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제75권 제3호(통권 제777호) 연구논문 - 374 - 국과 “접촉하지 않고(不接觸), 대화하지 않고(不對話), 타협하지 않는다(不妥協)”는 기존의 삼 불(三不) 방침을 철회한 것이다.25) 두 번째는 대만 사법원의 결정이었다.26) 장징궈가 계엄을 해제하고 몇 달 뒤인 1988년 1월에 사망하자 그 후계자인 리덩휘가 총통직을 계승하고 이듬해인 1990년에 재선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규정에 따르자면 국민대회에서 간선의 방식으로 선출을 하도록 되어 있었 다. 그러자 학생들과 시민 사회가 수 주 동안 전례없는 규모의 시위를 하며 만년국회의 폐 지, 직선제 도입, 임시조관 폐지 등을 요구하였다. 국회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였고 결국 만년국회의 임기에 대한 문제가 또다시 사법원에 회부되게 되었다. 이에 대만 사법원은 1990년 6월 21일자 제261호 해석으로 ‘당초 1954년 1월 29일자 제31호 해석 에서 초대 국회 의원들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하였던 것은 국난에 대처하기 위한 필요가 있 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직을 무기한으로 유지하여도 좋다거나 후임자를 선출하 는 것이 금지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대만 자유지구에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은 가능하므로 제1기 의원들은 1991년 12월 31일까지만 그 직을 유지하도록 하고 전국적으 로 다음 회기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도록 한다’는 취지의 전향적인 결정을 내놓았다. 이로 인하여 임시조관이 폐지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3. 1991 - 현재: 개헌, 민주화, 양국론(兩國論) 1991년 이후로 대만에서는 임시조관의 폐지와 총 7차에 걸친 ‘증수(증보수정)’의 형태로 민주화 개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임시조관과 마찬가지로 ‘증수’는, ‘본문’ 즉 기존의 ‘중화 민국헌법’의 문구를 직접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칙과도 같은 별도의 조문들을 본문 의 바깥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헌법 개정이었다. 증수로 인하여 덧붙여진 수정헌법 조항들을 증수조문이라고 한다. 당초 헌법 개혁 논의에 있어서는 아예 과거와 단절하고 새 로운 헌법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1947년의 중화민국헌법을 폐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법통’을 중시하던 국민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안이었다.27) 이에 타 협책으로 별도의 증수조문을 신설하여 본문 부분은 그대로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그 형식 25) 김재영, “반공국가의 위기와 민족주의의 부상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과 대만의 대중정책에 관한 비교”, 복잡성과 복합성의 세계정치, 사회평론아카데미(2017), 300면. 26) 이하 대만 사법원 제261호 결정에 대한 배경은 Wen-Chen Chang, “Amending an Existing Consti tution - Taiwan”, From Big Bang to Incrementalism: Choices and Challenges in Constitution Building (Final Report), Melbourne Forum(2017). 27) Hui-Wen Chen, 앞의 논문, p.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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