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2026. 5. May Vol. 707 숨은 뜻을 담아 “안 한 지 오래되었다”고도 말하게 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두 표현은 뉘앙스가 다르다. 전자 는 마지막으로 한 때가 오래전이라는 말이고, 후자는 안 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리키는 상황은 똑같다. 이처럼 서로 상반돼 보이는 두 표현이 같은 뜻으로 통하는 경우는 우리말 에 꽤 많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자주 의견을 듣는 두 분을 꼽 으라면 유시민과 박구용이다. 박구용은 철학자이자 대학 교수이니 ‘교수’라는 호칭을 쓰면 무리가 없다. 그런데 유시민은 ‘작가’라고들 부른다. 나는 약간 고 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작가(作家)’의 ‘作’은 ‘짓고 만든다’는 뜻이고, ‘저 자(著者)’의 ‘著’는 ‘드러내고 저술한다’는 뜻이다. 보 통 문학 등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고, 학술적 글쓰기나 논문을 써내는 사람은 ‘저 자’라고 부른다. 다른 책에서 인용하거나 지목할 때 이 둘의 구분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유시민이 현재 최고의 저술가 중 한 사람임 은 분명하지만, 그가 써내는 책들이 문학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유시민 저자’라거나 ‘칼럼 니스트 유시민’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기는 마찬 가지다. 도올(檮杌) 김용옥처럼 ‘선생’이라고 부르면 참 좋 겠는데, 아직 60대라서인지 그런 호칭은 잘 쓰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는 에세이스트이고 모럴리스 트(moralist)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기엔 길 고, 두 글자로 줄여 부르려다 보니 결국 ‘작가’라는 지 칭에 안착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라는 말이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글 쓰는 사 람’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는 현 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ㅈ’을 반복하고 ‘ㅐ’와 ‘ㅔ’를 조합해서 만든, 정말 혼동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재제’와 ‘제재’가 그것 이다. ‘제재’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문학작품 의 바탕이 되는 구체적인 재료, 즉 소재(素材)와 주 제(主題) 사이에 놓인 중간 개념으로서의 제재(題材) 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더 자주 접하는 뜻 으로, 규칙이나 법에 어긋난 행위를 못 하게 통제하 거나 처벌한다는 의미의 제재(制裁)이다. 국제 사회가 특정 국가를 상대로 경제적 압박을 가할 때 쓰는 ‘경제 제재’가 바로 이것이다. 두 한자 어의 음이 같으니 혼동할 만도 하지만, 문맥을 잘 살 피면 구별이 어렵지 않다. 반면, ‘재제(再製)’는 말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것이 다. 법률 영역에서는 낯설지 않은 말이었다. 지금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되어 사라진 호적부(戶籍簿) 가 훼손되거나 멸실되었을 때, 이를 다시 편제(編制) 하는 절차를 ‘재제’라 불렀다. 실무에서는 ‘호적 재제 신청’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쓰였으니, 법무사라면 한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두 단어가 뒤바뀌어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호적 관련 문서에서 ‘재제’ 대신 ‘제재’라고 적힌 것을 본 적이 있고, 반대로 어 떤 단체의 내부 규정에서 회원의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 조항을 ‘재제’라고 써 놓은 경우도 있었다. 발음이 같으니 귀로 들어서는 구별이 안 되고, 손이 먼저 가는 대로 치다 보면 틀리기 십상이다. 법률 문서 에서 두 단어가 뒤바뀌면 뜻이 전혀 달라지니, 한 번쯤 손가락을 멈추고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겠다. 작가인가, 저자인가? 재제를 제재하자! 법률가의 바른 글쓰기 슬기로운 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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