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무사 9월호

60 당 변호사와 함께 경기도 김포시 어느 물류창고로 향했다. 장남과 차남도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차남은 컨테이너를 여는 데 협조하지 않겠 다고 했다. 장남과 차남은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허 허벌판에 서서, 두 시간이 넘게 서로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심하게 다퉜다. 두 사람의 감정은 이미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내가 중재를 해보려 해도 아무 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날은 컨테이너를 열지 못하고 돌아왔 다. 한 달 뒤인 12월 22일, 나는 다시 김포로 향했다. 차남은 미국으로 출국했고, 현장에는 나를 비롯해 법무법인 담당 변호사와 창고 보관업자, 그리고 인 부 4명과 촬영자 1명이 참석해 추위에 떨며 컨테이 너를 열었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오래된 가구들이 모습을 드러 냈다. 은은한 빛을 발하며 서 있는 자개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물건들을 둘러싸고 그간 얼마나 많 은 메일과 전화와 공방이 오갔는가. 10시간에 걸쳐 두 지역에 흩어져 있는 컨테이너 세 대와 피후견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보관된 물품 까지 전수 조사하고, 9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촬영한 후 유채동산 재산목록을 작성하였다. 이제 협의를 통해 처분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 협의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피 후견인 어르신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2025년 11월 중순, 피후견인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인근 의원에서 수액을 맞으 며 통원 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당시는 의료 대란이 한창인 때여서 응급상황이 아니면 종합병원 진료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아 가까스로 ○○○대 학교 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시켰다. 일주일간 입원 해 치료를 했으나,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했다. 자녀들의 의사에 따라 한 주를 더 버틴 뒤 결국 퇴 원 권고를 받았다. 장남이 직접 여러 요양병원을 돌 아다닌 끝에 ○○○대학교 병원에서 추천한 ○○요 양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그런데 차남이 이번에도 그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형이 자기 편한 병원으로 결정했다며, 4~6인은 번 잡하니 1인실 있는 좋은 요양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안 그러면 후견인이 업무 태만과 배임을 저지 르는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나는 “요양원으로 이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막 적 응하는 시기이고, 한겨울에 이송하는 것은 의료적으 로도 권장되지 않으므로, 봄이 되면 상태를 확인하 고 가족들과 협의해 전원을 검토하겠다”고 겨우 양 해를 구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 을 것 같아 12월 10일, 가족 면담을 소집했다. 장남 과 차남, 딸이 모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강 하게 뜻을 전달했다. “개별적으로 일방적인 요구를 하거나 후견 사무에 간섭하려는 행위는 자제해 주십시오. 의견이 있으시 면 가족 간에 먼저 협의하시고 합의된 의견을 전달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족 모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차남은 이후 출국한 후에도 이전과 같은 메일을 멈 추지 않았다. 해가 바뀐 2026년 2월 초, 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더 이상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연명치료 에 대비하라는 담당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자녀들은 종합병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더 이상 치료 할 것이 없으니, 입원도 응급이송도 불가하다”는 일 관된 답변만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종합병원 입원을 추진하던 중 2월 중순이 되어 ○○요양병원의 도움으로 ○○ 병원 응급실로 옮겨 계속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받았 다. 그 과정에서 피후견인은 한 차례 위급한 고비를 넘겼고, 잠깐 호전의 기미도 보였다. 소식을 들은 차남이 미국에서 급히 귀국했고, 2026년 3월 2일 어르신이 결국 돌아가셨다. 차남이 모든 자녀들이 함께한 피후견인의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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