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2월호

ISSN 2233-4688 02 2 0 2 3 vol.668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편집간사 김승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3년 2월 5일통권제668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더블루랩 일러스트 혜영드로잉 정기간행물등록 1965년 5월 7일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강남구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오 전 서 류 작 업 2 월 법 무 사 의 소 소 일 상

무등산서석대의눈꽃 04 미경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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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법으로본세상 08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반환소송 및 배당이의소송 사건(2013., 2014. 서울서부지방법원) 14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_ 아모르 파티(Amor fati), 나를 사랑하는 삶 20 주목! 이 법률 _ 디지털제품 제공계약 관련 내용 도입, 「민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동향 24 법률고민 상담소 _ 상업등기, 민사집행, 주택임대차, 민사 분야 28 새로 시행되는 법령 _ 「도로교통법 시행령」 일부개정(2023.1.1. 시행) 등 89 내가 만난 법무사 _ 도순희 법무사(서울중앙회) 2023년 2월 vol. 668 42 08

현장활용실무지식 48 맞춤형 최신 대법원 판례 요약 _ 2022.10.27.선고 2017다9732, 9749, 9756판결 52 나의 사건수임기 _ 사기 및 절도·재물손괴 고소 사건에서의 재기수사명령과 재정신청 58 법무사 실무광장 _ 단계별로 알아보는 ‘법인설립 전자등기’ 절차 해설 법무사시시각각 30 이슈와 쟁점 _ 전세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권등기명령제도 개선 현황 _ ‘비영리법인 인가주의’ 「민법」 개정안 (제12119호)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_ 현행 유류분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 _ 서울회생법원의 제정 「상속재산 파산사건 실무준칙」의 주요내용과 효과 42 법무사가 사는 법 _ 다양한 사회활동이 가져온 행복, 엄덕수 법무사 46 성년후견 사례 _ 의붓아들을 상대로 한 피성년후견인의 유류분 청구 슬기로운문화생활 04 미경유람 _ 무등산 서석대의 눈꽃 66 문화로 쉼표 _ 용서는 미덕인가? 68 한국인은 왜 _ 한국인이 불편함을 못 참는 이유 72 소확행 건강관리 _ 신체나이, 10년 젊게 유지하려면? 74 부자되는 책읽기 _ 오건영,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동정·등록 76 협회는 지금 _ 협회·지방회·법무사 동정 83 법무사 신규등록 ·등록공고 88 편집위원회 레터 _ 나이 들수록 아름답게 하소서 52 80 74

소송은분쟁, 상대의선의를믿지마라 한임차인의전세보증금반환소송및배당이의소송사건(2013., 2014. 서울서부지방법원) 유병일 ● 법무사(서울서부회) 08 법무사가실제수임한, 이시대민초들의생활사건이야기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보통 사람뿐 아니라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 무사에게도 법은 언제나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보 통 사람들도, 법무사도 왕왕 실수와 오류를 겪는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는 갑작스레 법률문제에 부닥 치게 되었을 때, 법 없이도 잘 살아왔던 경험으로 법률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기보다 주변의 경험 많은 지 인들의 조언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또, 법무사의 경우는 상대방의 선의를 쉽게 믿고 사건에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특히 다양한 사건 사례의 축적이 많지 않은 초보 시절을 돌아보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 종종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필자가 아직 초보 법무사 이던 시절에 의뢰인으로 찾아왔던 김구택 씨의 사건이 필자에게는 바로 그런 사건이었다. 저렴한전세보증금의유혹 2011년 봄, 김구택 씨는 거주할 전셋집을 알아보 다 시세보다 저렴한 집을 보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한창 오르고 있을 때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그는, 계 약을 체결하기 위해 집을 소개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았다. 그런데 중개사 사무소에서 보여준 등기부등본에 는 전세할 집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고, 채권최 고액도 높았다. 김구택 씨는 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 지만, 만일 경매가 진행된다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을 포기하려 했는데, 너무도 저렴한 전세보증금에 대한 유혹을 차마 떨쳐낼 수가 없어, ‘앞 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보증금 반환에는 문제 가 없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살아보니 그의 우려와 달리 별다른 문제가 일어 나지 않았다. 김구택 씨는 무척 만족스러웠고, 그때 계 약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집이 경매로 넘어가 현황조사를 나왔다”며 법원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란 김구택 씨는 곧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이미 개시 된 경매 절차는 김구택 씨의 사정과는 아무 상관 없이 진행되었기에 무엇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된 상황에 망연자실한 김 구택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상담과 조언을 구했는데, 공통된 의견은 어차피 살 집이 있어야 하니 그냥 그 집을 사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경매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해도 서 로 상쇄가 되므로, 현재 상황에서 그것이 피해를 줄이 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김구택 씨는 지인들의 조언처럼 어차피 거주할 집 한 채는 있어야 하니 결국 경매 부동산을 매 입하기로 결심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 입찰에 참여했 다. 확실하게 낙찰 받기 위해 매각대금은 부동산 시세 보다 조금 높게 책정해 넣었다. 그의 판단은 적중해 경매 부동산은 그에게 낙찰 되었다. 선순위 근저당권을 제외하고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는 것, 즉 선순위 근저당금액을 지급하고 부동 산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보증금안돌려준 집주인의배당액이더높다니? 어떻든 낙찰을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김구택 씨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따라 배당기일 전 배당금 액을 확인해 보기 경매계를 찾아가 배당표를 받아 살 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임대인에게 일정한 금 액이 배당되어 있었는데, 그 금액이 자신보다 많은 것 이다. “아니, 내가 임차인으로 보증금을 다 배당받아야 맞는 거지, 어떻게 집주인이 나보다 더 많은 배당을 받 을 수가 있습니까?” 화가 난 김구택 씨는 경매계 직원에게 항의했다. 담당자도 당황했는지 여기저기 한참을 전화하고 확인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09

