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6월호

에 들어오기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고개를 약 간 옆으로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호기심이 들어 몇 가지 더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라서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 가 스스로 벌어야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겁 안 나 요? 북한보다 나아요?”라고 물었더니, 아이 엄마는 곧바 로 “훨씬 낫줘!”라고 답했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있어 서 식당에서만 일해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씩은 버는 데, 한 달 방세 50만 원 내고 나면 나머지 150만 원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억척스러운 것인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가 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것도 아픈 아이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막막해져 숨이 차올랐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삶의 희망이었으리라 생각해 보니, 자본주의에 물들 대로 물든 내가 너무 속 물이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 엄마는 국내에 들어와 먼저 정착한 어머니께 아이를 맡겨두고 대구직업학교를 시작으로 각지를 떠돌 며 돈을 벌었는데, 어머니나 외삼촌도 한국 사회에 적응 하기 힘든 처지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국내로 들어오던 무렵, 아이 아빠와는 영원히 이별 하고 어떻게든 혼자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생계를 위해 아이를 늘 집에 혼자 둔 것이 마음의 병을 들게 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술회했다. 아이는 평생 사진 속의 아빠 얼굴만 보고 자랐으 며, 마음속 깊이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방황하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중학교만 가까스로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 했다. 지금은 뚜렛장애 치료와 함께 향후 검정고시나 대 안학교 입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춘기를 겪으 며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아이의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껴져 더 늦기 전에 아빠를 찾아주 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전남편거주지역과핸드폰번호만알아요”, 서울에서이서방찾기 안타까운 사연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아이 아 빠는 어떻게 찾을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이 엄마는 국내 에 들어와 아이 아빠에게 한 번 연락해서 만난 적이 있 었는데, 당시 경기도 시흥에 거주한다는 말을 들었고, 아이 장난감과 동복을 소포로 부쳐온 적이 있었는데 ‘경 기도 시흥시 정왕동’까지만 기억한다는 것과 휴대폰 번 호가 전부라고 했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중국 호적관서에서 혼인증명 서와 아이 아빠의 인적사항 관련 서류를 받아와야만 소 송이 가능하다고 했다는데, 피고 특정 때문인 것으로 보 였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중국 당국에서는 적색 체류자 신분으로 북송 대상이므로 중국에 입국하는 순간 체포 되는 처지여서 현지 방문은 물론, 브로커를 통해서도 혼 인서류 확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목숨이 경각 에 달린 마당에 무턱대고 서류를 받아 오라고만 하면 나 12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