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2026년 6월호

대만 헌법사에 대한 연구 - 379 - 다. 제7차 증수조문은 헌법 개정 권한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줌으로써 대만 헌법의 민주화를 완성한 동시에 그 가중정족수 요건으로 인하여 헌법 개정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39) 아. “하나의 중국”과 “양국론” 대만 국민당 정부는 수립 이래로 민주화 시점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 즉 ‘중국이란 중 화민국을 의미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중국도 같은 이름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가지 고 있었지만 그 뜻은 물론 ‘중국이란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편이 정통성 있는 정부인지에 대하여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와 대 만이 하나의 국가에 속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는 양안이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92년에는 중국과 대만이 양측의 관변단체들을 통하여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 에 속한다는 공통의 관점을 도출해낼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양안관계가 활성화될 수 있었는 데, 이러한 입장을 “92공식” 내지 “92컨센서스”라 한다.40)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대만인들에게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은 민주적 대표성이 아닌 법통을 통하여 강요된 통치 질서를 연상하게 하는 측면도 있었다. 민주화 이후로는 대 만 정부는 이러한 92공식에서 어느 정도 이탈하여 독립을 주장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 게 되었다. 국민당 리덩휘 총통은 1993년 이래로 ‘중화민국은 대만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륙에’ 있다는 입장을 계속 피력하며 유엔 재가입을 추진하였다. 또한 1998년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중화민국 주권 국가 지위강화 TF팀(强化中華民國主權國家地位小組)’이라는 것을 만들어 학술적·법리적인 측 면에서 대만의 주권국가성을 연구하여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였는데, 이를 토대로 리덩휘는 1999년 7월 9일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양안관계가 “특수한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고 밝힘으로써 이른바 “양국론”을 공식화하였다.41) 즉,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주권국가라는 것 39) Jiunn-rong Yeh, 앞의 책(주 15), pp. 47~48. 40) 우효평, “통일이슈와 정치 갈등의 변화: 민주화 이후 한국과 대만의 비교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 교(2017. 2.), 156~159면; Yu-Jie Chen, ““One China” Contention in China–Taiwan Relations: Law, Politics and Identity”, The China Quarterly Vol. 252, (2022. 12.), pp. 1034~1035. 41) 우효평, 앞의 논문, 162~165면; 김중섭, 앞의 논문, 341면; “两国论”出笼前后_中华读书报_光明网, 中 华读书报, 1999. 10. 27. 이 때 TF에는 이후 대만의 총통이 되는 차이잉원도 참여하고 있었다. 리덩휘 가 양국론을 제기하게 된 배경에 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Neng-Shan Ling, “Lee Teng-hui's “TwoState” Theory: Perceptions and Policy Change”, Soochow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29 No. 4,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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