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2024년 늦가을, 나는 단풍나무 우거지고 고요한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 고 있었다. 손에는 법원의 후견개시 결정문 사본이 들려 있었고, 어깨에 멘 가방 안에는 재산조사 서식 과 두툼한 사건 기록이 담겨 있었다. 법무사 생활 10여 년을 해왔지만, 성년후견 사무담 당자로 선임되어 처음 피후견인을 만나러 가는 일은 늘 긴장이 된다. 문을 열어준 것은 요양보호사였다. 안으로 들어서 자 한약 냄새가 섞인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거실 소파 한쪽에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굽 힌 채 TV를 보고 계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법원에서 선임 받은 후견사 무실에서 왔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맑았다가 흐려지 고, 다시 맑아지더니 이윽고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 어서 와요.” 누군지 알고 반기는 건지, 그냥 오는 사람마다 반 갑게 맞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기록지에는 ‘중증 알츠하이머 치매, 인지장애’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기록들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르신의 환한 웃음 앞에서, 잠시 모든 서류를 잊었다. 나의 법무사 업무 중 가장 복잡 하고 고되었으나, 동시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1년 5개월을 예고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어르신(피후견인)의 이름은 김○○, 1937년생, 당 시 87세.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 당시는 장남 소유 50평 아파트에서 요양보호사와 둘이 거주하며 요양 하고 있었으나, 원래는 고인이 된 남편과 함께 남편 명의 서울 강남구 ○○동의 오래된 2층 단독주택에 서 수십 년간 거주해 왔다. 남편분은 살아생전 사업을 통해 부동산을 포함해 약 100억 원의 재산을 일궜는데, 그 재산이 화근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사건 기록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한동안 손을 멈추 었다. 어르신의 남편이 사망하기 불과 두 달 전, 장남 은 아버지 소유의 그 단독주택(시가 50억 원)을 자신 의 딸(어르신의 손녀) 명의로 유언공증을 받아 이전해 놓았던 것이다. 법적 절차를 밟은 유증이었지만, 동생 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사망한 뒤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였다. 장남은 어머니인 피후견인 명의 계좌에서 무려 15억 원가량을 인출해 누군가의 마지막 봄을 지키는 일 한 치매어르신 법인성년후견 사건 기록(2024~2026) 나의 사건수임기 치매 어머니 계좌에서 인출된 15억 문선수 법무사(서울남부회) ·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후견사무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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