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2026. 8. August Vol. 710 ‘비토’가 한자어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 내가 그랬다. 왠지 비교하고 성토한다는 뜻일 것 같았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나온 ‘비토(肥土)’는 점 토에 사토(沙土)가 적당히 섞인 기름진 땅을 의미한 다. 반면, 우리가 흔히 쓰는 ‘비토’는 정확히는 ‘거부’ 또는 ‘기각’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veto’다. 우리말 ‘거부’ 등으로 순화해서 쓰면 좋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말과 영어 발음이 같아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조인(調印)’과 ‘join’이다. 한자어 ‘조인(調印)’은 서로 약속한 문서에 도장을 찍는다는 뜻으로, 주로 국가 간의 약정을 체결할 때 사용하며 ‘비준(批准)’과 맥을 같이한다. 반면 영어 ‘join’은 연 결하다, 잇다, 또는 어떤 단체에 가입한다는 뜻이다. 발음과 어감이 비슷해 혼용하기 쉽지만, 이 둘은 어원과 쓰임이 전혀 다르다. 비유하자면, 합의를 ‘조 인’하지 않는 것이 곧 ‘비토’인 셈이다. 한편, 등산 또는 백패킹을 가끔 다니는 내가 최근 에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다. 보통 야영지에서 하루 자는 것을 ‘비박’이라 하는데, 잠을 자지 않고 무박 2 일 여행을 떠나는 경우를 ‘아닐 비’에 ‘머무를 박’을 써서 ‘비박(非泊)’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한자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박’은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야영’을 의미하는 독일어 ‘비바크(Biwak)’를 그대로 부른 말, 즉 외래어다. 요즈음은 ‘그냥 짐을 싸서 떠나는 여행’ 이라는 의미로 ‘백패킹(backpacking)’이라고 부르기 도 한다. 지난달 춘천의 ‘국립 채종원(採種園)’ 근처에 서 야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필요 없다’, ‘의미 없다’ 등의 표현은 관용구라고 생각해서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 러나 이 말들은 하나의 낱말이 아니므로 띄어 쓰는 것 이 원칙이다. 특히 ‘아무(런)’ 같은 관형사가 붙으면, 그 관형사가 수식하는 ‘필요’ 또는 ‘의미’가 하나의 명 사구를 이루기 때문에 그 뒤에 오는 ‘없다’는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 이런 것을 틀리는 전문가가 의외로 많다.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말이 까다롭다는 데 공감이 간 다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아무런 이상없이’도 틀린 표현이 된다. 관련 지식이 있어야 인정받는다는 뜻으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때 ‘면장’의 뜻 으로 읍장(邑長)이나 동장(洞長)과 같은 ‘면장(面長)’ 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여기서의 ‘면장’은 ‘면장(面墻)’, 즉 ‘담장을 마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담 밖에서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려면 공부해서 그 ‘면장’의 상태를 면해 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바른 표현은 ‘알아야 면장 (面墻)을 면(免)하지’이다. 뭔가 이야기가 잘 통할 때 ‘사대가 맞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사격 훈련을 떠올리 며, 총을 쏘는 위치인 ‘사대(射臺)’가 잘 맞아서(정렬 되어서) 명중률이 좋다는 뜻으로 연상하곤 한다. 불교에서는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즉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를 합쳐 ‘사대(四大)’라 부른다. 이 네 원소가 서로 조화 롭게 어우러지는지가 곧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상담 가와 내담자 사이의 기운이 맞는지를 가리키는 말로 확장된 것이다. 활이나 총 쏘기와는 상관이 없는 표현 인 셈이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사대가 맞아? ‘필요 없는’과 ‘아무 필요 없는’ 법률가의 바른 글쓰기 슬기로운 문화생활 비토·조인·비박, 알고 보니 외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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