 배고픔 으로 고통 속에 죽어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덧없는 세월 저편으로 사라지고 사도세자의 비극은 역 사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날 비운의 왕세자가 고통과 몸부림 속에 죽어가는 끔찍한 모습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오늘 날 우리에게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이가 있으니, 그 가 지금의 창경궁 선인문 앞 기형의 회화나무이다. 그 나무는 그날의 애절하고 슬픈 사연을 후세에 생생 하게 몸으로 전달하고자 함이었을까? 당시의 참혹한 광경 을 곁에서 목격하고 차마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이 구부러지 고 뒤틀리고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듯 기괴한 모습이다.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더불어 수백 년 동안 자라는 장수목으로서 주로 궁궐이나 서원 등에 심 었던 상서로운 나무라고 한다. 본래 곧게 자라는 습성의 나무인데도, 창경궁의 휘어지고 뒤틀린 회화나무는 그날 의 끔찍한 고통을 몸으로 전하고 있는 듯하다. 애절하고, 슬픈 사연을 한 몸에 담고 오랜 세월을 버텨오면서 묵묵히 그 현장을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의 처연한 모습이 안쓰럽다. 창경궁에 들를 기회가 있으면, 그날의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 회화나무 를 한번 만나보고 오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예전 궁궐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회화나무가 이곳 충북혁신도시 내 일부도 로 가로수로 식재된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예전에는 왜 모르고 무심코 지나쳤을까? 화 려한 벚꽃과 이팝나무에 가려 아카시아 잎새와 비슷한 회화나무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비록 보아주는 이 없을지라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앞으로 수백 년 이 어질 이 도시의 역사를 기록하고 간직해 나갈 든든한 회 화나무여, 반갑다! 70년 만의 내 생애 최초의 궁궐 여행은, 일에 파묻 혀 여유를 잃고 사는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행선지와 일 정도 밝히지 않은 채, 자가용을 놔두고 서울행 버스를 타라는 딸애의 강요(?)로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한적한 지방도시에 살면서 업무 차 들르는 서울행 은 주로 강남 쪽 높은 빌딩과 차량 홍수, 주차난 등으로 출발 전부터 머리가 아픈 도시로 각인되어 있는 내게, 창 덕궁과 창경궁 주변은 인왕산, 북악산이 가까이 보이고, 주택가 골목이 조용하고 깨끗하고 번잡하지 않아 이곳 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게 하였다. 숙소 또한 광화문 근처 아담한 한옥을 개조한 곳으 로, 소박하고 정갈하면서도 곳곳에 손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더불어 조선조 어느 서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서 더욱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73 2025. 04. April Vol. 694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