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6월호

득, 기본 지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고, 통상적인 회 생사건이라면 월 30~40만 원 정도의 변제계획으로도 인 가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여 사건을 수임하고, 회생신청 서를 접수하였다. 얼마 후 회생법원에서 채무자의 최근 5년간 금융거 래 내역 일체를 제출하라는 보정명령이 내려왔다. 그리 하여 필자는 K 씨의 주거래 통장 거래내역을 확보하여 검토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 었다. K 씨가 지난 1년간 단기 카드론과 인터넷 대출을 통 해 무려 5천만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해 그 대부분을 ‘주 리리’라는 수취인 명의로 수 차례에 걸쳐 송금한 내역을 확인한 것이다. 필자는 K 씨에게 ‘주리리’가 누구인지 물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필리핀에 있는 여자입니다. 저랑 결혼을 약 속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못 와서 지금 방법을 알 아보고 있다네요.”라고 대답하였다. K 씨는 SNS를 통해 주리리를 알게 된 후, 1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제를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여러 명목으로 지속적인 송금을 해왔던 것이다. 해당 진술을 들은 필자는 일순간 수임을 철회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연애 감정에 기대어 지나치게 큰 금액 을 보냈다는 점에서 회생절차 상 ‘채무자의 책임 있는 소 비’로 보기 어려운 자금지출로 해석될 위험이 있었고, 회 생 인가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인에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고액 송금이 어떠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지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 지만, 해당 지출이 단순한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라면 회생위원 또는 법원이 가용소득 산정이나 변제계획 수립의 성실성 판단에 있어 불리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K 씨를 소개한 지인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 고, 무엇보다 주름진 이마에 상담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자책감에 빠져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혀, 결국 사건을 그대 로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2. ‘로맨스 스캠’ 피해자였던 의뢰인, 형사고소 병행 전략으로 전환 필자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회생위원은 K 씨 가 ‘주리리’라는 외국인 여성에게 송금한 약 4,800만 원 전액에 대해, 이를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하여 변제계획 안에 포함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곧 변제금이 월 100만 원 이상으로 책정되어 야 함을 의미했고, 당시 K 씨의 소득 수준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필자는 사건 초기부터 이 송금이 회생절차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예감했지만, 실제로 회생위원 이 이 송금액을 채무자의 책임 있는 소비로 보기 어렵다 고 해석하자 난감할 뿐이었다. 이는 곧 회생 인가 가능성 을 사실상 원천 차단하는 결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K 씨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땅이 꺼질 듯한 표 정으로 사무실을 떠났고, 그날 밤 필자는 사건을 되돌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문득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는 실마리가 떠올랐다. K 씨와 주리리 간의 SNS 채팅 내역을 확보할 수 있 다면? 그리고 그 내역이 단순한 연애 감정에 기반한 대화 가 아니라, 의도적인 금전 요구와 심리적 압박이 담긴 정 황을 보여준다면? 그렇다면 그 자금은 단순한 ‘사적 지 출’이 아니라 사기범죄의 피해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필자는 바로 K 씨에게 연락해 “혹시 주리리 와 주고받은 모든 채팅 내용을 출력해 오실 수 있겠습니 까?”라고 요청했다. K 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 해 보 겠습니다”라고 답했고, 며칠 뒤 두툼한 인쇄물을 들고 다 시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인쇄물에는 주리리가 K 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해 신뢰를 얻은 뒤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금전 지급 을 압박해온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른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의 전형적 패 턴이었던 것이다. 63 2025. 06. June Vol.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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