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기엔 어느새 초여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 던 지난 5월 19일 월요일 아침, 필자는 대구에서 영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는 도로의 양옆으로는 푸르른 산들과 산불에 그을려 새까매진 산등성이의 흔적이 이어졌다. 그렇게 목적지인 영주에 다다르자 다행히 화마를 피한 나무들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필자가 이날 영주를 찾은 이유는, 물론 초여름 풍 경이나 즐기려는 것은 아니었다. 2006년부터 “비법인 사단도 법인의 틀 안에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며, 현행 허가주의 체계 아래 놓인 비영리단체 설립 제도의 변화 를 꾸준히 주장해 온 김영대 법무사(대구경북회)를 만 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민법」은 1958년 제정 이래, 일본 「민법」 을 따라 비영리법인 설립에 ‘허가주의’를 채택해 현재까 지 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5월 현 재, 허가에 따른 비법인사단의 등록 건수는 311,276건이 고, 매년 약 13,937건의 신규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허가주의는 추상적 요건과 까다로운 절차 로 인해 설립 과정에서 국민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위헌 논란이 있으며, 설립자에게는 행정기 관의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심리적·행정적 부담을 안 겨준다. 행정기관 또한 수많은 기존 비영리법인에 대해서 는 형식적인 사후 감독만 가능하고, 신규 법인의 경우 에는 기존 법인과의 동일성 여부까지 심사해야 하는 등 행정적 비효율을 떠안고 있다. 그 결과 허가를 받지 못한 단체는 비법인으로 남 게 되며, 등기를 할 수 없어 거래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단체의 실체를 공시하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소송 과 정에서도 단체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해 법적 불이익을 반복적으로 겪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 법무사는 수임한 소송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 서 이러한 문제들에 부딪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절 감했다고 한다. ‘비법인사단의 법인화’ 입법을 생각하게 만든, 두 가지 사건 “먼 길 오셨으니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입시다.” 영주시에 도착해 시의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 고, 길 건너 김영대 법무사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환한 얼굴로 반겨주던 김 법무사가 대뜸 밥부터 사겠다며 앞 장을 섰다. “영주 소고기 먹어보셨어요? 영주 땅의 온갖 약초 를 먹고 자라서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석쇠 위의 소고기를 먹음직스럽 게 구워 건네는 그를 보면서, 필자는 그가 매우 다정다 감한 성격을 가졌고, 의뢰인을 대하는 서비스도 비슷하 겠구나 생각했다. 법원 사무관 출신인 김 법무사는 서울에서 안정적 인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1995년 돌연 사표를 내고 고 향인 경북 영주로 내려와 법무사 사무소를 열었다. 아 직 창창한 40대의 젊은 나이에 선택한 낙향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1977년 법원서기보 공채로 입사 해 18년 정도 일하고 보니 빡빡한 서울살이에 향수병도 생기고, 그러다 법원생활로 몸에 밴 성실성과 끈기가 있 으니 뭐든 못 할 일이 있겠냐 싶어 과감하게 사표를 내 고 고향에 정착했지요.” 실무 경험도 없이 무작정 사무소를 개소한 터라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들어오는 사건은 무엇이 건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 지금은 꽤 잘나가는 법무사 사무소로 성장했단다. “시골 법무사 사무소는 종합병원과 같아요. 감기 부터 말기암 환자까지 다양한 사건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하죠. 그 덕분에 사건은 끊이지 않고 늘 바빴습니다. 감 사한 일이죠.” 그 많던 사건 중에 바로 오늘의 주제, 비법인사단 의 법인화 문제에 그를 천착하게 만들었던 두 가지 사건 이 있었다. “1988년이었지요. 한 단체의 회원들이 돈을 모아 55 2025. 06. June Vol.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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