하더니 “공동 근저당권이 다른 시기에 배당되고, 김구 택 씨가 선순위 근저당권에 대해 대항력이 없어 발생 한 상황이니 집주인과 상의해 잘 해결해 보라”면서 “자 세한 상담은 법원에서 받기 어려우니 법무사나 변호사 를 찾아가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김구택 씨는, 어떻든 집주인의 협조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 집주인에게 연락, “배당 기일에 출석해 배당금 전액이 내게 배당되도록 합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말을 빙빙 돌리며 정확한 대답을 회피하더니 끝내 협조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배당기일이 되었다. 법원에 출석한 김구택 씨는 배당에 대해 이의를 하고, 보증금 전액을 배당받지 못했으니 집주인에게 배당될 금액을 임차인 인 자신에게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도 김구택 씨의 이의를 받아들여,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했으니 배당표 변경에 동의하라고 했다. 그러나 임대인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법원은 김 구택 씨에게 배당이의가 있으면 ‘배당이의의 소’를 제 기하라고 결정, 당일 배당기일이 종료되었다. 이제는 소송을 해야 한단 말인가? 김구택 씨는 어김없이 지인 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으나 그들에게서 별 뾰족한 답 변을 얻지 못했고, 결국 경매계 직원의 말대로 법률전 문가를 찾아 필자의 사무소를 방문한 것이었다. 배당이의의소와동시에 보증금반환소송도제기 김구택 씨에게 그간의 사연을 모두 듣고 보니 안 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각기일에 배당받을 금액을 제외하고 차액만 매각대금으로 납부하겠다고 신청했 더라면, 대출금액도 줄일 수 있었고, 배당 문제도 조금 일찍 알 수 있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 다. 김구택 씨도 진작에 법무사 사무소를 찾아와 상 담을 받았어야 했는데, 지인들의 조언을 듣거나 경매 한다는 사람을 소개받아 수수료까지 주며 도움을 받 았다며, 나중에야 배당받을 금액을 제외한 금액만 납 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후회했다 고 한다. 어찌 되었건 이제는 벌어진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 다. 김구택 씨는 일단 배당되지 않은 보증금을 돌려받 을 수 있도록 보증금반환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집 계약서 복사본을 전달받은 후 먼저 대금 지 급 영수증을 첨부해 임대인을 피고로 하는 보증금반 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배당이의의 소 기일이 촉박한 상황이라 급히 배당표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집주인 행위의 부 전셋집이경매로넘어가망연자실한 김구택씨는자신이경매된집을매입키로하고, 은행대출을받아입찰에참여했다. 그런데어쩐일인지배당표에는임대인이 자신보다더많은금액을배당받도록되어있었다. 경매계직원은 “선순위근저당권에대항력이 없어발생한상황이니집주인과상의해 잘해결해보라”고했다. 10

