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입금한 금액은 400만 원인데, 매매계약서의 매 매금은 500만 원으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삼촌은 “중개업소에서 세금 문제로 금액을 높여 작 성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절차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변명만으로는 부족했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도리 가 없으니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힌 보정서를 제출했다. 과 연 법원은 어떤 결과를 내릴까.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부양가족 제외, 그러나 가게 적자 소명해 변제금액 현실화 결국 법원은 수빈 씨의 모친을 부양가족에서 제외 하라는 추가 보정명령을 내렸다. 수빈 씨가 어머니를 위 해 경제적으로 지원해왔던 사실은 분명하지만, 두 사람 이 별거 중이라는 점과 소득·지출 구조가 불투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부양가족 제외’라는 보정명령을 받고 한동 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월 200여 만 원의 변제금으로 개시결정이 내려진다면, 수빈 씨는 3년간 변 제를 끝까지 이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명확 히 보였기 때문이다. 변제불능으로 인한 절차 중도 포기 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필자는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수빈 씨의 소득과 지출을 재구성하면서 그간 간접적으로만 반영되 었던 김밥집의 지속적인 적자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기로 했다. 김밥집 운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속적인 적자는 사실상 수빈 씨의 경제 상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고, 이를 수입과 지출 항목에 명확히 반영한다면, 결과적으로 변제금은 어머니를 부양가족으로 포함시킨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필자는 실질이 아닌 형식적으로, 즉 수빈 씨 명의로 입출금되는 모든 내역을 바탕으로 수입과 지출 목록을 다시 작성했다. 그렇게 새롭게 정리된 재정상황을 바탕으 로 변제계획안을 다시 제출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모 든 경위와 사정, 수빈 씨가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담은 의견서도 함께 첨부했다. 개인회생이 단순히 서류상의 요건을 맞추는 절차가 아니라, 정말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기회임을, 수 빈 씨가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텨왔는지를 재판 부가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결 국 얼마 후 법원은 개시결정을 내렸다. 필자의 기도가 통 했던 것일까.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결정이었다. 결국 법원 개시결정! 새로운 기회 얻은 의뢰인 수빈 씨의 사건을 맡아 진행하는 동안, 필자는 개인 회생이 단순한 채무조정 절차가 아니라, 절박한 삶을 다 시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희망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20대 중반의 어린 청년이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청 춘과 미래를 기꺼이 내어준 시간들. 그러나 그 결과는 빚 더미였고, 그조차도 끝내 책임지려는 수빈 씨의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 회생절차가 형식에 얽매인 심사가 아닌, 채무자의 삶과 사정을 실질적으로 들여다보 는 절차가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수빈 씨는 모친 부양을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가게 의 적자상황을 제대로 소명하여 변제금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변제계획안도 인가를 받아, 수빈 씨는 비로소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긴 여정이 남아 있다. 매달 일정한 변제 를 해나가야 하고, 작은 재정 악화에도 위태로워질 수 있 다. 하지만 이제 수빈 씨에게는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법무사로서, 이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회생제도가 진정한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재 기를 위한 작은 다리가 되어야 한다. 11 2025. 05. May Vol.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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