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창 상담을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 지 화낼 일이 아닌데,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내 는 모습이 당황스럽습니다. 별문제 없는 상담 같은 데… 도대체 고객은 왜 갑자기 화를 내는 걸까요? 여러분은 혹시 ‘역린(逆鱗)’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 편 에는 용에 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옵니다. 용의 몸은 같은 방향으로 난 수많은 비늘로 촘촘히 덮여 있는데 단 하나,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고 하죠. 평 소에는 온순한 용이라도 누군가 이 거꾸로 난 비 늘, 즉 ‘역린’을 건드리면 극도로 분노하여 상대를 죽인다고 전해옵니다. 그래서 역린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치명 적인 지점’을 뜻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금기를 가리킬 때 쓰입니다. 여기서 중 요한 건, 역린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 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지단은 은퇴경기에서 왜 마테라치를 들이받았을까? 프랑스 축구의 전설 ‘지네딘 지단’을 아시나요? 그 의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마 지막 모습은 화려한 플레이 장면이 아닌 경기 종료 10분 을 남기고 퇴장당하는 슈퍼스타의 초라한 뒷모습입니다. 지단은 자신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 수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경기장에서 퇴 장당했거든요. 한 시대를 마무리할 영광의 무대가 한순 간에 불명예로 뒤덮인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그의 마지막 경기 가 무려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당시 그는 대표팀의 주장 으로 국민적 기대와 팀 전체의 사기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지단의 퇴장 이후 결국 팀은 결 승에서 패배했고, 그는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거센 비난 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단은 왜 마테라치를 들이받았던 걸까요? 단 10분 만 참았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 이유는 바로 지단의 ‘역린’에 있습니다. 마테라치는 지단 의 가족을 모욕했고, 알제리계 이민 2세로 혹독한 가난 속에서 가족의 헌신으로 지역의 영웅이 된 지단에게 가 족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었거든요. 본인 하나만을 위해 희생한 가족이 모욕당하는 순 간, 지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제 지단 의 행동이 이해가 가시나요? “가족 모욕은 못 참지”라며 이해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월드컵 결승인데 좀 참지”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핵심은 역린이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참을 수도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도저히 참 을 수 없는 일일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대수롭 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순식간에 감정을 폭발시 키는 결정적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역린에서 가장 주 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고객의 역린’을 건드렸을 때, 어떻게 상담해야 할까? 법적 문제로 마음이 불안하고 예민해진 고객에게 역린의 문제는 더욱 중요합니다.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역린까지 건드려진다면 평정을 유지하기 어렵겠 죠. 문제는 어떤 고객의 역린은 어떤 법무사에게는 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정성껏 챙겨온 서류를 대수롭지 역린, 건드려선 안 되는 63 2025. 11. November Vol.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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