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했다. 영자님 말씀이 맞았다. 소유자 이력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해당 아파트는 5년 전 한 여성이 소유권을 이전받은 뒤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녀가 현재 실거주 중일 가능성이 높았다. 필자는 일말의 의구심도 남겨놓지 않 기 위해 재차 확인했다. “영자님, 정말 이 주소 모르시는 곳 맞죠? 제가 진실 을 알아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어요.” “정말 처음 듣는 주소예요. 저는 그 동네에 가본 적 이 없어요. 너무 억울해요.” 영자님은 눈물을 흘리며 강하게 부인했다. 필자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내 의뢰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필자 는 불륜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원고의 서면이 재판 부에 신빙성 있게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영자 님에게 직접 해당 주소를 찾아가 거주자를 확인해 보라 고 했다. “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영자님의 목소리에서 결기가 느껴졌다. 드러나는 허점, 쌓여가는 확신 – CCTV 증거 조작의 가능성 필자는 영자님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쟁점들을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원고 Y와 K는 부부라고는 하 지만, 이미 오래전 이혼한 사이다. 제출된 위임장과 각종 소송 서류에서 거주지가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이 법적인 배우자나 사실혼 관계가 아 니라는 점에서 이 사건의 가장 기초적인 요건, 즉 원고가 위자료 청구의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점을 2심의 첫 번째 항변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또한, K가 제출한 서면들 속에도 수많은 모순이 존 재했다. 사실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진술, 억지로 짜맞춘 듯한 시나리오, 자가당착에 가까운 주장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점들은 오히려 영자님의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고 측이 내세운 주장에 허점이 많다 는 점은, 우리가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틈이자 기회였다. 그 뿐만 아니라, 1심에서 원고 측이 제출했던 CCTV 가 큰 쟁점으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CCTV 원본 파일 을 증거로 제출했다가 이후 입증자료 목록에서 삭제한 후 CCTV 화면 캡처 이미지 여러 장을 다시 제출했다. 각 이미지 위에는 붉은 펜으로 ‘불륜 장면’이라며 설명을 덧 붙여 놓았다. 필자는 이 점이 매우 의아했다. 왜 원본 영상이 아닌 화질 낮은 캡처 이미지로 대체했을까? 만약 그 영상이 원고에게 유리했다면, 원본 전체를 제출하는 것이 오히려 신빙성을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중요한 맥락은 사라지고, 의도된 장면만 부각된 이미지들이 제출되었다 는 점에서 조작 혹은 왜곡의 가능성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K의 이중적인 태도였다. 그는 서면에서 “그간 아내에게 많은 죄를 지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자신이 2년 넘게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는 상대방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하 고 있었다. 더구나 피고가 자신을 유혹했고, 심지어 “성욕 이 왕성한 70대 노인이 먼저 접근했다”는 식의 표현까지 서슴없이 적어 놓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피해자로 지목된 영자님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힘이 센 K가 CCTV가 설치된 공간에서 강제적으 로 신체를 밀착시키는 장면은, 일부 이미지만 봐도 일방 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었다. 정황상, 원본 CCTV를 제출 하지 않고 일부 캡처 이미지로 대체한 것은, 오히려 강제 추행의 정황을 감추기 위한 시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쟁점은, 과연 원고와 K가 왜 이런 사기극을 벌였는가에 대한 ‘동기’였다. 영자님의 진술에 따르면, 원 고는 K의 금전 및 잦은 여성 문제로 이혼했고, 두 사람 모두 신용불량자라고 했다. 실제로 이들이 운영하던 식 당은 장사가 되지 않아 전기·수도 요금조차 제때 내지 못 해 영자님이 금전적인 도움을 준 사실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K는 자신의 통장이 압류 상태이니 현금 09 2025. 04. April Vol.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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