당함을 지적하며,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또, 집주 인에게 배당된 배당금의 지급을 막기 위해 바로 배당 이의 소 접수증명원과 소장 사본을 첨부해 경매법원에 제출했다. 얼마 후 상대방(임대인) 측에서 바로 보증금반환 청구소송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왔다며 김구택 씨가 사 무실을 방문했다. 내용인즉슨, 배당이의의 소에서 김구 택 씨가 승소해 배당금을 받아 갈 것이니 그 금액을 제 외하고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배당의 적법성 여부를 떠나 임대인이 배당표 변경에 동의한 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문제될 일은 없다. 필자는 김 구택 씨에게 “사실상 분쟁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두 소송의 변론기일에 출석만 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사건이 잘 해결되겠거니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법정에서말바꾼임대인, 배당금가압류신청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오후, 김구택 씨가 헐 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섰다. “법무사님, 임대인에게 배당된 배당금을 가압류 해야 할 것 같아요.” 분명히 보증금반환소송의 답변서에서는 김구택 씨가 배당이의를 통해 배당금을 찾아갈 것이니 그 금 액은 공제해야 한다고 하더니, 이 무슨 일인가. 필자는 놀라서 “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고, 그에 대한 김구택 씨의 답변은 이랬다. 배당이의의 소 변론기일, 법원에서도 임대인이 보 증금 전액을 돌려주지 못했으므로 배당표 변경에 동의 하면 바로 판결하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임대인이 말을 바꾸며, “배당표는 적법하게 작성된 것이고, 자신이 배 당받은 것은 정당하므로 배당표 변경에 동의할 수 없 다”고 했다는 것이다. “법원도 어이없어하며 임대인을 설득했지만, 끝 내 동의를 거부하더라고요. 결국 재판부에서 검토가 필요하니 다음 변론기일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런데 그동안에 임대인을 위해 신용보증기금이 보조참 가를 하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서류들이 계속 날 아왔어요.” 김구택 씨는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배당금 가압류부터 빨리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 필자는 일단 알았다고 한 후,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한 사실을 적시하여 임대인이 배당받은 배당금에 대해 채권가압 류 신청을 했다. 그 결과, 당시 본안소송 중이었고 증거가 명백하 니 채권가압류이지만 현금공탁 없이 전액 지급의탁문 서로 담보제공명령을 받아 수월하게 처리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번에는 부동산가압류를 해야 겠다며 김구택 씨가 다시 찾아왔다. 임대인의 다른 부 동산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부동산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봤더니 그 부동산에도 이미 여러 건 의 근저당권과 가압류가 설정되어 있어, 부동산가압류 를 한다 해도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필자는 “이미 많은 소송비용을 지출했으니 부동 산가압류는 신중히 생각해보고 처리하는 것이 좋겠 다”고 조언했으나, 부동산가압류를 꼭 해야 한다는 김 구택 씨의 종용에 못 이겨 부동산가압류 신청을 했다. 가압류 신청은 보증금반환청구소송과 배당이의의 소 가 이미 진행 중이라 채권 가압류가 선행되었어도 별 무리 없이 인용되었다.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1

실효성없는부동산가압류, 종용했던이유 이후 한동안 김구택 씨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자주 문의 전화를 할 법한데도 이상하게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김구택 씨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나…?’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청구소송 답변서를 보고, 필 자는 사건이 끝났다고 보고 세세하게 법리 검토를 하 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신용보증기금이 보조참가를 하는 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김구택 씨 가 이런 상황에 대한 필자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이 이유라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변 론기일 이후 2번이나 다시 찾아와 2건의 가압류 신청을 추가로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필자는찜찜한기분을떨치기어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흘러 김구택 씨가 갑자기 사 무실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의 사건 관 련 자료를 전부 달라는 것이었다. 김구택 씨가 털어놓 은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니 필자는 왜 김구택 씨의 연 락이 끊어졌던 것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보증금반환소송의 변론기일이 한참 지연되다가 마침내 지정되어 출석했어요. 그런데 법원에서 배당이 의의 소 결과에 따라 못 돌려받은 보증금의 액수가 달 라지니 그 소송의 결과를 보고 진행해야 할 것 같다면 서 변론기일을 한참 후로 지정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소송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걱정이 많이 되셨는지 당신 인맥을 총동원해서 경매와 소송에 대해 알아보시고는 그때부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일일이 참견 과 간섭을 하시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김구택 씨는 아버지뿐 아니라 이전에 도움을 받 았던 지인들까지 각자 저마다의 충고와 조언을 하며, 이래서는 안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 말들을 해서 이제 는 뭐가 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울 지경이라 고 했다. “처음에는 저를 걱정해주고 나서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무척 고마웠고, 안심도 되었던 것이 사실입 니다. 그런데 모두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다 보 니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혼란만 오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필자가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했던 부동산 가압류 도 아버지가 하도 옆에서 종용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라고 했다. 자식 된 입장에서 고령의 아버지 말씀을 차 마거역할수가없었다는것이다. “그럼, 판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지 금 자료를 전부 달라는 것도 아버지의 뜻인 겁니까?” 김구택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와 주변 분들이 소송을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도 야단들이시니 제가 견딜 수가 없습 니다. 그래서 자료를 모두 건네드리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할 작정이에요.” 김구택 씨는 자포자기했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필자도 당사자가 자기 사건의 자료를 달 라고 하는 것이니 별달리 할 말도 없었다. “자료는 전부 법원에 제출하였으니 기록 열람을 하시면 됩니다. 제가 특별하게 드릴 자료는 없어요.” 김구택 씨는 잘 알았다고 했다. 꼭 자료를 받기 위 해 찾아왔다기보다는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12

