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233-4688 06 2 0 2 2 vol. 660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2년 6월 5일통권제660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더블루랩 일러스트 이정윤 정기간행물등록 1965년 5월 7일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강남구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민 곁에 125년, 생활법률 전문가 법무사史 『한국의법조인(사법서사를중심으로)』(1966) · 『FY67 사법서사연수교재』(1967) 『한국의 법조인(사법서사를 중심으로)』은 1966년 4월, 당시 앨라배마주립대 법대 J. 윌리엄 머피 (Jay. W. Murphy) 박사가서울대학교교환교수로한국에 2개월간체류하면서집필한책이다. 이책에서그는 “한국대다수의국민들에게있어서법무사가법률상의대변자이며, 법과정의의근 본적인발전은법무사의협력과도움이없이는이룩될수없다”고결론지었다. 사진오른쪽은위책의사본으로, 현재원본은 1956년아세아재단의지원으로설립한 ‘한국연구원’ 에소장되어있다. 이책의발간으로 1967년 10월, 대한사법서사협회는아세아재단으로부터약 4,000달러의경비를 지원받아창립이후첫사법서사연수를치렀다. 사진왼쪽은당시의연수교재 1, 2권중 1권이다. 6월 커버스토리 03
출생 에서
우리인생의 모든순간, 생활법률전문가, 법무사가함께합니다 상속 까지!
Contents 법으로본세상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북한이탈주민의 미성년자녀 인지청구 등 사건 (2021. 서울·수원지방법원) 16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_ 한국전쟁과 전쟁범죄, 그리고 평화를 위한 전환 22 주목 이 법률 _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입법예고)의 주요내용과 향후 과제 26 법률고민상담소 _ 가사, 성년후견, 민사집행, 민사 분야 30 최근 시행법령 _ 「농지법」 일부개정(2022.5.18. 시행) 등 91 내가 만난 법무사 _ 김영룡 법무사(서울중앙회) 2022년 6월 vol. 660 32 16
현장활용실무지식 48 맞춤형 최신 판례 요약 _ 2022.3.11.선고 2017다207475, 207482판결 등 52 나의 사건수임기 _ 철저한 현장 조사와 법리로 승소한, 도로 통행금지 및 부당이득반환소송 사건 58 신(新) 기업컨설팅 사례연구 _ 채권자 보호절차에 관한 컨설팅 66 행복의 심리학 _ 자존감과 행복감의 상관관계 법무사시시각각 32 이슈와 쟁점 _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협회 홍보방식의 다양화 _ 개정 「검찰청법」 · 「형사소송법」의주요내용과법무사 업무에 미치는 영향 38 발언과 제언 _ 새 정부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상과 법무사의 역할 _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조속한 대체입법을 촉구하며 42 화제의 법무사 _ 전국여성법무사회 법률구조위원장, 황정희 법무사 46 최근 공제사고 사례 _ 근저당권설정등기 미처리 손해배상청구소송, 제2심 법원 판결 선고(2022.4.21.) 슬기로운문화생활 70 문화路 쉼표 _ (수상) 반려견 훈련과 소년재판 _ (시) 공수래 공수거 산사 72 세대유전 2080명곡 _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74 가슴뭉클 가족영화 12선 _ 「혼자 사는 사람들」 8·76 콧바람 하루여행 _ 경북 군위, ‘혜원의 집’과 화본역 동정·등록 80 협회는 지금 _ 협회 · 지방회 · 법무사 동정 86 법무사 신규등록 · 등록공고 90 편집위원회 레터 _ 만남의 소중함 42 76 72
콧바람하루여행 08
경북군위, ‘혜원의집’과화본역 다람쥐쳇바퀴돌듯팍팍한일상에서하루쯤 나에게쉼표를선물하고싶다면, 경상북도군위로떠나보자.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보았던혜원의사랑스럽고맛있는집을만날수있다. 엄연히남의집이지만, 작은마당에서서고즈넉한옛집을보고있으면 내고향집처럼마음이편안하고즐거워진다. (p. 76에이어) 글·사진 / 민혜경 여행작가 09
한국으로떠난후헤어진, 아이아빠를찾습니다 이성진 법무사(울산회) 열혈법무사의 민생사건부 법무사가실제수임한, 이시대민초들의생활사건이야기 북한이탈주민의 미성년자녀인지청구등 사건(2021. 서울·수원지방법원) 10
탈북후 만난 중국국적 남편과결별, 아이와한국행 2021년 여름, 젊은 여성 한 분이 미성년자녀의 아 버지를 찾아주겠다며 내 사무소를 찾았다. 가지고 온 서 류들을 보니 법률구조공단에서 먼저 상담을 거친 듯한 데,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억양은 연변 사투리를 쓰는 터라 처음엔 조선족인 줄 알았는데, ‘북한이탈주민’ 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그 여성분에게는 열일곱 되는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뚜렛장애와 주의력결핍과 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2002년경 스무 살의 나이로 조선민 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탈출하여 중국 심양에서 공안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2003년경 길림성에서 중국 국적의 아이 아빠를 만나 2005년 중국법에 따라 혼인을 하고 2005년생 남자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후 대한민국으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아이 아빠 와 연락이 끊기자 2009.9.경 다섯 살이던 아이와 함께 국내로 밀항해서 국가정보원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정착 지원사무소 ‘하나원’을 거쳐 2010.1.19. 서울가정법원으 로부터 가족관계등록창설 허가를 받아 함경북도 회령시 를 원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확인받았다. 아이는 엄마의 국적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 했는데(「국적법」 제2조제1항), 국내법에 의해서는 엄마 가 미혼인 터라 혼인 외 출생자가 되었다. 