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2026년 6월호

법조 제75권 제3호(통권 제777호) 연구논문 - 370 - 는 것이었다.12) ‘임시조관’의 제정 자체는 중화민국헌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었 으나,13) 그 내용은 총통으로 하여금 계엄을 선포하고 그 기간 중에 긴급조치를 취하며 연 임제한 규정의 적용 없이 계속하여 선출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본래 중화민국헌법상 국가원수의 역할은 총통이 갖되 최고행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은 ‘행정원’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지만(제35조, 제53조) 임시조관으로 인하여 총통이 사실상 아무런 견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제왕적인 권력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구도가 붕괴해버렸다.14) 보다 구체적으로, 임시조관 제1조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지속되는 동안인 ‘동원감란 시기’에는 총통이 헌법 제39조 및 제43조에 따른 절차의 제한을 받지 않고, 즉 입법원의 승인 없이, 계엄과 긴급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다. 또한 임시조관은 총통과 부 총통이 헌법 제47조에 따른 연임제한을 적용받지 않고 재선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으며, 2년 뒤에 이와 관련된 법안을 심의하기 위하여 국민대회 특별 회기를 소집한다고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시조관의 한시헌법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던 2년의 일몰 규정은 이후에 임시조관이 수 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사라졌고, 오히려 ‘동원감란시기의 종료는 총통이 선언한다’는 규정이 추가되게 되었다. 장제스는 죽을 때까지 동원감란시기의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련의 규정은 종신 총통제로 귀결되었다. 특기할 것은 중화민국헌법 본문과 마찬가지로 임시조관도 본디 대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 었으며, 이 때문에 오히려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장악하는 복합적인 명분이 되어줄 수 있었 다는 점이다. 임시조관이 최초로 제정된 것은 1948년 4월 18일로서 이 무렵에는 국민당이 아직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과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결국 국공내전에서 패 배한 국민당 정부는 1949년 5월 20일에 대만에서 계엄을 선포하고 1949년 말렵에 이른바 ‘국부천대’, 즉 대만으로 정부를 옮기는 후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때에 국민당 정 부는 이후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겠노라는 선언을 하게 된다. 즉, 국공내전이 아직 끝난 것 이 아니라는 점과 중국 대륙 전체에 대한 ‘법통’이 여전히 ‘중화민국’에 남아 있다는 점을 12) 대만 정부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임시조관을 “Temporary Provisions”라고 번역하고 있다. 대만 총통 부,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Temporary Provisions)”, (2026. 3. 22. 방문) - <https://english.presid ent.gov.tw/page/93>. 13) 대만 사법원 1985. 9. 27. 자 제199호 해석. 14) Jau-Yuan Hwang, Fort Fu-Te Liao & Wen-Chen Chang, Development of Constitutional La w and Human Rights in Taiwan Facing the New Century, Institute of Developing Economi es(2003. 3.), p. 12; Tay-sheng Wang, “The Legal Development of Taiwan in the 20th Cent ury: Toward a Liberal and Democratic Country”, Washington International Law Journal Vo l. 11 No. 3, (2002. 6.), p.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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