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무사 9월호

57 2026. 9. September Vol. 711 갔다. 상속세 납부와 차입금 상환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어르신의 법정상속분 20억 원 중 대부분이 어 르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라진 셈이다. 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장남은 정당한 재산 처리 였다고 맞섰다. 법원에는 장남과 동생들이 제출한 두 개의 성년후견개시 신청서가 동시 접수되었다. 장남 은 자신을 후견인으로 선임해 달라고 했고, 동생들은 전문가 후견인을 선임해 달라고 했다. 법원은 두 사건을 병합하여 심리한 끝에 결국 전문 가 후견법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하였다. 바로 필자가 사무담당자로 소속된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이 하 ‘본부’)”였다. 본부는 후견인으로 선임된 다음 날부터 바로 재산 조사에 들어갔다. 「성년후견인 금융거래 매뉴얼」상 으로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만 지참하면 계좌 조회 등 기본적인 업무는 즉시 처리되어야 하지만, 실제 현장은 달랐다. 어떤 곳은 후견등기사항증명서만으 로 충분하다고 했고, 어떤 곳은 후견개시심판문과 확 정증명원까지 따로 요구했다. 같은 서류를 은행을 옮길 때마다 다시 제출해야 하 는 일도 반복됐다. 전자거래는 아예 이용할 수 없어, 모든 조회와 확인을 일일이 창구에서 처리해야 했다. 아침에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 늦은 오후에야 간신히 한 곳의 금융기관 업무를 마칠 수 있는 일이 반복되 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하나하나 추적한 결과, 마침내 장남이 피후견인 명의의 계좌에서 14억 9,000여 만 원을 인출한 기록을 확인하게 되었다. 2024년 11월, 장남과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인출 한 돈은 상속세 납부와 회사 차입금 상환을 위해 사 용했다며 완강하게 반환을 거부했지만, 마지막에는 “당장은 돌려드릴 수 없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아드님, 이건 어머니 돈입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 시는 동안 써야 할 돈입니다. 이 돈을 되찾지 못하면 저는 법원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민사상 부당이득반 환청구소송과 형사상 횡령·배임 고발을 진행할 수밖 에 없습니다.” 수차례의 독촉과 경고가 이어지자 장남은 급하게 5억 원을 마련해 반환했다. 나머지 금액(약 10억 원) 에 대해서는 2025년 3월 말을 변제기한으로 정하고, 반환이행확약서를 받아두었다. 확약서 자체가 강제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스스로 채무를 인정한 문서를 남겨두면 그때부터 소멸시효 가 새로 시작되고, 훗날 소송에 이르더라도 “그런 돈 쓴 적 없다”며 발뺌할 여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장남은 약속대로 3월 말이 되자 연락을 했다. 그러 나 그 내용은 반환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딸 에게 명의 이전한 아버지의 ○○동 주택을 담보로 자 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동생(차남)이 주택에 가처분 을 걸어서 계획이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며칠을 고민했다. 원칙적으로는 즉시 부당이 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을 냉 정하게 들여다보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치는 않았다. 장남은 매주 어르신을 찾아와 손을 잡아드리고 있 다. 그리고 며느리는 CCTV를 통해 수시로 어르신 상태를 확인하며 요양보호사를 챙기고 있었다. 소송 을 제기하면 장기전이 불가피했고, 그 과정에서 어르 신에 대한 장남 부부의 실질적인 생활 지원이 끊어질 수 있었다. 본부는 내부회의를 거쳐, 반환기간을 다시 유예하 고 유예기간 동안의 이자 상당액(월 5백만 원)을 의 뢰인이 요양 중인 장남 아파트의 임대료 시세(월 6백 만 원)와 상계하는 조건으로 법원에 처분명령(「민법」 제954조에 따른 후견임무 수행에 관한 처분명령)을 신청키로 했다. 어르신의 복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채권을 보전하고 생활 기반도 지키는 현실적 타협안 을 선택한 것이다. 2025년 6월, 법원이 처분명령을 인용했다. 본부는 장남에게서 2차 이행확약서를 받았으나, 차남은 결 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형에게 유리한 조건으 로 계약을 했느냐. 당장 소송을 제기해 돈을 반환받 나의 사건 수임기 현장활용 실무지식 은행 문턱을 넘어 찾아낸 인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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