아이 아빠는 전처와 이혼 후 전처 자식을 혼자 키 우고 있다가 아이 엄마와 재혼한 것이었는데, 전처 자식 들을 아이 엄마에게 모두 맡겨둔 채 2006년경 외국국 적동포 1세 자격으로 대한민국 영주권을 취득하여 국내 에 들어왔고, 아이 엄마에게는 자리가 잡히는 대로 데리 러 오겠다며 시누이의 아이들까지 맡겨 놓고 시누와 시 동생은 물론 시부모들까지 모두 국내로 입국시켜 생활 터전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생활비를 보내지 않는 등 소홀히 하자 아이 엄마가 자신도 아이를 데리고 국 내로 합류하겠다고 했으나, 시누들이 “그럼 애들은 누가 키우느냐”, “딴생각하면 공안에 신고해 북송시키겠다” 며 협박해 꼼짝없이 발이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알아차리고 어 떻게든 그 수렁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 무렵 탈북브로커를 통해 탈북에 성공한 어머니와 외삼촌이 하나원을 수료하고 울산에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이 아빠와 시댁 식구들과 결별하고, 단독 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국내로 잠입하게 된 것이었다. 혼자지내며마음병든아이, 아빠꼭찾아주고싶어 나는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보통 얼마 를 주느냐고 물어보았는데, 한국 돈으로 4,000만 원가 량을 준다고 했다. 그렇게 거금을 들이면서까지 대한민 국에 들어올 이유가 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일단 한국 아이엄마는 자신이이용당한것을알아차리고 어떻게든그수렁에서빠져나가야겠다는생각에 그무렵탈북에성공한어머니와외삼촌이 하나원을거쳐울산에 거처를마련했다는소식을접하자마자, 아이아빠와시댁식구들과결별하고 단독으로아이를품에안고 국내로잠입하게된것이었다. 11 열혈법무사의민생사건부 법으로본세상
에 들어오기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고개를 약 간 옆으로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호기심이 들어 몇 가지 더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라서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 가 스스로 벌어야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겁 안 나 요? 북한보다 나아요?”라고 물었더니, 아이 엄마는 곧바 로 “훨씬 낫줘!”라고 답했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있어 서 식당에서만 일해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씩은 버는 데, 한 달 방세 50만 원 내고 나면 나머지 150만 원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억척스러운 것인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가 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것도 아픈 아이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막막해져 숨이 차올랐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삶의 희망이었으리라 생각해 보니, 자본주의에 물들 대로 물든 내가 너무 속 물이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 엄마는 국내에 들어와 먼저 정착한 어머니께 아이를 맡겨두고 대구직업학교를 시작으로 각지를 떠돌 며 돈을 벌었는데, 어머니나 외삼촌도 한국 사회에 적응 하기 힘든 처지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국내로 들어오던 무렵, 아이 아빠와는 영원히 이별 하고 어떻게든 혼자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생계를 위해 아이를 늘 집에 혼자 둔 것이 마음의 병을 들게 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술회했다. 아이는 평생 사진 속의 아빠 얼굴만 보고 자랐으 며, 마음속 깊이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방황하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중학교만 가까스로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 했다. 지금은 뚜렛장애 치료와 함께 향후 검정고시나 대 안학교 입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춘기를 겪으 며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아이의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껴져 더 늦기 전에 아빠를 찾아주 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전남편거주지역과핸드폰번호만알아요”, 서울에서이서방찾기 안타까운 사연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아이 아 빠는 어떻게 찾을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이 엄마는 국내 에 들어와 아이 아빠에게 한 번 연락해서 만난 적이 있 었는데, 당시 경기도 시흥에 거주한다는 말을 들었고, 아이 장난감과 동복을 소포로 부쳐온 적이 있었는데 ‘경 기도 시흥시 정왕동’까지만 기억한다는 것과 휴대폰 번 호가 전부라고 했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중국 호적관서에서 혼인증명 서와 아이 아빠의 인적사항 관련 서류를 받아와야만 소 송이 가능하다고 했다는데, 피고 특정 때문인 것으로 보 였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중국 당국에서는 적색 체류자 신분으로 북송 대상이므로 중국에 입국하는 순간 체포 되는 처지여서 현지 방문은 물론, 브로커를 통해서도 혼 인서류 확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목숨이 경각 에 달린 마당에 무턱대고 서류를 받아 오라고만 하면 나 12
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나는 “서울서 이 서방 찾기네?”라고 중얼거리며 아 이 아빠 이름을 기억하는 대로 써보라고 했다. 중국의 성명은 우리나라 성명처럼 세 글자이긴 하지만 그 한자 의 발음이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중국식 발음을 영 문으로 표기해서 조회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 아빠의 외국인등록증에 어떤 발음의 영문으로 표기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통신 3사 사실조 회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연신 한숨을 쉬는 내게 아이 엄마는 “된다고 말씀해주세요”라며 간곡히 부탁 했다. 