충분히이중적일수있는존재 “법무사님, 사건이 해결되었으니 부동산 가압류 와 배당금에 걸어놨던 가압류를 풀어주세요.” 몇 달 후, 김구택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가압류를 모두 취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문제가 잘 해결된 것 이냐고 물으니, 해결되었다기보다는 이렇게라도 끝나 서 다행이라고 했다. 배당금은 김구택 씨가 받아서 신용보증기금과 반 반으로 분배하기로 했고, 배당금으로도 충당이 안 되 는 보증금 중 미지급액은 임대인이 분할해서 주기로 했는데, 실제로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집 주인에게 배당된 금액 전부를 받고 싶었던 김구택 씨 로서는 불만족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필자는 김구택 씨의 요청대로 가압류를 전부 취 하했다. 이렇게 사건을 끝내고 보니, 보증금을 다 반환 하지 못한 임대인이 배당이의의 소에서 쉽게 마음을 바꿔 분쟁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조금은 쉽게 접 근했던 필자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필자도 사람 말을 쉽게 믿는 초보 법무 사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건의 배당기일에 배당표 변경에 동의하거나 배당이의의 소에서 김구택 씨의 주 장을 전부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김구택 씨의 임대인과 같이, 보증금 반환소송에서는 배당이의의 소에서 김구택 씨가 승소 할 것이니 그 금액은 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배당이의의 소에서는 배당이 정당하니 자신이 배당금 을 받겠다고 주장하며 말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는 것 을,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 인간은 충분히 이중적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아직 순진한(?) 초 보 법무사였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원고가 소 를 취하하겠다는 말을 믿고, 소장을 받고도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가 판결 문을 받고서야 아차 싶어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래도 판결 확정 전에 오는 경우는 항소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판결이 확정된 후 찾아와 어떻게 하냐고호소하는경우는참으로난감할수밖에없다. 이 사건은 김구택 씨에게나 필자에게나 큰 교훈 을 준 사건이었다. 김구택 씨에게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지인 들의 조언에 기대어 법률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 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필자에게는 이익 이 대립하는 당사자 간 분쟁인 소송에서 상대방의 선 의를 무작정 믿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 을…. 그당시는필자도사람말을쉽게믿는 초보법무사였다. 보통의사람이라면 배당표변경에동의하거나김구택씨주장을 인정하거나둘중하나를선택했을것이나, 간혹김구택씨의임대인과같이이중적으로 말을바꾸는사람도있다는것을, 그때는미처생각지못했다.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3

아모르파티 (Amor fati) 나를 사랑하는삶 위기의시대에도행복을찾아가는 12가지인문학적성찰② Happiness 유창선 ● 인문학 작가 14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명예와 같은 평판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 라고 일깨웠다.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의해 주어지는 명예 라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스피노자도 대중들로부터의 평판에서 명예를 찾으려 하는 사람은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대중의 의견에서 명예를 찾으려는 사람은 매일매 일 걱정 속에서 불안해하면서 평판을 보존하기 위해 애 쓰고, 그것을 지키려고 행동하며, 그것을 지키려고 계획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변덕스럽고 한결같지 못하므로 평판이보존되지못할경우, 재빨리사라지기때문이다.” - 「에티카」 이들의 얘기는 자기 외부로부터의 평판에 중심을 두고 사는 사람은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음을 말한다. 삶의 중 심이 나의 내부에, 나의 이성에 발을 딛고 자리할 때 비로소 인간은속박받지않는자유로운삶을구가할수있다. 자기사랑, 나자신이중심이되는삶의원동력 타인들의 평판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이 중심이 되 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 사랑’(아모르 파티, Amor fati)이다.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 생각만큼 익숙 평판에서명예를찾으려는 사람의불안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다른 사람 들의 시선을 의식하곤 한다. ‘다른 사람 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어 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들이 그런 것이다. 물론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 기에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내 모습 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 다. 그래야 자신과 거리를 두고 냉정하 게 돌아보며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그에 속박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을 위험도 커진다. 인간은 외 부의 시선에 자신을 얽어매게 되었을 때 자유롭지 못하고 구속받는 삶을 살 게 됨을 현인들도 경계해왔다. 노예 출신의 고대 스토아학파 철 학자 에픽테토스는 “세상의 명예는 단 지 세상 사람들이 내리는 일종의 ‘평판’ 에 불과하며, 어떤 경우에도 이성에 근 거한 참된 진리를 알려주지 못한다. 외부의평판에중심을두고사는사람은 자유로운삶을누릴수없다. 가벼워지기를바라고, 새가되기를바라는자는 먼저자기자신을사랑해야한다. 그래서 ‘아모르파티’, 자신의고통과 실패까지도사랑하는, 자신의삶에대한 긍정을니체는주문한다.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5

