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3월호

1960.2.28. 2월의 마지막 날, 전주역. 입춘이 한 참 지났지만 아직도 허리춤에 스며드는 봄바람은 차갑기만 하였다. 역 앞은 시간이 흐를수록 논산훈 련소로 떠나는 입영자들과 배웅 나온 가족들로 뒤 엉켜 마치 시골장날처럼 붐비고 있었다. 당시 세상 분위기는 4·19혁명이 일어나기 전 매 일 정권퇴진을 외치는 데모로 시작하여 데모로 해 가 지는 하루였으므로 정상적인 학교 수업은 기대 할 수가 없었다. 마침 국가에서 선생은 12개월, 대학생은 18개 월만 복무하도록 병역의 특혜를 주어 짧은 기간 내 군 복무를 마치도록 군 입대를 유도하고 있었다. 속 칭 “빵빵, 00”으로 시작한 군번이 우리에게 부여한 군번의 첫머리 숫자 표시이다. 나는 이 기회에 병역을 필할 요량으로 자원입 대 신청을 하였고, 그 결과 그 28일 10시까지 전주 역으로 집합하라는 통지를 받고 오늘 전주역에 온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입대를 하였으 므로 군대생활의 실정을 모르는 탓도 있었지만, 한 편 구전으로 전하여진 “매일매일 얻어맞지 아니하 면 밥맛이 없다”는 군 생활의 어려움이 만연하였던 시절이라 왜 서둘러 고생을 자초하느냐고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오전 11시쯤, 형식적인 자원입대자 확인을 마치 고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논산행 기차에 오르 라는 수신호를 보고 뒤돌아보았더니 플랫폼 한쪽 에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굵고 검은 안경테 너머로 흘러내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그날 아버지의 눈물은 무슨 의미였을까. 아들 이 철도 들기 전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새어머니 밑 에서 초중고를 무사히 마치고 어느새 장성하여 대 학생이 되었는가 싶었는데, 이제 사내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군 입대를 하는구나 하는 안도의 눈 물이었던가, 아니면 큰 풍파 없이 온실에서 자란 화 초처럼 연약하게만 보인 아들이 그 어렵다는 군 생 활을 제대로 마칠 것인가 하는 우려 속에서 나온 눈 물이었을까. 연무행 기차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하고, 많 은 사람들 가운데 까치발을 딛고 두 손을 흔드시던 아버지의 애처로운 모습이 60여 년이 흘러간 지금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수상 아버지의 눈물 WRITER 정하택 법무사(서울중앙회) 슬기로운 문화생활 74 문화路,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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