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제75권 제3호(통권 제777호) 연구논문 - 372 - 사례가 바로 만년국회(萬年國會)이다. 국부천대 과정에서, 국민당 정부가 아직 중국 대륙 본 토에 있을 무렵인 1947-1948년에 선출·임명된 국민대회와 5부 기관 인원들이 대거 건너 왔는데, 그렇다면 이들의 임기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특히 그 중에서 도 국회에 해당하는 국민대회, 입법원, 감찰원이 가장 문제였다.19) 본래대로 하자면 헌법에 서 정한 연수가 도과하는 대로 임기가 끝난 것으로 하고 후임인 제2기 의원들을 선출해야 하였겠으나, 중화민국헌법은 당초에 중국 전체를 상정하고 만든 헌법이었기 때문에 국민대 회 등의 헌법기관도 중국 전역에서 모인 대표로 구성되게끔 되어 있었고, 따라서 대만 지역 에서만 실시되는 선거로는 당초에 헌법에서 상정한 절차에 따라 이들 기관을 구성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위 3개 기관 중 초대 입법원 및 감찰원 의원들의 임기에 관한 문제가 대만 사법원에 회부되었고 대만 사법원은 1954년 1월 29일자 제31호 해석에 서 ‘현재로서는 제2기 의원들을 선출할 수 없는 중대한 국난에 처하여 있으므로, 헌법의 규 정에도 불구하고 제1기 의원들은 후임이 선출될 때까지 직을 유지한다’는 취지로 결정하여 제1기 입법원 및 감찰원 의원들 역시 총통과 마찬가지로 종신직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입법원 및 감찰원에 대한 이 결정의 영향으로 국민대회 역시 대륙에서 선출되었던 제1기 의원들의 직을 그대로 유지하였다.20) 결과적으로 대만 국회는 2차대전 직후 중국 본토에서 뽑힌 의원들이 1990년대까지 대만에서 그 직을 유지하는 기이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이들 의원들은 국민당 정권을 지지하였다. 이리하여 긴급헌법 체제는 사법원의 재가를 거쳐 인류사 최장 계엄인 40년 대만 계엄령의 근간이 되었다.21) 그러나 이와 같은 기형적인 체제가 대만인들의 지지를 받기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국민 saging Legitimacy in the pre-Global South's Quest for Modernity in China and Taiwan”, A si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 19 No. 3, (2024. 12.), p. 447. 19) 쑨원이 제창한 5권분립 체제를 따른 중화민국헌법에서 국민대회는 5부보다도 위에 있는 최상위 기구로 서 ‘정권(政權)’을 행사하였는데(제25조), 구체적으로는 총통의 선출과 헌법의 개정 등을 담당하였다(제2 7조). 일반적인 입법권은 5부 중 하나인 입법원에 속하였다(제62조). 역시 5부 중 하나인 감찰원은 동의 ㆍ탄핵ㆍ감찰 및 감사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한국으로 말하자면 감사원의 기능과 국회 기능 중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제90조). 대만 사법원은 1957년 5월 3일자 제76호 해석에서는 ‘국민대회, 입법원, 감찰 원은 민주국가에서의 국회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가, 1993년 7월 23일자 제325호 해석에서는 ‘1992 년의 제2차 증보수정 개헌으로 인하여 감찰원이 더 이상 대의기관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제76호 해석은 감찰원에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대만이 양원제나 3원제를 취한 것 은 아니었다. 20) Jiunn-rong Yeh, 앞의 책(주 15), p. 35. 21) 이처럼 시공간적 현실에 맞지 않게 된 헌법을 억지로 강요하는 헌법공학적 조치는 민주적 대표성에 대 한 조작(manipulation)이 벌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글로 Jiunn-rong Yeh, 앞 의 논문(주 16), pp.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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