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 코너에 기고한 글들은 주로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민사 분쟁 사례들을 다루었다. 민생과 관련된 다양한 민사 사건들이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업무 비중 면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종종 있는 민사사건보다는 그럴 일이 별로 없는 상업(법 인)등기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다. 대부분은 소규모 비상 장 법인들을 상대로 한 법인 설립, 임원 변경, 증자, 본점 이전, 목적 추가 등 각종 변경등기 사건들이다. 이들 소규모 비상장 법인들은 주주의 대부분이 가 족이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사내 이사 1인 회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주총회나 이사회 개최 후 의사록 공증 절차에서 「상법」이 정한 절차를 엄 격히 따르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러나 때로는 이로 인해 큰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다. 주주 중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이가 있거나 기관투 자자가 포함된 경우, 주주총회 소집부터 절차 규정을 엄 격하게 지키지 않고 대충대충 했다가 분쟁으로 비화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사건도 그런 현실의 단면이다. 작은 회 사의 내부 다툼에서도 절차를 중시하는 법의 원칙은 결 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주주 대표이사의 주총 거부, 발목 잡힌 100% 지분 대주주 이 사건은 몇 년 전 변호사가 된 입지전적인 내 대학 동기(이하 ‘동기 변호사’)에게서 받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마침 일이 없는 날이라 좀 일찍 퇴근 할까 하고 막 가방을 싸던 중이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인데, 법인 파산으로 가거 나 다른 용단을 내려야 꼬인 일이 풀리는 상황에서 회사 의 대표이사가 도무지 협조를 안 하니 일에 진척이 없어. 대표를 해임하거나 각자 대표를 선임하는 건으로 회사 사 람들이 갈 테니 상담을 해보고 가능하면 처리 좀 해줘.” 갑작스런 부탁에 엉거주춤 일어났던 엉덩이를 다시 주저앉히고 6시가 넘도록 의뢰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한 사람은 ‘회장님’ 이라 불리는 나이 많은 분으로, 그 법인(자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한 모 법인의 대표였고, 또 한 사람은 그 회 사에 새로 대표로 취임하려 하는 소위 ‘바지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이러저러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핵심을 정리해 보자면 지금 몽니를 부리며 협조를 안 하 고 있다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모법인의 주식을 한 29% 정도 보유하고 있는 소수주주로, 자기 나름의 계산으로 는 회사가 지금의 방침대로 가면 본인에게 손해가 날 수 있어 한사코 주주총회의 소집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대표이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회사는 100% 모법 인 소유로, 모법인의 대주주가 지금 바로 나와 상담을 하 고 있는 그 ‘회장님’이었다. “100% 내가 소유한 내 회사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도 황당합니다.” 그래서 회장님은 말 안 듣는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고분고분한 새 대표를 선임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표이사를 해임하려면 현 대표가 직접 주총 소집을 해야 하는데, 해임 대상이 스스로 할 리가 없고, 대표이사가 빠진 채 열린 주총은 절차상 하자로 인해 의사록의 공증을 받기 어렵다. 17 2025. 12. December Vol. 702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