나는 함께 온 아이에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와 판사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라고 시켜 놓고, 물끄러미 두 모자를 바라보며 아빠를 찾아주어야겠다고 맘을 먹 었다. ‘인지청구, 양육비청구, 성본변경허가’ 등병합해사건구성 사건의 구성은, 피고가 외국인이므로 「국제사법」 제41조제1항 단서 및 제45조에 따라 자의 상거소지법인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자의 부에 대한 「민법」 제863 조 인지청구를 주된 청구로, 제909조제5항 친권자 지 정, 제864조의2 양육 및 면접 교섭에 관한 사항의 부대 청구와 함께, 제781조제6항 자의 성과 본의 변경허가 비 송사건을 병합한 형태로 하게 되었다. 즉, △재판상 인지를 통해 아이의 가족관계등록 부에 공란으로 된 부란에 외국인 아버지를 기록하게 하 고, 성과 본도 모의 성과 본을 따라 밀양 박(朴)씨로 되 어 있는 것을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金)씨로, 본은 외국 의 지명을 따를 수 없으므로 국가정보원 소재 기초자치 단체 ‘안성(安城)’으로 변경해 줄 것과 △친권 및 양육권 은 아이 엄마가 갖는 것으로 하고, 이에 수반하여 과거 양육비로 월 50만 원씩 연간 600만 원의 10년간 소급 분 6,000만 원과 성년에 이를 때까지 향후 양육비로 월 100만 원의 정기급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 아빠가 재산을 모두 중국으로 빼돌리고 재혼한 배우자 명의로 모두 돌려놔서 현실적 으로 받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비관했지만, 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1조의3 운 전면허 정지 처분이나 제21조의4 출국금지 조치 등의 불이익으로 간접강제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사건은 2021.7.6. 피고의 성명과 주소를 알 수 없으므로 「가사소송법」 제13조제2항에 따라 대법원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인 서울가정법원에 2021드단128077 인지청구 등 사건으로 접수되었다. 그리고 소 제기와 함께 피고 특정을 위해 통신 3사 에 아이 아빠의 휴대폰 번호로 사실조회를 신청했는데, LG너플러스에서 “가입번호는 맞으나 명의자가 상이함 에 따라 정보제공이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 번호의 카카오톡 계정에서 보이는 근 황 사진의 아이 아빠 모습을 캡처해서 피고와 동일인임 을 소명하여, 명의자가 누구든 사용자가 소송 당사자라 타인의개인정보를탐색하는데 부담을느꼈는지법원이 보정명령을내려주지않았다. 하는수없이 법무부, 외교부, 정왕3동주민센터에 사실조회를신청하자 보름여만에보정명령이났다. 법원으로서도 아이엄마의간절한호소를 마냥외면하기는힘들었던것같다. 그보정명령으로인해드디어 아이아빠의실체가드러났다. 13 열혈법무사의민생사건부 법으로본세상
는 취지로 고객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문서송 부촉탁을 신청했으나, LG너플러스는 여전히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회신불가 입장을 재차 밝혀왔다. 휴대폰 가입자정보추적끝에 “아빠 찾았어요!” 이에 따라 “가족관계에 관한 진실 발견은 「헌법」 제36조제1항에서 천명한 국가의 보장 의무에 따른 것으 로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제1항제3호 ‘공공기관이 법 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자 비로소 가입자 정보를 회신받기 에 이르렀는데, 가입자 명의는 ‘만(萬)○○’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드러났다. 아이 엄마도 ‘만○○’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며 대포 폰인가 싶어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듯했는데, 주소 지가 ‘경기 시흥시 ○○대로 ○○번길(정왕동)’로 아이 엄마가 기억하는 아이 아빠의 주소지와 대략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휴대폰가입 명의자는 중국 한족의 보 편적 성씨인 ‘만(萬)’씨를 쓰는 귀화한 중국 동포인 아이 아빠의 재혼 배우자로 추정되므로, 가입자의 주민등록 번호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및 주민등록(등)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는 보정명령을 내려 달라는 보정명령 요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으로서는 투망식으로 타인의 개인정보 를 탐색하는 데 대해 부담을 느꼈는지 보정명령을 내려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카카오톡 캡처 영상과 과거 아이 아 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대조해 달라며 법무부 출입국외 국인정책본부 출입국심사 체류관리과, 외교부 재외동포 영사실 재외동포 여권과, 정왕3동 주민센터에 사실조회 신청을 하자 법원은 보름여 만에 그 보정명령을 내려주 었다. 법원으로서도 관서에 대한 사실조회가 굉장히 어 설픈데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 정인 아이 엄마의 간절한 호소를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 었던 것 같았다. 그 보정명령으로 인해 드디어 아이 아빠의 실체 가 드러났다. 예상대로 ‘만(萬)○○’의 기본증명서에는 2005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사 실이,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배우자가 중화인민공화국인 ‘김(金)OO’인 사실이, 혼인관계증명서에는 2012년 ‘김 (金)OO’와 혼인한 사실이 드러났고, 주민등록초본과 등 본에는 ‘만(萬)○○’과 ‘김(金)○○’이 ‘경기도 시흥시 ○ ○대로 ○○번길(정왕동)’이 같은 주소지임이 밝혀졌다. 아이 엄마는 “찾았어요, 찾았어요, 애 아빠 찾았어 요.”라며 뛸 듯이 기뻐하며 사무소로 들이닥쳤다. 통신 사 사실조회와 함께 법무부, 외교부, 정왕3동주민센터 등에 신청한 사실조회 회신이 그 후 속속 도착했는데, ‘관할사무 아님(법무부)’, ‘소관사항 아님(외교부)’이라는 회신이었고, 주민센터에서는 그마저 회신도 없었다. 아이아빠는다행히 자식을인정하고늦게나마 양육을책임지겠다고하니 그것만으로도소기의목적은 달성한것이라며 의뢰인의아쉬움을달래주었다. 이사건은오는2022.6.24. 변론기일을앞두고있다. 당사자간에 큰다툼이없는것으로보여 결과를낙관하고있다. 14