“삶이내게가장어려운것을요구 했을때삶은내게가장가벼워졌다.” “인간에게 있는 위대함에 대한 내정식은운명애이다.” - 「이사람을보라」 자기사랑과 ‘나르시시즘’의차이 이러한 자기 사랑은 자기도취의 표현인 ‘나르시시즘(narcissism)’과는 다르다. 나르시시즘은 전도된 자기 사 랑일 뿐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아도취 적인 사람은 스스로 실패했다는 사실 을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 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에 빠진 나머 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사랑이 아니다. 하지 못하다. 특히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면 자기의 모습이 싫어지기도 한다. 무엇에 실패라도 하면 자신의 무능력이나 처지를 낙 담하고 자책하며 비하하기 쉽다. 그러나 나의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자신에 대한 사랑은 더욱 소중하다. 세상을 살면 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이 꼭 내 탓만은 아니다. 내가 열 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 렇게 노력해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탓 또한 있는 법이다. 당장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주눅 들거나 기죽지 말 일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 수고했어. 괜찮아.” 하고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자기애가 필요하다. 니체가 말했던 ‘아모르 파티’ 얘기를 들어보자. “그런자에게대지와삶은무겁게보인다. 중력의악 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새가되기를바라는자는자기자신을사랑할줄 을알아야한다. 나는이렇게가르치는바이다.” -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자신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니체였지만, 그 무거운 대지의 삶을 가볍게 만들라고 차라 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새처럼 가벼워져야 자 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런데 중력의 정령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무겁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은 너무도 무겁다. 그러나 자신을 가볍게 하고 춤을 추어야 자유롭게 하 늘을 날 수 있다.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 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아모르 파티’, 자신의 고통과 실패까지도 사랑하는, 자신의 삶에 대 한 긍정을 니체는 주문한다. 여기서 니체에게 ‘춤’은 우리의 삶이 영구히 반복될 것 이라는 ‘영원회귀’의 정신을 통해, 지금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주문하는 의욕적인 표상이다. 우리는 즐겁게 자기 의 삶을 선택하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용기를 가 져야 한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자기 운명의 주인인 나의 자존감과 맞닿아 있다. 「나르키소스(Narcissus)」 Caravaggio(Italian, 1571-1610) 16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의 유명한 그림, 「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러한 장면을 담고 있다.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절해 마침내 그녀를 상심 끝에 죽게 한 나 르키소스에 대한 그리스 신화를 그린 작품인데, 복수의 여 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로 하여금 호수에 비친 자기 모 습을 사랑하게 만듦으로써 그를 처벌한다. 결국 그는 자신 을 찬미하면서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 신화는 이러한 종류의 자기애는 저주이며, 그 극단 적인 형태는 결국 자기 파멸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르시시즘에 갇혀있는 자가 이처럼 불행한 것은, 자 기 이외의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고, 타자와의 소통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나르시시스트들은 온갖 자기 만족의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소한 말을 하고서도 마치 자신이 매 우 중요한 말을 한 것처럼 느낀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관심도 없다. 그 대신 자신을 향한 비판에는 무척 민 감하다. 나르시시즘이 위험한 것은 그 폐해가 개인에게서 그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자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면 사회 전체가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권력자는 어떠한 비 판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우월성을 과신한 나머지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역사상 많은 독재자의 내면에는 이 같은 나르시시즘 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나르시 시즘이 집단적 형태를 띠게 될 때 폭력 과 파괴라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치즘의 광기에서 목격했듯이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그 사회에서 이를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그 폭력 적 결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자기만이 옳다고 착각하고 사람들 과 소통하지도 않으며 비판도 듣지 않 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이 같은 나르시 시즘의 결과이다. 이렇듯 자기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매달리는 것도,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사랑은 자신을 향한 것이다. 나는누구를위해 살고있는가 그런데 막상 우리 앞에 놓인 현실 은 녹록지 않다. 자기 사랑이 좋은 것임 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정신없 이 살아가다 보면 일상의 굴레에 갇히 게 되고, ‘나’를 잊게 되기 때문이다. 흔 히 중년 혹은 장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 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 게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 「리 스본행 야간열차」는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한 장년 남성의 자유로운 며칠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고등학교 선생으로 평범하게 살던 57세 남성, 그레고리우 스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한 여성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 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나의가슴은너무오랫동안식어있지는않은지, 주어진환경에서벗어날수없다는이유로 어느덧습관처럼살아가는삶이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늘을사는중장년들에게 그레고리우스는묻고있다. 나는누구를위해살고있는가. 나를위해살고있다는대답을주저없이 할수있는사람만이자신을사랑하는 사람이다.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7

