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편집위원회 레터 조금씩 내리는 보슬비는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도 하 고, 걸음을 재촉하게도 한다. 그래서일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사무실 부근에 있는 선정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남의 빌딩 숲 한복판에 자리한 선정릉은 조선 제9 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그리고 제11대 중종의 능이 함 께 있는 곳이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왕릉이 여전히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지금까 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욱 경이롭다. 지하철 2호선(서울) 선릉역을 나와 우레탄 길을 따라 가면 선정릉 매표소가 나오고, 안으로 들어가면 산책로 와 흙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참나무와 산벚나무, 노송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번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시간이 정지된 고요함을 만 난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참나무와 노송이 줄지은 오솔길은 일반 공원이나 산과는 또 다른 상쾌함과 신비 함을 준다. 고즈넉한 길 오른쪽으로는 정자각과 잘 조성된 정릉 의 풍경이 펼쳐지고, 참나무와 노송이 늘어선 길에서는 세월이 자연 속에 녹아 있는 아늑함 과 빗방울을 머금은 숲길의 차분 함을 느낄 수 있다. 가끔 들려오 는 새소리는 마음을 맑게 해 준 다. 도시의 차량 소음 대신 빗소 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이 호젓한 길에서 호사를 누리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정현왕후 능을 지나 성종대왕 능 앞에 이르렀다. 잠시 발을 멈추었다. 조선 팔도를 다스렸던 왕의 무덤, 그러나 왕이라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돌 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는 권 세도 부귀도 모두 내려놓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가 묵직 하게 다가오며, 잠시 나의 일상도 돌이켜 본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두 르며 살아간다. 법무사의 업무도 늘 긴장 속에 있다. 누 군가의 분쟁과 갈등을 마주하고, 서류 한 장에도 책임이 따르기에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 필자 역시 사무실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사람을 바 라보는 시선마저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 다. 오늘 걸었던 선정릉의 숲길은 지친 마음을 잠시 쉬 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선정릉은 화려하지 않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마음속 번잡함이 조금씩 가라앉고, 잊고 지냈던 삶의 여백이 천천히 살아나 는 듯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장마가 시작 되는 6월이다. 우리 법무사님들도 가 끔은 부근 숲길을 산책하며 잠시 마 음을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보자. 선정릉을 걷다 김천규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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