막연한 추정적 연결고리를 법원이 고민 끝에 받아 들인 것이 이 사건을 푼 가장 큰 열쇠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지청구 등 사건’ 재접수, 아이 아빠의뒤늦은후회 나는 곧바로 당사자표시정정신청서를 내고 법원에 서 이송 결정을 내자마자 ‘항고 포기서’를 제출해, 이 사 건은 2021.9.3. 수원가정법원 안산지원 2021드단56330 인지청구 등 사건으로 재접수되었다. 그리고 소장 부본을 받아본 아이 아빠의 그간 의 소회를 밝힌 답변서가 법원에 제출되자 법원은 2021.10.12. 수검명령을 내렸고, 법원에서 지정한 병원에 서 일정을 달리해서 아이와 아빠가 각자 유전자검사를 받기에 이르러 2021.11.11. 법원에 제출된 시험성적서에 는 친자일치 확률 99.999%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2022. 4. 29. 변론기일이 지정되었는데, 나는 의뢰인에게 아이를 데리고 함께 법정에 가라고 일렀다. 아이는 사진으로만 보던 아빠를 처음 보는 것이고, 아이 아빠도 몰라보게 성장하여 자신의 젊을 때 모습을 빼다 박은늠름한아들을보면감회가새로울것이라고했다. 새벽부터 차를 운전해서 안산지원까지 간 아이와 아이 엄마는 그날 아빠를 만나기는 했으나, 부인과 함께 온 터라 법정 앞 복도 민원인 대기석에서 데면데면하게 만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이 아빠는 강직성 척수 염을 앓고 있었고, 젊은 날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 이 병색이 완연한 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아이는 묵묵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침묵했고, 아 빠는 아이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어떤지 이런저런 말을 붙이고는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자기가 키우겠다며, 10년 전 그렇게 떠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원망과 회환의 한숨을 내 뱉기도 했다고 한다. 짐작건대 아이 아빠와 엄마 사이 젊은 날 가슴 아픈 애증의세월이흐르지못한채고여있는것같았다. 아이 엄마는 쓸데없이 지난 얘기를 꺼내고 재혼한 부인과 함께 온처사가못마땅하다며불만을쏟아냈지만, 나는다행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자식을 인정하고 늦게나마 양 육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 성한것이아닌가라며아쉬움을달래주었다. 이 사건은 오는 2022.6.24.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 는데,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을 제외하면 당사자 간에는 큰 다툼이 없는 것으로 보여 이들 앞에 놓인 국경의 벽 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2021드단128077 인지청구등 •수원가정법원안산지원 2021드단56330인지청구등 ※이글은부모와자의가족관계에관한일반인의이해를돕 기 위한 것으로서, 특정인이나 특정 국적의 명예를 훼손할 의 도가없음을밝힙니다. 15 열혈법무사의민생사건부 법으로본세상
세계의평화우리의평화 평화학 1호박사가쓰는평화이야기 정주진 평화갈등연구소장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상임위원 한국전쟁, 어떻게기억되어야하는가? 한국전쟁과전쟁범죄, 그리고평화를위한 전환 16
한국전쟁발발 70년의기억 이상이우리가알고있는한국전쟁에대한짧은역사 다. 그러나 3년이 넘게 계속됐던 전쟁과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 그리고 하루아침에 피란민이 되고 전쟁 한가운데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불안과고통의삶을몇마디말로설명하기는힘들다. 해마다 6월이면 한국전쟁은 다시 기억되고 기념된 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잠깐의 공 식적인 행사에 그치고 있다. 70년 이상이 지난 전쟁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고,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 들은 기억이 희미해지는 노인이 됐다. 한국전쟁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 특히 어린이, 청소년, 청년 등에게는 알고 있는 여러 전쟁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이 오히려 더 생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한국전쟁 의 기억이 거의 사라지거나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을 사회의 정체성 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이유 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기념하고, 그 역사와 기억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기억되고 반복적 으로 교육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한국 사회가 가 진 심각한 트라우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념은 다르 지만 북한은 동일 민족이었기에 ‘설마…’ 했는데 공격을 받았고, 그래서 해방 후 자리도 잡지 못한 국가가 초토 화되다시피 했다.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시 공격받지 않아 야 한다는 공포 섞인 트라우마 때문에 전쟁 이후 군비 강화와 국가안보는 문제 제기를 허락지 않는 성역이 됐 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증오와 경계가 사회적 신조처 럼 자리를 잡았다. 본래 같은 민족이었지만 이념으로 인해 갈라진 남 북한은 한국전쟁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다. 전쟁의 명분은 통일이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한 통 일을 원했고, 남한 역시 자본주의 이념으로의 통일을 원 1950년 6월 25일새벽, 북한이기습적으로남침을했다. 한국정부는예상치못한공격에그대로무너졌다. 북한군은 6월 28일에서울을점령했고, 파죽지세로남진을계속했다. 미군을중심으로한유엔군은 9월 15일 새벽에인천상륙작전을감행했다. 대다수병력을낙동강전선에투입했던북한군은제대로저항하지못하고 무너졌다. 9월28일서울이탈환됐고, 그후유엔군의북진이시작됐다. 유엔군은중국국경에까지진군했고, 한반도에서사회주의정권을제거하는목적을달성하는듯했다. 유엔군은10월25일, 국경도시인초산에서중국군과첫교전을가졌다. 중국은11월초에한국전쟁에공식적으로 참전했다. 중국의참전으로유엔군과국군은후퇴를거듭했고, 1951년 1월에는 38선이남까지퇴각했다. 2월에유엔군은38선을회복했고, 이후에는북진하지않기로하면서전선은교착상태에빠졌다. 유엔군을대표한 미국, 그리고북한과중국은전쟁종식을위한평화협상에합의했고, 7월 10일첫휴전회담이개성에서열렸다. 휴전회담중북한에군사적압박을가하기위한유엔군의공중폭격과휴전선일대에서영토를더차지하기 위한치열한교전이계속됐다. 휴전회담시작 2년이더지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조인됐고, 한국전쟁은 일단락됐다. 법으로본세상 17 세계의평화우리의평화