“그의 삶이 너무나 특별해서 제 인생이무의미하게느껴져요.” 그런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가끔씩 만나면서 아마데우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의 인 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레고리우스가 베른으 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 플랫폼에 서서 나눈 마리아나와의 마지막 대화. •그레고리우스 : 5분정도남았군요. 내가지루하지않다 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생각해보면 아 마데우와 스테파니아, 그들 인생에는 활력과강렬함이가득했던것같아요. •마리아나 : 너무강렬해서결국부서졌잖아요. •그레고리우스 : 하지만 충만한 삶이었죠. 내 인생은 뭐 죠? 지난며칠을제외하고요. 그레고리우스가 남긴 마지막 자조 적 독백, “내 인생은 뭐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까.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님을, 자유를 찾기 위 해서는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결단을 내려야 함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나의 가슴은 너무 오랫동안 식어 있지는 않은지,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느덧 습관처럼 살아가는 삶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늘을 사는 중장년들에게 그레고리우 스는 묻고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대답을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 우스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 에 몸을 싣는다. 열차 안에서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 으며 감동을 받은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라는 인물의 삶을 추적하는 길에 나선다. 영화는 아마데우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1974년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의 시기로 거 슬러 가며 전개된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아마데우 의 옛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40년 살라자르 독재정권 시절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것에 반감을 가지며 성장한 의사 아마데우의 삶은 파란만 장했다.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동료들과 반독재 결 사조직을 결성해 혁명을 시도했던 청년이었다.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았던 아마데우였지만, 친구 조 지의 여인 스테파니아와의 사랑 때문에 그들 사이의 우정 은 무너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레지스탕스에 함께 몸담았던 아마데우, 조지, 스테파니아에 얽힌 우정과 혁명과 사랑, 질 투와 배신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오던 그레고리우스에게 이들의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레고리우 스는 말한다. 「리스본행야간열차(Night Train to Lisbon)」 (2014) ⓒ네이버영화 18

나탈리의 행복은 이제 다른 색감 으로 나타나고 있다. 온전한 자유를 찾 았다고 말한 그녀는 과연 더 행복해진 것일까. 영화 속 나탈리가 수업 중에 인용 한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행복에 대한 글이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 복이안온다면희망은지속되며이상태 는 자체로서 충족된다. 그 근심에서 나 온일종의쾌락은현실을보완하고더낫 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덜 기 쁜법. 행복해지기전까지만행복할뿐.” 행복은 기대하는 동안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막상 내 손으 로 잡으면 바스러지는 가짜 행복이 아 니라 두고두고 지속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국 스스로 자유를 찾는 것이 그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 는 삶의 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 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 받을 존재라는 믿음을 가질 때, 내 삶 에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많은것을가졌으나, 한번도느끼지못한자유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도 자유를 찾는 중년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파리의 고 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홀어머니의 딸로서 바쁘지만 행복 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출판사 는 필진에서 제외했다는 통보를 해온다. 그동안 자기 것이 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만 것이다. 많은 것이 자신을 떠나갔지만, 나탈리는 슬프게 울지 않고 일상 에서 자유를 찾는다. “이런생각을해. 애들은독립했고남편도엄마도떠 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 전한자유. 놀라운일이야. 이건낙원이잖아!” 많은 것을 갖고 사는 것 같았던 나탈리도 그동안 온 전한 자유를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중년에 찾아온 자유. 나탈리는 마흔의 나이를 지나서야 시선을 자신에게 로 돌려 비로소 자신을 위한 일상을 챙겨나간다. 나탈리는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꿋꿋한 중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부터 닥쳐온 상황들을 자기 사랑을 통해 자유 로운 삶으로 만들어 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많은 공감을 준 다. 세월이 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생기고 다가오는 것 들도 생긴다. 당신에게는 나이 들면서 잃어가는 것이 많은 가, 새로 다가오는 것이 많은가? 자유를 찾아 나선 나탈리이기에 잃은 것보다 많은 것 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잃어가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찾아나서면 새로운 많은 것들이 다가 온다. 영화는 딸이 낳은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 나탈리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끝난다. 「다가오는것들(Things to Come)」 (2016) ⓒ네이버영화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9

