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4월호

깜짝 놀란 영자님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소리를 지르자, K는 “돌아가신 형님을 만나면 무릎 꿇고 사죄하 겠다”며, 몇 분 동안 추행을 지속했다. 고의인지 우연인 지, 그곳은 CCTV가 가장 잘 비추는 장소였다. 강한 저항 끝에 막 상황을 벗어난 순간, 식당 문이 열리고 Y가 들어 섰다. 영자님은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소리치며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영자님은 공포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으나, 진짜 공포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야! 이 상간녀야. 내 남편을 꼬드겨 그런 더러운 짓 을 할 수 있냐? 니 얼굴, CCTV에 다 찍혔다. 교회며 자식 이며 다 퍼뜨릴 거다.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위자료 5천만 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다더라. 내가 아량을 베풀어 3천 만 원에 합의해 줄 테니 집을 팔아서라도 내놔라.” Y는 온갖 험한 말을 내뱉으며 협박을 시작했다. 처 음에는 별말 없던 K도 “3천만 원으로 끝내는 게 좋을 것”이라며 동조했다. 영자님은 수치심과, 분노, 공포와 억 울함이 뒤섞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상대는 변호사 사 무장 출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연락을 끊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직접 자필로 작성한 Y의 위자 료청구소장이 날아들었다. 소장에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영자님은 두려움에 떨며 법 률구조공단과 K가 일하던 변호사 사무소 등을 돌아다니 며 도움을 청했다. 노력 끝에 법률구조공단의 소송구조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응소를 했으나, 1심 법원은 Y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믿고 의지하던 여동생의 암 투병으로 좌절감에 빠져 있던 영자님이 변호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을 회피한 결과였다. 패소 소식에 지인들과 여동생은 끝까지 싸우라고 했 지만, 영자님은 며칠을 집에서 울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 히 TV에서 “강제추행이나 협박에 공포심만 느껴도 범죄 가 성립된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그래, 나는 범죄 피해 자야.” 영자님은 새롭게 용기를 얻었다. 죽기 전에 반드시 오명을 벗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항소를 위해 다시 도움 을 구하러 나섰고, 그렇게 필자와 인연이 닿았다. “그 주소 처음 듣는 주소예요.” 원고의 불륜 주장에 숨겨진 빈틈 필자는 1심 소송자료들을 수차례 정독했다. 원고 측 에서 제출한 수많은 서면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불륜이 발생했다는 장소, 날짜, 횟수 등을 상세히 적어 놓았지만, 주장 내용이 갈수록 변동되 며 일관성이 없었다. 첫 번째 서면에서는 주로 모텔을 이용했다고 했으 나, 두 번째 서면에서는 피고의 거주지에서라며 지방의 한 주소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영자님을 의심했었다. 구체적인 주소에 호수 까지 허위로 꾸며낼 수 있을까? 변호사 사무장으로 오래 일해 온 K가 무모한 거짓말을 서면에 담았다는 것이 쉽 게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자님은 단호했다. “저는 처음 듣는 주소예요. 거기에 가본 적도 없고, 거기가 어딘지도 몰라요.” 그 말에 담긴 억울함과 떨림은 결코 꾸며낸 감정이 아니었다. 필자는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등기부등본을 결국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하면, K와 원고는 오직 ‘돈’을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두 사람이 물귀신 작전으로 영자님에게 억지로 불륜의 누명을 씌워 위자료를 받아 챙기려 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단하고, 쟁점들을 정리해 항소이유서 초안을 작성했다. 법으로 본 세상 — 열혈 황법의 민생사건부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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