했다. 통일을 명분으로 북한은 선제적 공격을 감행해 전 쟁을 일으켰고, 남한은 북진 통일을 위해 38선을 회복한 후에도 전쟁을 계속하길 원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 북한은 계속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비롯 되고 고착된 증오, 그리고 군사적·정치적 대립이 이완되지 않은가운데계속통일을얘기하는건아이러니기도하다.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한기억, 사람 한국전쟁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비극이다. 그 의미를 생각한다면 겨우 일 년에 한 번 기 억하고 기념하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 전쟁과 관련해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 는 건 사람이다.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실종된 사람 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 각자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이다. 전쟁이 인류 보편 적으로 ‘악’으로 규정되고, 절대 일어나서도 승인되어서 도 안 되는 일로 여겨지는 이유 또한, 전쟁으로 인해 생 명의 손실과 삶의 파괴에 직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 국전쟁도 사람을 통해 기억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은 사람을 통해 기억되지 않고,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를 고착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침략에 맞 서 국가를 지킨 전쟁으로 기억된다. 동일 민족인 남북한 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한반도 전체가 파괴를 면치 못 했다는 점에서 민족의 비극으로도 기억된다. 물론 사람이 전혀 기억되지 않는 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운 국군의 애국심과 유엔군의 인 류애는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기억된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자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 라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로만 기억된다. 그들이 죽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겪었을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고 통과 공포는 기억되지도 거의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나 1950. 7. 26~29. 미군의무차별총격으로양민 300여명이사망한노근리사건현장 18
마 위안인 것은 현충일을 통해, 그리고 한국전쟁 기념일 을 통해 그들의 수고와 공로가 인정된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전혀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국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사망은 군인 사망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실종과 행방 불명은 9배 이상이나 됐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자는 공 식적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물론전쟁은항상인명손실을낳고, 민간인사망또 한 모든 전쟁이 야기하는 피해다. 그러나 군인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었음에도 사회 차원에서 기억되지 않는 건 문제다. 전쟁 중에 민간인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고, 민간인피해는국가가책임을져야하는일이기때문이다. 특히 기억해야할, 학살의피해자들 특히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은 학살의 피해자들이 다. 한국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기억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동안 곳곳에 서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고 그것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이었다. 한국을 돕겠다고 온 미군에 의한 학살도 있었다. 전쟁 후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청했지만, 한국 사회와 정부는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게 두려 워서였는지 소극적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당사 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밝혀진 사례들이 있지만, 여전 히 많은 사례가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1951년 2월의 거창양민학살은 국군이 저지른 대표 적인 학살 사건이다. 국군은 빨치산 또는 빨치산과 내통 했다는 이유로 주민 570여 명을 학살했다. 그중 327명 은 젖먹이부터 16세까지의 아이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이 때 학살당한 사람들은 빨치산이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둔 1950년 9월 10일, 미 해 병대는 월미도 일대를 폭격했고 주민 100명 정도가 희생 됐다. 미군은 민간인의 존재를 알면서도 폭격을 감행했 다. 피해자들의 사건 규명 요청으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실을 규명했고, 위령사업 의지원을권고했다. 학살후 58년만에이뤄진일이었다. 1950년 7월 26~29일, 충북 영동군 주곡리 주민들 은 마을을 비우고 떠나라는 미군의 명령을 따랐다가 노 근리 철교에서, 그리고 피신한 굴에서 미군의 폭격과 기 관총 사격을 받았다. 주민 가운데 인민군이 숨어있다고 판단한 미군 지휘부가 피란민을 모두 적으로 취급해 공 격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250~300명 정도가 목숨 을 잃었다. 바로 ‘노근리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도 피해 자들과 시민단체들의 끈질긴 조사와 요청으로 진상 규 명과 한국 및 미국 정부의 인정이 이뤄졌다. 