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무사 6월호

58 아들에 대한 미안함, 고통, 아쉬움, 원망, 자책, 그리고 찰나를 부여잡은 희망 같은 것이 그 눈빛 속에 떠올랐 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신성록 씨의 찰나의 희망을 현 실로 만들어 줘야겠다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신성록 씨의 파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그 런데 무엇부터 해야 하지?’ 정신은 차렸지만 무엇부 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답은 책 속에 있다.’ 통장에 수임료가 꽂히면 아무리 두꺼운 책도 하루 만에 다 볼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고 했던 선배 법 무사님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내게 있는 회생 파산에 관한 모든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선배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몇 시간 만에 책을 모조리 읽었다. 물론 나의 초능력이 발휘된 건 아니었다. 책은 없었 다. 신입 법무사 오리엔테이션 때 받은 책의 몇 페이 지, 협회 연수 교과서, 그리고 여기저기서 얻은 자료 들뿐…. 내겐 제대로 된 채무자를 위한 회생 및 파산 에 관련된 책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기 찬스를 썼다. 다행히 동기 중에 변 호사 사무장으로 회생·파산 업무를 오랫동안 하셨던 분이 계셨기 때문에 염치 불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채권자 수와 부채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해 요.” 동기 법무사님의 말에 신성록 씨에게 채권자를 알 고 있는지 물어봤다. “몇 년 전 빚을 갚아 보려고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갔었어요. 그런데 그때 보도 듣도 못한 채권자들이 무 지 많더라고요. 그래서 엄두도 못 내고 포기했어요.” 우선 정확한 채권자를 특정하고, 부채증명서를 발 급받아 채무액이 얼마인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해야 할 제1순위 일이었다. 다행히 동기 법무사님이 거래하 는 신용정보업체에 의뢰를 해 줘서 금융권에 있는 채 권자와 채무액, 그리고 소송으로 확정된 채무 및 압류 건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채권자는 9곳, 압류가 23개, 2~3천만 원 정도라고 생 각했던 원금은 양도에 양도를 거치면서 어느새 6천9백 만 원이 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소송비용과 이자 등이 합쳐져 4억 3천만 원이 넘는 액수로 불어나 있었다. 신성록 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천만 원이었던 원금이 20배의 크기로 커져 있 을 것이라는 걸 어느 누가 쉽게 상상을 하겠는가? 부채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의뢰인(채무자)의 재 산을 파악해야 했다. 이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 동산도 차도 없었고, 거주하고 있던 집도 보증금이 100만 원밖에 되지 않아 파산재단에 속할 재산이라 고는 없었다. 혹시 몰라 의뢰인을 옆에 앉혀 놓고 금융결제원 홈 페이지에 들어가 ‘나의 계좌 한눈에 보기’란에 들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은행권 통장내역과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재산에 관한 자료를 모두 출력했다. 통장이 모두 압류된 탓에 금융거래 내역도 없었고, 보험이라고는 실비보험이 전부였다. 다음으로는 홈택스에 들어가 의뢰인 이름으로 과세 된 원천징수 및 사업소득을 조회해 5년치를 출력해두 고, 다시 ‘정부24’ 사이트에 들어가 주민등록에 관련 된 서류와 지방세에 관련된 서류를 발급받았다(전국 단위 과세증명은 발급이 안 돼 의뢰인에게 직접 발급 받아 오게 했다). 그렇게 서류를 발급 받아놓고 보니 서류가 얼추 200장에 가까웠다. 서울회생법원에 들어가 제출서류를 보면서 제출해 야 될 서류를 분류해두고, 채무에 이르게 된 경위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MBTI가 ‘극 F’ 성향이다. 그래서 감정의 변동 폭도 크고 변화도 잦다. 공감도 잘하는 편이라 어쩔 땐 당사자보다 더 흥분하는 탓에 당사자를 적잖이 당 황시키기도 한다. 그랬던 나였지만 법무사 공부를 시작한 후론 드라 어느새 20배 불어난 원금 ‘파산선고’, 그러나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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