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2026. 6. June Vol. 708 사람의 표정만으로도 사건의 결이 어느 정도 보일 때가 있다. 억울함이 큰 사람은 대개 말을 빨리 쏟아 내고, 정말 잘못한 사람은 중요한 대목을 슬쩍 빼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은 둘 다 아닌 사람이 있다. 사건이 어 쩌다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자기 스스로도 설명을 잘 못하고, 다만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만 두 손에 쥔 채 찾아오는 사람이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이 그랬다. 처음 의뢰인이 답변서를 의뢰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는 너무 억울해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일까’ 의아해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떤 대목에서는 지나 치게 억울해했다. “법무사님, 제가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물건을 가져간 것도 아닌데 왜 제가 배상을 해야 하나요?”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말은 정확히 이 사 건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 그에게는 어디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한 2018년 12월 중순경, 사무실에 답변서 작성 의뢰 전화가 왔다. 딱 히 사무소 광고를 하지 않는 필자는 전화가 오면 습 관적으로 누구 소개로 전화하셨냐고 물어보곤 하지 만, 이번 통화에서는 그 물음을 생략하였다. 소개를 받고 전화를 하는 경우는 보통 소개한 사 람을 먼저 말하는 법이지만, 이번 통화는 그렇지 않 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전화는 여러 곳을 알아 보다가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들어 또 다른 곳을 알아보기 위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전화한 사람은 박 피고(가명)라는 사람으로, 손해 배상소송 소장이 날아왔는데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 었다. 절차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평생 법원 근처 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거짓말에 속아서 한 거짓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열혈 박법의 민생사건부 법으로 본 세상 김 원고(원고)는 이름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군 부대 부사관(성명불상자)에게 중고 컴퓨터 10대 를 매입하기로 하고, 화물 운송업자를 연결해 주 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그 컴퓨터들을 인수받아 자신의 사무실로 운송해 줄 업자를 찾았다. 바로 박 피고(피고)였다. 박 피고는 오전 무렵 김 원고에게 전화해 “곧 부대 쪽에 도착한다”고 말했으나, 바로 직후 김 원 고에게 문자를 보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대신 잘 아는 기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최철수(가명)’라는 화물 차 기사의 연락처와 차량번호를 알려 주었다. 김 원고는 최철수에게 전화하여 컴퓨터를 인 수받았는지 확인하고, 이상 없이 인수받았다는 취지의 말을 들은 뒤인 낮 12시경, 운송료 1,200 만 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인수받았다는 컴퓨터 10대는 끝내 김 원고의 사무실로 오지 않았다. 김 원고는 여러 차례 최철수에게 전화를 했지 만 받지 않았고,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박 피고에게 수차례 전화하여 추궁했다. 그러자 박 피고가 털어놓은 사실은 놀라웠다. 박 피고는 김 원고의 주문에 따라 현장에 도착 한 후 군부대 부사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부 사관 왈, “평소 자주 거래하는 기사에게 물건을 보 낼 테니 그냥 돌아가라, 빈 차로 돌아가더라도 운 반비는 주겠다, 그 대신 김 원고에게는 급한 일이 김 원고는 군부대 부사관을 사칭한 성명불상자 로부터 중고 컴퓨터 10대를 매수하기로 하고, 박 피 고를 통해 운송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은 뒤 물품대 금 1,200만 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건 이 인도되지 않았고, 김 원고는 박 피고의 거짓말 때 문에 송금에 이르렀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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