한강 인도교 폭파로 수백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 었고, 경북 칠곡의 왜관철교 폭파로 역시 피란길에 올랐 던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외에도 폭격이나 전투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은 그 냥 군사 작전상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여겨지고, 죽은 특히기억되어야할사람들은 학살의피해자들이다. 한국전쟁후수십년이지났는데도 이들은여전히공식적으로기억되지않고있다. 한국전쟁동안곳곳에서 국군과경찰에의해학살이자행됐고 그것은국민을보호해야할 국가에의해저질러진폭력이었다. 한국을돕겠다고온미군에의한학살도 여전히많은사례가규명되지못하고있다. 법으로본세상 19 세계의평화우리의평화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밝혀지 지 않은, 그래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한으로 남은 많 은 사건이 있다. 특히 북한군이 진군하고 다시 퇴각한 1950년 7월 에서 10월까지 3개월 남짓한 기간에 한국 사회 곳곳의 마을들은 작은 전쟁을 치렀고, 많은 민간인이 학살로 목 숨을 잃었다. 학살은 북한군은 물론 한국 경찰에 의해서 도 자행됐다. 북한군의 진격으로 철수해야 했던 경찰은 철수하 기전좌익성향주민들을학살했고, 진격한북한군은그 에 대한 보복으로 우익 성향 주민들을 학살하곤 했다.1 무고한 민간인들이 좌익 또는 우익이라는 꼬리표가 달 려 목숨을 잃었다. 많은 민간인이 보호받지 못하고 후방 에서 학살됐지만 이들 또한 기억되지 않는다. 한국전쟁, 어떻게기억되어야 하나? 한국전쟁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이고, 아 픈 기억이다. 그런데 그 트라우마와 기억이 국가의 안위 와 안보를 위한 것에만 맞춰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전쟁 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무고하 게 희생됐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을 통해 기억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전쟁 같은 전쟁이나 무력 충돌 을 어떤 상황에서도 거부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기억할 때는 특별히 남북 관계, 그리고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 이 한반도에 비극인 이유는, 그로 인해 남북 관계가 돌아 올수없는강을건넜고, 상호증오가고착됐기때문이다. 정치적·군사적 대립이 일상화됐고, 군비 경쟁의 지 한국전쟁은여전히한국사회의 트라우마이고, 아픈기억이다. 그런데그트라우마와기억이 국가의안위와안보를위한것에만 맞춰져서는안된다. 오히려전쟁의소용돌이속에서 국가의보호를받지못한채 무고하게희생됐던평범한사람들과 그들의고통을통해기억되어야한다. 그래야한국전쟁같은전쟁이나무력충돌을 어떤상황에서도거부할수있다. 1) 박찬승 지음. 『마을로 간 한국전쟁』. 돌베개, 2010에서 사례들과 상세 내용을확인할수있음. 20
속으로 남북한 모두 전쟁 준비에 막대한 지출을 해왔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 돼 전쟁이 중단됐으나 그 이후 우리는 하루도 전쟁의 위 험 없는 일상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있다. 그러나 전쟁 후의 평화 없는 한반도 상황, 그리고 계속되 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과 정치적 대립, 그에 따른 불안한 상황에는한반도평화, 그리고전쟁이우리사회에가져온 상처에무관심했던우리의태도와대응에도책임이있다. 전쟁 이후 평화적 삶을 위해, 그리고 남북의 적대적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대화하고 교류하는 등 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전쟁은 여전히 남북 사이 증오와 불신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변치 않는 근거 로만 기억되고 있다. 또한 적대적인 남북 관계의 틀 속에 갇힌 한국전쟁은 여전히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 한 추모와 기억을 방해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새롭게 기 억되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한국전쟁을 전쟁으 로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은 침략국인 북 한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킨 전쟁으로 기억됐다. 그러다보니한국전쟁이전쟁의보편적인모습을가 지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가 족을 앗아가고 생활의 터전을 파괴했던 점은 잘 언급하 지 않았다. 곳곳에서 있었던 국군, 미군, 경찰 등에 의한 전쟁범죄는제대로규명되지않았고, 오히려국가를지키 는전쟁에서불가피하게발생한일로여겨지기도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설사 국가의 잘못이라 할지라도 정의의 기준으로 규명되고 사회적으 로 기억되어야 한다. 한국전쟁도보편적전쟁과같아 한국전쟁을 새롭게 기억하고, 인간 사회에 있어서 는 안 되는 보편적 전쟁으로 기억해야 남북한의 무력 대 결과 군사적 긴장을 감시할 수 있고, 전쟁을 승인하는 사회적 담론 확산을 막을 수도 있으며, 전쟁에 대한 민감 성도 높일 수 있다. 2013년과 2017년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 처해 있 었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가 문제를 제기했고, 군사적 긴장은 높아졌다. 유엔 제재에 대해 북한은 저항했고,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의 말 폭탄과 무력 시위가 이어졌다. 이때 국제사회는 한반도가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제사 회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긴장했지만, 정작 한 국인들은 태연했다. 일상생활을 유지했고, 물건 사재기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담력이 세거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건 아니었다. 다만 지속적인 남북 대립 과 반복적인 군사적 위기 상황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사는 누구도 한국전쟁 이후 하루도 군사적 긴장과 전쟁의 위험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 에 그랬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매일 자각하지 않았더라 도 말이다. 