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3월호

하게 읽히도록 수정·편집하는 정도만 도와드리고 있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 씨의 채무경위서 가 도착했다. 채무가 있기까지 그간의 경위를 적어내려 간 의뢰인의 경위서는 서류 준비에 늑장을 부린다고 못 마땅하게 여겼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 씨는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고,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성년을 맞이하면서 좁은 시골에 서 이런저런 알바를 했지만, 학창시절 본인을 괴롭혔던 이들을 고객으로 대하는 일이 생기면서 알바도 그만두 고, 사회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답답함을 느낀 ○○ 씨는 문득 고향을 떠나야 제대 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양에 살고 있는 언니를 따라 낯선 도시 안양으로 올라와 새로 일자리를 구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졸의 20대 초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 자리는 흔히 ‘콜센터’라 불리는 ‘고객상담센터’ 정도였다. 이직률이 높은 콜센터는 취업의 문턱이 낮아 ○○ 씨가 취업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기근속 은 다른 문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도 감정노동으로 인 해 힘들어한다는 콜센터에서 이미 마음의 병이 깊어진 ○○ 씨가 오래 버티기는 힘겨웠을 것이다. 결국 ○○ 씨 는 도시에 올라와 겨우 얻은 일자리에도 적응하지 못하 고 퇴사를 선택한다. 이런 딸을 보다 못한 엄마는 그냥 고향에 내려와 작 은 가게라도 하라며, ○○ 씨 앞으로 작은 액세서리 가게 를 내주었다. 엄마와 함께 운영하면 서울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고객상담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 씨의 사정을 가엽게 여기는 주변 친지들에게 돈을 조금씩 융통해 마련한 작은 상점. 이곳에서라도 마 음의 병을 치유하며 사회생활에 적응하면 좋았을 텐데, 이 가게에도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방문하기 시작했고, 두려움을 느낀 ○○ 씨는 도망치듯 다시 안양으로 올라 왔다. ○○ 씨를 위해 가게를 시작했던 어머니는 정작 ○ ○ 씨가 고향을 떠나자 상점 운영을 어찌해야 할지 우왕 좌왕하다가 코로나를 맞게 되었고, 어려워진 상점 때문 에 대출을 받게 되면서 그것까지 ○○ 씨 앞의 채무로 남 게 되었다. 청년의 파산 신청, 잘 해주지 않는 이유 필자는 5년차 법무사가 된 지금까지 개인회생·파산 사건을 총 200건 가까이 직접 진행했다. 상담한 건수로 치면 아마 500건은 족히 넘어갈 것이다. 개인회생을 처음 맡을 때는 의뢰인이 “저 우울증이에요.”라고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경위서에 그 부분을 강조하면서 낮은 변제율을 허락해 달라고 법원에 선처를 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뢰인들이 “우울증”을 개인 회생 진행을 위한 일종의 ‘치트키’로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우울증에 빠져있다고 했 는데, 낮은 변제율로 인가결정을 받고 나면 언제 그랬냐 는 듯 순식간에 나보다 더 밝아졌고, 우울증이라면서도 기민하게 변제율을 낮추기 위한 트릭을 먼저 제안하는 가 하면, 서류준비도 누구보다 재빠르게 해내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이제는 “법무사님, 저 우울증이에요”라고 하면, “네, 요즘 빚이 많으신 분들은 다 우울해하세요.”라고 받아칠 정도가 되었다. 여러 사건 을 다루면서 사람들의 고통에 무디어진 것인지도 모르 겠다. 우리 사무소 간판에는 크게 “개인회생·파산”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파산 상담을 하는 분들 개인회생을 하려면 ‘보정’을 해야 하는데, 1차 서류보다 훨씬 더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보정기간도 정해져 있다. 그 기간 안에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면 사건이 기각되어 개인회생 신청을 안 한 것보다 더 불리해질 수도 있다. 의뢰인이 간단한 1차 서류 준비조차 힘들어하는 상황이라 나는 파산 신청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11 2024. 03. March Vol.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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