적으로 도입하여 각 회원국의 「민법」에 입법하도록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콘텐츠의 거래는 「콘텐 츠산업 진흥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고, 실무에서는 주로 약관에 따라 운용되고 있으나, ①약관의 내용 이 지나치게 방대하거나 약관마다 내용의 편차가 크고, ②디지털콘텐츠 제공자의 입장이 주로 반영 되어 있어 이용자 보호에 미흡한 경우가 많다. 이에 디지털콘텐츠계약에 대해 「민법」에 세 부적인 규정을 두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법 무부는 계약의 기본법인 「민법」에 디지털콘텐츠 거 래를 규율할 수 있는 별도 규정을 신설하고자, 최근 디지털콘텐츠계약에 관한 내용을 도입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1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의배경 동영상 파일, 이미지 파일, 음악 파일, 멀티미디 어 서적 등 디지털 형태로 생성되어 유통 및 소비도 디지털 형태로 이루어지는, 디지털콘텐츠 및 관련 서비스의 제공과 소비는 기술 발전과 IT 인프라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관련 분 쟁도 대폭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콘텐츠는 계약기간 중에도 관련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뿐 아니라, 디바이스 등 IT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등 일반의 매매계약 등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 그에 맞는 규범이 필요 하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경우, 2019년 5월 디지털콘텐츠계약에 관한 규범을 선도 디지털제품제공계약관련내용도입, 「민법」 개정안의주요내용과동향 게임·음원등 디지털콘텐츠에도 하자담보책임적용된다 정다영 ●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 · 변호사 20 주목! 이 법률

2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의주요내용 법무부는 「민법」 제3편(채권) 제2장(계약)에 개별 전형계약들을 규정한 15개 절에 이어, 제16절 “디지털제품 제공계약”이라는 제목 아래 5개 조, 12 개 항의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입법예고 하였 다. 입법예고된 개정안의 주요내용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 「민법」 개정안(법무부입법예고)의주요내용 ① 디지털제품 제공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기 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을 제공하고, 계약기간 또 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이러한 기능과 품질을 유지 하기위한업데이트의무를부여하였다. ② 디지털제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의 하자담보책임, 즉 하자시정청구권, 대금감액청구권, 계약해제· 해지청구권을규정하되, 그러한책임을추궁할수 있는기간(존속기간)을통상의매매계약의경우(1 년)보다길게설정하였다(2년). ③ 디지털콘텐츠·서비스의 내용을 합리적 범위에서 변경하여제공할수있는권리인디지털콘텐츠제 공자의변경권을신설하였다. 그외에 ④계약종료후의규율에대해서도눈여겨볼만하다. 이하에서는이를구체적으로살펴보기로한다. 가. 합리적으로기대되는기능과품질을갖춘디지털제품 제공의무및업데이트의무 입법예고된 개정안에 따르면 디지털제품 제공 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디지털 형태로 제작·공급되는 콘텐츠 또는 그 콘텐츠의 제작·처리· 저장·접근·유통에 관한 서비스(이하 “디지털제품” 이라고 한다)를 제공하고, 상대방이 그 이용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안 제733조의2).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제품에는 디지털콘텐츠 와 디지털서비스가 모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 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이를 명확히 하고 있지 는 않으나, 유럽연합의 지침에 따라 2021년 디지털 제품 제공계약에 관한 규정을 신설한 독일 「민법」 에 따르면 디지털콘텐츠는 디지털 형태로 생성, 제 공되는 데이터이며, 디지털서비스는 소비자에게 디 지털 형태로 된 데이터의 생성, 처리, 가공 또는 접 근할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 또는 소비자 또는 다 른 서비스 이용자에 의해 디지털 형태로 업로드 또 는 생성된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그 외의 상호작용 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개정안의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부 분이 있으나, 영상물, 웹툰, 음원, 전자책, 게임 등과 같은 전형적인 콘텐츠 및 관련 서비스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앱) 마켓(Application Market), 클라 우드(Cloud),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용 ‘대금’이 아니라 ‘대가’를 지급하도 록 되어 있으므로, 이용에 대한 반대급부로 개인정 보의 제공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제품 제공계약의 당사자는 제공자와 이 용자가 되는데, 이는 매매계약에서의 매도인과 매 수인에 대응한다. 디지털콘텐츠의 제공자는 이용자 에게 디지털콘텐츠의 저장매체를 인도하거나, 디지 털콘텐츠에 접근하거나 이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 법으로본세상 주목! 이 법률 21

