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헌법사에 대한 연구 - 383 - 전의 연장선상에서 분단이 되었고 그러한 체제가 비민주적인 정권 유지의 명분이 된 점에 서 같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뒤 1987년에 비로소 각 자 민주화의 봄을 맞게 되고 소련이 무너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에 남북기본합의서 와 92합의를 각각 타결하여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이 또 같다. 실효지배가 미치지 않게 된 지역까지 포함하는 내용의 영토조항과 분단의 현실을 반영한 통일조항을 아직까지 헌법상 유지하고 있는 점도 같다. 그러나 대만은 본질적으로 수세에 놓인 국력과 국제적 위상의 차 이로 인하여 “흡수 통일 반대”를 외치며 양국론을 택하게 되었고, 이와 대조적으로 남한은 그 파트너인 북한이 주창한 분리론인 ‘두 국가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대만의 양국론이 북한의 두 국가론과 비교하여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 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정치(realpolitik)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양국론과 두 국가론은 결국 원하지 않는 흡수 통일의 배격이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현재 공식적으로 취하는 입장은 “어떠한 흡수통일 추구도 하 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만,53) 물론 이것은 남한이 어떠한 작위를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고 북한의 문호가 진정으로 개방되어 주민들이 각성할 경우에는 남한이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북한 체제가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는 북한 정권의 두려움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할 것이다.54) 반면 대만과 북한의 입장을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기도 어렵다. 대만의 경우에 양국론은 – 국민당 등의 친중(親中)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적지는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 내지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지만 – 민주적인 공론의 장에서 형성이 되 어 온 여러 담론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친중파 역시도 하나의 중국은 원할지언정 홍콩식의 일국양제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하여 북한의 두 국가론은 북한 주 민들이 80년간 받아들여 왔던 민족주의적 통일 담론과 동떨어진 것으로서, 주민들의 이해 나 지지 속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집권자가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일방적으로 도입한 것이 다.55) 또한 대만의 파트너인 중국의 경우 대만이 ‘법리독립’을 하는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 53) 박훈상·김준일, “李 “한반도 평화 선제조치 일관되게 추진”… 9·19 합의 복원 재강조”, 동아일보, (202 6. 3. 2.). 54) 남한이 북한에 비하여 국력이 열위였을 때는 오히려 남한이 남북교류에 소극적이고 북한이 교류협력을 먼저 제안하는 역전된 관계에 있었다. 이를 경제협력의 측면에서 주로 다룬 글로 조동호, 『남북경협 80 년: 절망과 기교의 역사』, (2025), 58~99면. 55) 유사하게, 평화적인 남북교류가 체제에 위협이 되므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채택한 것이라는 견해로 정구진, “남북교류·협력사업 관련 법제도 정비의 방향성에 대한 고찰: 두 국가론에 대 한 검토를 바탕으로”, 북한법연구(제34호), (2025. 12.), 257~258면. 다만 같은 글에서는 북한의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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