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2월호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어느 날 미술시간에 학 교 주변 경치를 사생해 오라는 미술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나는 운동장 오른편 보리밭 언덕을 수채화로 그려 제출했 다. 며칠 후 선생님의 호출이 있어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 은 내 그림을 꺼내 보이며 “색감이 아주 좋다”고 하시고, “너는 미술에 소질이 있으니 꾸 준히 연마하면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다”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러면서 앞으로 방과 후 에 남아서 자신의 지도하에 그 림 연습을 하라고 하셨고, 나 는 그때부터 교실에 남아 창밖 저 멀리 오동도가 보이는 남해 안을 수채화로 그리며 연습에 매진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 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 는데, 당시 사건을 진압한 군부 대가 여수 시내 학생들을 대상 으로 반공포스터를 모집한 일 이 있었다. 그때 나는 5학년이 었는데, 거기에 응모해 3등으로 입상해 상장과 상품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여수 돌산 해변에 정박한 소형어선을 촬 영한 사진을 직접 8호 캔버스를 만들어 유화로 그린 후 미술담당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그림이 참 재밌다”는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있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순수미술 전공도 아니셨고,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 등 다방면의 예술을 가르치 셨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순수회화를 배우기는 어려웠 다. 아마도 그 시절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계속 지도해 주 셨다면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일반학과 수업에는 흥미를 잃었 고, 학생회 미술문화부장직을 맡아 전남지역 학생미술전 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당시 광주서 중학교에서 순수회화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 교 2학년 때 국전에 출품하기 도 했지만 결과는 낙선. 그럼에 도 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미 술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나 공무원이셨던 아 버지께서 대대로 관료를 지내 온 집안의 장남이 화가가 될 수 는 없다며 극구 반대를 하셨다. 어쩔 수 없이 고교 3학년 때 진로를 바꾸었으나 기초가 약해 세칭 일류대 법학과는 꿈 도 꾸지 못하고, 한 대학의 법학 과로 진학했다. 처음에는 고시에 도전해 내 명예를 회복하리라 마음먹었으나 여러 번 도전 끝 에 실패하고, 평범한 법원 일반 직 공무원으로 지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소질과 직 업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비 록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소질이 있으니 꾸준히 연마하라”는 중학교 미 술선생님의 말씀은 내 삶의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법무사로서 이 나이까지 한 눈 팔지 않고 내 사무실 을 일구며 살아온 삶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소 질이 있든 없든, 연마를 게을리 하면 아무 길도 열리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중요 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슬기로운 문화생활 내 인생의 명문구 서세연 법무사(서울중앙회) “ 소질이 있으니 꾸준히 연마하라.” - 중학교 미술선생님의 가르침 71 2025. 12. December Vol.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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