하거나, 디지털서비스의 접속 내지 이용에 필요한 방법을 제공하여야 한다(안 제733조의3 제2항). 이 경우 제공자는 계약 또는 거래 관념상 합리 적으로 기대되는 기능과 품질을 갖춘 디지털제품 을 이용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안 제733조의3 제1 항). 이에 따라 당사자 간에 별도의 합의가 없더라도 디지털제품 구입 시 이용자가 최소한의 기능과 품 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어떠한 아이템이 뽑힐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Random Box) 아이템을 구입 하는 형태의 이른바 ‘가챠(Gacha) 게임’의 경우에 는 확률정보를 거짓으로 제공하거나 조작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기능과 품질”의 구체적인 요구 수준은 우리 사법(私法) 형성의 통상 적인 과정에 따라 추후 판례와 거래 관행 등으로 점 진적으로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뿐만 아니라 제공자는 이용자에게 디지털제 품을 제공한 후에도 디지털제품의 계속적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그 제공 기간 동안, 일회 적 제공의 경우에는 디지털제품의 성질과 용도 등 을 고려한 상당한 기간 동안 그 기능과 품질을 유지 하기 위하여 필요한 합리적인 보완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안 제733조의3 제3항). 기존에는 업데이트 조치가 제공자의 선택에 맡겨져 있었으나, 개정안은 디지털제품 제공자의 업 데이트 의무를 신설함으로써 이용자의 권리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나. 디지털제품에대한하자담보책임 매수인이 매매 등 계약에 의하여 취득하는 물 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이 매수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책임을 ‘하자담보책임’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행 「민법」상 하자담보책임은 물건을 전제한 것이어서, 물건이 아닌 콘텐츠·서비스를 대 상으로 하는 디지털콘텐츠계약에 대해서는 그 규정 을 직접 적용하기가 어렵다. 이에 개정안은 디지털제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 이용자가 제공자에게 하자의 시정을 청구할 수 있게 하였고(하자시정청구권), 이에 더하여 대금감액을 청구하거나(대금감액청구권), 해제·해지도 할 수 있 도록(계약해제·해지권) 하는규정을마련하였다. 원칙적으로 이용자는 제공자에게 하자의 시정 을 청구할 수 있으나(안 제733조의4 제1항), 제공자 가 정당한 이유 없이 하자의 시정을 거절하거나 하 자의 시정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거나 그 밖에 시정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용 자는 제공자에 대해 대금감액을 청구하거나 계약 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다만, 하자가 중대하 지 않은 때에는 이용자는 대금감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안 제733조의4 제2항). 위와 같은 디지털제품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은 계속적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그 제공기 간이 종료한 때, 일회적 제공의 경우에는 디지털제 품이 제공된 때, 업데이트 의무에 따른 보완조치 의 무를 위반하여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의무의 존 속기간이 종료한 때로부터 각 2년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안 제733조의4 제3항). 일반적인 매매계약에 적용되는 현행 「민법」상 하자담보책임의 경우 그 존속기간이 최대 1년이지 만, 디지털제품의 경우 이용자를 두텁게 보호할 필 요성, 해외 입법례 등을 고려하여 하자담보책임의 존속기간을 2년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기간은 디지털제품 제공에 관하여 「민 법」 상 다른 전형계약의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다. 디지털제품에특유한성질을고려한변경권 위와 같은 내용은 주로 이용자의 측면에서 규 22

정된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제품의 계속적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위와 같은 규정들이 제공자에 게 가혹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개정안은 기술혁신 등에 따른 디지털제 품의 변경 가능성을 고려하여 제공자가 계약 중에 콘텐츠나 서비스의 내용을 합리적 범위에서 변경하 여 제공할 수 있는 권리(변경권) 등을 신설하였다. 디지털제품에 대한 계속적 제공계약의 경우, 제공자는 ①계약 당시에 변경 가능성을 유보하고, ②디지털제품을 변경하지 않으면 해당 제품의 목적 달성이 곤란해지거나 어느 한 당사자의 이익이 부당 하게 침해되는 등 제품의 변경에 합리적 이유가 있 으며, ③변경에 앞서 상당한 기간 전에 이용자에게 변경의 취지와 내용을 통지하여야 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다(안 제733조의6 제1항). 그러나 위와 같은 제공자의 변경권은 이용자 에게 불측의 손해를 입힐 수 있는바, 이에 대응하여 이용자는 제공자의 변경권 행사로 인하여 디지털제 품의 이용 이익에 침해를 받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안 제733조의6 제2항). 라. 계약종료후의규율 계약 종료 이후 이용자는 디지털제품을 계속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며(안 제733 조의5 제1항), 제공자는 이용자가 동의하거나 그 외 제공자 또는 제3자가 그 이용에 정당한 이익을 갖 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이용자가 디지털제품 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생성한 콘텐츠를 더 이상 이 용할 수 없다(제733조의5 제2항). 이는 일방향의 디지털콘텐츠 또는 디지털서 비스보다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Generated Content, UGC)가 생성되는 서비스에 더욱 직접적 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개정안의효과및향후동향 법무부는 이후 최종 개정안을 확정하고, 법제 처 심사 및 차관·국무회의 등 개정 절차를 진행하 여 2023년 초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사적자치의 기본법인 「민법」에 디지털콘텐츠계약과관련된규정을도입하여디지털 콘텐츠계약의 표준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들의 자 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거 래의편의와효율을높일수있을것으로기대된다. 또한 「민법」에 다양한 전형계약 중 하나로 디 지털제품 제공계약을 규정함으로써 민법체계 내에 서 완결성을 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이는 계약에 관한 「민법」의 규정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그 내용을 배제할 수 있는 임의규정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정안의 취지에 따라 ‘디지 털제품 제공계약의 표준약관’ 등을 마련함으로써 이용자의 보호를 보다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 법으로본세상 주목! 이 법률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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