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12월호

곧지만 휜 雪松, 세파 속에서 깨닫는 삶의 조화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 김남희 화가 · 『옛 그림에기대다』 저자 서출의하급관리, 고고한정신력표현한 ‘문인화’의대가로 이인상은 눈을 덮어쓴 소나무처럼 겨울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당대의 명문인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1585~1675)의 현손이었다. 그러나 증조부가 서출이었기 에 그도 서출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반쪽짜리 양반’이었지만 고조부인 이경여가 노론 에서 알아주는 선비였다. 그 자부심 하나로 버틴 그는, 인격 수련과 학문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서・화 삼절을 갖추었고, 일류 문인들과 교유할 수 있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자 삼촌 이최지(李最之, 1696~1774)에게 보살핌을 받고 학문을 익힌다. 학문이 깊고 전각(篆刻)에 이름이 높았던 이최지의 영향을 받은 이인상은 서예와 전각에 두각을 나타낸다. 하급 관리로 전전한 그의 일생은 가난하였지만, 예술의 끈을 놓지 않 았다. 그의 문인화는 형태의 아름다움보다 고의(古意)를 담은 고고한 정신력을 표현했다. 말년에는 은거 생활을 하며 그림에 몰두한다. 소나 무를 즐겨 그렸는데, 「설송도」와 「검선도」, 「송하독좌도」, 「송하관폭도」 등이 이때 제작되었다. 「검선도」는 소나무 아래에 선인(仙人)이 칼을 옆에 세워둔 채 앉아 있는 그림이다. 선인은 장엄하리만큼 근 엄하다. 마치 「설송도」에 보이는 소나무에 자신을 그려 놓은 것 같다. 「송하독좌도」 역시 소나무를 배경으로 도 인이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신세가 처량하여 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인상의 시를 보고 절친 단릉(丹陵) 이윤영(李胤 永, 1714~1759)은 “능호관의 시는 봄 숲의 외로운 꽃이 요, 가을 밭의 백로다”라고 평했다. 추사(秋史) 김정희 (金正喜, 1786~1856)는 이인상의 그림과 글씨를 보고 “예서법과 화법에 모두 문자기(文字氣)가 있다”며 문인 화의 대가로 칭송했다. 미술사가 유홍준은 “능호관의 그림은 금사리(金沙 里) 백자 같은 예술”이라 할 만큼 순백의 문인화를 으뜸 으로 꼽았다. 그의 예술세계는 화려하거나 순간 사람의 그림과눈을 맞출때 슬기로운문화생활 지금이순간, 바로이그림이야기 눈이 내리면, 집 근처에 있는 천을산으로 향한다. 눈 구경은 산에서 하는 것이 제격이다. 정상에는 수령이 낮은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이십여 해 동안 지켜본 소나 무가 제법 어른티를 낸다. 가지마다 눈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눈이 얼어서 투명한 겨울옷을 걸친 듯한 소나무도 있다. 푸른 소나무는 추울수록 돋보이지만 꽁꽁 언 채 서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 (李麟祥, 1710~1760)의 「설송도」가 겹쳐진다. 「설송도」는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흰 눈을 맞아 얼어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작품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곧게 뻗은 나무는 보란 듯이 고고하다. 그 뒤 로 휘어진 소나무도 있다. 서로 의지하듯 엉겨있는 소나 무가 예사롭지 않다. 소나무는 굴곡진 삶이 새겨진 화가 의 자화상 같다. 82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