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제75권 제3호(통권 제777호) 연구논문 - 384 - 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반면에 남한의 경우에는 헌법상 통일의 방법이 “평화적 통일정책”으로 한정되어 있는 점에서도 규범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56) 실제로 북한 은 두 국가론을 반영하는 헌법개정을 한다고 하였는데, 북한 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그러한 개헌 내역을 남한에서는 제대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나, 대만식으로 표현하자면 ‘법 리독립’ 내지 ‘법리적 분리’를 북한이 헌법상 정식화한 것을 남한에서 확인하더라도 남한 정부가 전쟁을 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 헌정사는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 남한과 북한이 각각 취할 가능성이 있는 입장과 이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측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참고 사례가 된다. 특히 남한의 정책 입안자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주권적 의사를 고 려하지 않는 헌법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만인들은 중화민국헌법이 최초로 제정될 때에 제대로 된 참여를 하지 못하였다. 본토에 서 파견한 행정장관은 대만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익숙하므로 아직 민주주의 헌법을 전면 적용하기에는 수준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헌법의 적용마저 미루려 하여 이들을 일제 식민지 시절과 마찬가지로 2등국민으로 취급하였다. 또한 대만인들이 자유롭게 재산권을 행사하고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본토 정부의 목적을 위해 대만의 경제질서를 통제하였다. 이어 국부천대로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함에 있어서 민주적 대표성이 아닌 ‘법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존하였다. 여기 서 ‘외성인’에 남한을, ‘대만인’에 북한을 대입하여 본다면 남한 주도의 통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이미 적지 않게 대만 헌정사에서 나타나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한반도 전체에 대하여 갖는 정통성을 북한 주민으로서도 당연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전제하에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이 설계 되고 실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는 1987년 현행 헌 법에서부터 – 대만 헌정사에서 악용되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표현인 - ‘법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임시정부에 대한 역사적인 회고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57) ‘이 세대가 앞선 세대만큼 민족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관측 도 제시한다. 56) 한편 헌법 제4조에 있어서 ‘평화’를 통일의 방식에 대한 제약으로 파악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통일의 핵심적인 근거로서 한반도 민족주의의 구성요소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고찰하는 글로 김소연, “다문 화사회를 전제한 통일준비과정에서 민족의 의미에 대한 헌법적 재해석의 필요성”, 법조(제73권 제4호), (2024. 8.). 57) 법제처, 『헌법주석서(I)』, (20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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