또한, 한국전쟁이라는사회적경험이있음에도불구 하고 전쟁에 민감하지 않고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 이라면전쟁도가능하다고생각했기때문이었을것이다.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을 새롭게 기억하기 위해 계속 고민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건 전쟁은 인간 사회에서 일 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고, 그 이유는 전쟁이 인간의 생 명을위협하고삶의터전을파괴하기때문이라는점이다. 설사 국익을 위한 전쟁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 고, 사실 가장 큰 국익은 국민 생명의 보호다. 한국전쟁 도 그런 파괴적 전쟁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한다. 무엇보 다 보호받아야 했지만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통해 기억되어야 한다. 법으로본세상 21 세계의평화우리의평화
1. 들어가며 현행 「가사소송법」은 시행(1991.1.1.)된 지 30년 이 상 경과하여 그동안 가사소송절차에 관한 규정의 불비 등으로 당사자 및 사건본인의 절차보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1 가사소송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당사자 등이 주 체적으로 관여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절 차 규정 등을 담은 「가사소송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제 20대 국회에 상정된 바 있으나 회기(2016~2020년) 만 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그 후 법무부는 법원행정처와 지속적인 협의를 거 쳐 일치된 의견으로 「가사소송법」 전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라고 한다)을 마련하여 지난 5.3. 입법예고하 고, 6.13.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최종 개정안을 확정,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가사소송법」의 체계와 절차를 정 비하고, 다른 절차 규정의 준용을 최소화하여 자기완결 적인 가사사건절차 기본법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 고 있으며, 미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를 위하여 미성년 자녀 양육 관련 소송절차 등을 ‘자녀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 특징이다. 2. ‘자녀중심’ 개정안의주요내용 ●목적조항의개정(안제1조) 개정안은, ‘미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를 법의 목적 에 추가하여 “이 법은 인격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 및 미 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를 위하여 가사에 관한 소송과 미성년자녀, ‘직접친권상실청구’ 등 소송능력확대된다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입법예고)의주요내용과향후과제 김원태 충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교수 · 법학박사 1) 이에관하여자세한것은, 김원태, 「가사소송법개정의방향과과제」, 『사법』 제27호, 사법발전재단, 2014, 3면이하참조. 22 주목! 이법률
복리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진술 청취를 생략할 수 있다(안 제20조 단서). ●미성년자의소송·비송능력의확대(안제28조, 제50조) 가사소송에서는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관점에 서 「민사소송법」과는 달리 미성년자의 소송능력을 확 대하였다. 미성년자는 의사능력이 있으면 가족관계 가 사소송사건의 소송행위를 할 수 있지만(안 제28조 제1 항), 원고로서 소의 제기, 그에 따른 제1심 소송행위[반 소에 대한 응소를 포함한다] 및 항소 또는 항고만 할 수 있다(안 제28조 제2항). 이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 아 미성년자를 대리하여 소송행위를 할 수 있으나(안 제28조 제4항 제1문), 법정대리인이 소송행위의 대리를 시작한 때부터 미성년자는 소송능력이 없는 것으로 본 다(안 제28조 제4항 제2문). 미성년자가 소송행위를 할 수 있는 사건과 법정대 리인에 의해서만 소송행위를 할 수 있는 사건이 병합된 경우에는 그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에 의해서만 소송행 위를 할 수 있고(안 제28조 제3항), 의사능력이 있는 미 성년자는 비송행위를 할 수 있다(안 제50조 제1항). 그렇지만, 미성년자는 ①상대방이 없는 가사비송 사건 중 부재자 및 실종에 관한 사건,부부재산약정에 관한 사건,상속에 관한 사건,유언에 관한 사건(안 제50 조 제2항 제1호)과 ②상대방이 있는 가사비송사건 중 부부의 권리 및 의무에 관한 사건, 양육비지급청구 사 건, 부양에 관한 사건, 상속에 관한 사건의 경우 법정대 리인에 의해서만 비송행위를 할 수 있다(안 제50조 제2 항 제2호 본문). 다만, 미성년자라도 부부의 동거·부양·협조에 관한 처분 사건은 법정대리인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비송행 위를 할 수 있다(안 제50조 제2항 제2호 단서). 또, 미성년자라도 자녀의 양육과 친권에 관한 사건 중 위 양육비 지급 청구를 제외한 면접교섭권의 처분 비송 및 조정에 관한 절차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규정하였다(안 제1조). ● ‘미성년자를위한절차보조인’ 제도의도입(안제16조) 개정안에서는 미성년 자녀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 하고, 재판절차에서 미성년 자녀를 조력할 수 있는 ‘절 차보조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가정법원은 미성년자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직권으로 또는 미성년자, 미성년자 의 4촌 이내의 친족의 신청에 따라 변호사의 자격이 있 는 사람을 절차보조인으로 선임할 수 있고(안 제16조제 1항), 미성년자의 연령과 심리상태 등을 고려하여 필요 한 경우에는 심리학·교육학·상담학·아동학·의학 또는 이 와 유사한 분야의 전문가를 선임할 수 있다(안 제16조 제2항). 