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9월호

기업의 전유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 관계자나 부유층의 갑질은 종종 언론에 보도되지만, 우리 삶의 훨 씬 더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갑질은 보도되 지 않는다. 교사에게 부당한 요구와 억지성 민원을 제기 하는 학부모들처럼 그것이 갑질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이들의 갑질은 땅콩 회항 훨씬 전부터 만연해 있었다. 갑질의 본질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부당한 일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갑질은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대인관계에서 나타난다. 직장에서 상사가 후임에게, 선배가 후배에 게, 연장자가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갑질은 대상과 맥락,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꼬 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 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갑질이다. 심지어 누군가의 갑 질에 분노하던 을이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 른바 병(丙)이나 정(丁)에게 상대적 갑질을 하는 모순 된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이러한 모순을 제대 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갑질을 근절하기 위한 어떠한 노 력도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배하거나 양보하거나, 한국인의 권위주의적 갈등 해결 방식 한국 사회에서 갑질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 고 갑질이 진정 근절되려면 어떤 일들이 선행되어야 할 까? 갈등 해결 전략의 문화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지배’와 ‘양보’라는 갈등 해결 전략을 주 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 해결 방식은 갈등 자체에서 멀어지고자 하 는 ‘회피’, 상대를 억누르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 키려는 ‘지배’, 자신의 요구를 접고 상대의 요구에 순응 하는 ‘양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차선책을 찾는 ‘타 협’, 상대방을 만족시키면서도 자신의 요구를 극대화하 는 ‘통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개인의 욕구와 지향을 중시하는 개인 주의 문화(미국)에서는 회피나 지배가, 집단 내의 조화 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한국, 일본)에서는 ‘양보’와 ‘타협’ 등이 우세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는 이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국인의 ‘지배’ 점수는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도 높고, ‘양보’의 점수는 집단주의 문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일본보다 높았다. 이런 결과 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의 틀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 상으로, 보다 한국적인 문화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지배’와 ‘양보’라는 갈등 해결 전략은 갑질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배와 양 보가 일견 모순되는 전략인 듯 보이지만 이는 상대방의 지위가 개입되면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상대에게는 ‘지배’를, 자신보다 지위가 높 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는 ‘양보’를 사용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행위의 경향성을 ‘권위주의 적’이라 한다. 권위주의란 상대의 권위에 따라 자신의 행위 양식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갖는데,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권위가 시작되는, 상대방의 지위에 관심을 갖 고, 그 지위로 상대방과 나의 위치가 파악되는 순간 상 대방에게 하게 될 행동의 종류와 범위를 결정한다. 쉬운 말로 하면, 권위주의적 문화를 만드는 것은 ‘지위가 곧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중국이나 우리나 라처럼 오랜 관료제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개인주의 문화 74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