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1월호

결국 정신착란을 일으킨 고흐는 면도날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해를 하고,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고흐가 정신병을 앓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압생트(Absinthe)’로 인해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을 앓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녹색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압생트는 약초를 주재료로 한 리큐르(Liqueur)로, 19세기 유럽 예술가들 사이에서 특히 사랑받는 술이었다. 고흐 말고도 화가 앙 리 마티스와 시인 아르튀르 랭보, 샤를 보들레르도 압생 트 애호가였다고. 이 당시 압생트가 크게 유행했던 데는 와인 시장의 침체도 한몫을 했다. 포도 뿌리에 기생하는 ‘필록세라’라 는 진딧물은 유럽의 포도 농장들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 켰다.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자 사람들은 대체품을 찾았 고, 압생트가 와인 대신 식전주 자리를 차지했다. 압생트를 포함한 ‘리큐르’는 원래 약용으로 개발된 술이다. 한방에서 물에 잘 녹지 않는 약재를 술에 담가 용해시키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다. 특히 수도원 에서 만드는 리큐르는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누적되면서 오늘날까지 명성을 자랑하는 술들이 적지 않다. 리큐르가 대중화되면서 약용이라는 원래 목적은 옅 어지고, 사람들은 개성 강한 향과 빛깔을 즐기게 됐다. 각 종 과일과 허브, 꽃, 심지어 달걀까지 그 종류도 무궁무진 하다. 특히 파티에서 귀부인들이 드레스 색과 어울리는 리큐르를 마시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20세기 이후 다 양한 칵테일이 발전하게 된 것도 리큐르의 공이 크다. • 정신착란 유발하는 압생트? 와인업자들의 악의적 소문이었을 뿐 압생트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스위스다. 주정에 향 신료인 아니스와 회향, 서양 쑥이라고 불리는 웜우드를 넣어 증류한다. 여기에 레몬밤, 히솝 같은 녹색 허브로 색 을 내면 완성이다. 약초와 허브가 다량 들어가, 처음 접하 는 사람에게는 강한 향이 다소 이질적일 수 있다. 도수도 40도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그대로 마시는 일은 없고 전용 잔과 스푼을 이용하는데 작은 구멍들이 뚫린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리고 얼음물을 떨어뜨려 녹 여 마신다. 압생트에 함유된 ‘아네톨’이라는 성분은 에탄올에 는 녹지만 물에는 거의 녹지 않는다. 따라서 물을 섞으면 도수가 낮아지면서 우윳빛처럼 탁한 백색이 된다.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식 리큐르인 ‘삼부카’나 그리스 국민 술 이라는 ‘우조’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압생트는 시간이 흐르면 서 마치 대마초나 코카인 등 마약처럼 유해한 존재로 여 겨지게 됐다. 압생트에 포함된 ‘투존’이라는 성분이 중추 신경에 작용해 지각장애와 정신착란, 발작 등을 일으킨 다고 알려지면서부터다. 특히 1905년 스위스에서 한 농 부가 압생트에 취해 일가족을 총살하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제조, 판매가 금지됐다. 하지만 압생트의 유해성 논란은 일종의 여론몰이에 가까웠다. 사건 현장에는 압생트 외에도 와인과 브랜디가 여러 병 뒹굴고 있었지만, 언론이 비극의 원흉을 압생트 인 것처럼 덮어씌웠다. ‘필록세라병’이 지나가고 포도 농 장이 살아나자 와인업자들이 압생트를 몰아내기 위해 악 의적 소문을 퍼뜨린 결과다. 후일 압생트 성분의 유해성 을 조사한 학자들도 투존의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결론 을 내렸다. 한때 예술가들을 홀린 마성의 술로 여겨진 압생트. 위험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는 그저 만들어진 것일 뿐, 과 음하지 않고 적당히 즐긴다면 큰 탈이 없는 보통의 알 코올 음료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오명을 벗은 압생트는 시중에 흔하지는 않지만, 주류전문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압생트를 맛보고는 ‘한약 같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 데, 실제로 한약재에 쓰이는 성분이 일부 들어가는데다 회향과 감초 등의 향이 꽤 강하기 때문이다. 얼음물과 만 나면 희석이 되면서 청량한 뒷맛을 느낄 수 있다. 69 2025. 11. November Vol.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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