한편, 미성년자에게 법정대리인 또는 특별대리인 이 있는 경우에도 절차보조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안 제16조 제3항), 절차보조인은 대화 또는 그 밖의 적당 한 방법으로 미성년자의 의사 및 그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조사하여 가정법원에 보고하거나 의견 을 진술할 수 있고(안 제16조 제4항), 재판절차에서 가 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미성년자와 동석하거나 그의 진 술을 보조하는 등 미성년자를 조력할 수 있다(안 제16 조 제5항). ● ‘미성년자의진술청취’ 절차강화(안제20조) 현행 「가사소송규칙」에서는 개별 사건별로 가정법 원이 13세 이상인 미성년 자녀만 그 의견을 듣도록 규정 하고 있으나(규칙 제18조의2), 개정안에서는 미성년자의 복리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재판(예, 친권자의 지정과 변경, 양육권자의 지정 등)을 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자 녀의 연령에 관계없이 진술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안 제20조 본문). 다만, 진술을 할 수 없거나 진술을 듣는 것이 그의 주목! 이법률 23 법으로본세상
또는 제한·배제·변경 사건, 친권자의 지정과 변경, 친권 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 친권의 상실, 일시 정지, 일 시 정지에 대한 기간 연장, 일부 제한 및 그 실권 회복의 선고, 법률행위의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의 상실 및 그 실 권 회복의 선고 사건도 법정대리인에 의하지 않고 스스 로 비송행위를 할 수 있다(안 제50조 제2항 제2호 본문 의 반대해석). 부모가 친권을 남용하여 자녀의 복리를 해치는 경 우 현재는 미성년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친권상실을 청 구하려면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야 하는데,2 개정안에 서는 미성년 자녀가 직접 법원에 친권상실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여 가사소송에서 미성년 자녀의 절차적 권리 를 강화하였다. ● 양 육공백 방지를 위한 관할 추가(안 제37조, 제120조, 제 144조) 개정안에서는 부부 중 한쪽 당사자만이 미성년 자 녀의 전부 또는 일부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 그들의 보 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을 혼인관계 사건의 관 할에 추가하였다(안 제37조제2호). 또, 자녀의 양육에 관한 처분(혼인 중의 양육비지 급 청구, 과거의 양육비지급 청구 포함)과 그 변경, 면접 교섭권의 처분 또는 제한·배제·변경 사건, 친권자의 지 정과 변경 사건 및 친권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과 친 권의 상실, 일시 정지, 일시 정지에 대한 기간 연장, 일부 제한 및 그 실권 회복의 선고 사건은 상대방의 보통재판 적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 외에 ‘사건본인의 보통재판적 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도 관할하도록 규정하였다(안 제 120조, 제112조). 그 밖에 개정안에서는 이행명령이 미성년 자녀와 관련된 경우 의무이행을 명한 판결, 결정, 사전처분, 조 정을 한 가정법원(고등법원이 판결, 결정을 한 경우에는 제1심 가정법원) 또는 양육비부담조서를 작성한 법원 소재지의 가정법원(규칙 제121조, 안 제144조제2항) 외 에 ‘미성년 자녀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도 관할하도록 규정하였다(안 제144조제3항 전단). 이는 모두 미성년 자녀의 양육 등과 관련된 사건에서 미성년 자녀의 양육과 보호의 공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가정법원의허가가필요한청구의취하(안제61조) 개정안에서는 가정법원의 후견적 역할을 고려하 여 일정한 청구의 취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 였다. 즉 미성년후견인의 선임 청구(제4호), 친권자의 지 정 청구(제6호), 친권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 청구 (제7호), 친권의 상실, 일시 정지, 일시 정지에 대한 기간 연장, 일부 제한 및 그 실권 회복의 선고 또는 법률행위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의 상실 및 그 실권 회복의 선고 청 2) 학대한부모와가까운친족은특별대리인으로부적절하고, 다른친족은특별대리인을맡지않으려해서실무상선임에어려움이있다고한다. 24
구(제8호)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취하할 수 있 다(안 제61조). ●조정전치주의대상의조정(안제127조) 현행법에서는 당사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사 항에 관한 사건도 조정전치주의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법 제50조), 당사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사 항은 조정전치주의의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개정안에서는 상대방이 있는 가사비송사 건 중 부부의 권리 및 위무에 관한 사건, 자녀의 양육에 관한 처분과 그 변경, 면접교섭권의 처분 또는 제한·배 제·변경 사건, 친권자의 지정과 변경, 부양에 관한 사건, 상속에 관한 사건만 조정전치주의의 대상으로 하였다 (안 제127조제1항제3호). ●사전처분에집행력부여(안제140조) 가사사건에서의 사전처분(법 제62조제1항, 안 제 140조제1항)은 일반 민사사건의 보전처분에 비하여 더 욱 긴요하게 작용하고, 특히 양육권 분쟁 등 일정 유형 의 가사사건에서는 심리가 오래 지속되는 특성을 고려 하여, 개정안에서는 심리의 원활과 분쟁 해결에 대한 실 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전처분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규정을 신설하였다(안 제140조제5항). ●미성년자녀인도청구의집행규정신설(안제145조) 개정안에서는 미성년 자녀 인도청구의 집행에 관 한 규정을 신설하였다. 집행법원은 집행절차를 실시할 곳 또는 실시한 곳을 관할하는 가정법원이 된다(안 제 145조 제1항). 집행법원은 집행을 허가할 것인지의 결정 을 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미리 당사자와 미성 년 자녀를 심문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권고하여야 한다(안 제145조제4항). 허가 신청에 관한 재판에 대하 여는 인도청구 집행의 채권자는 물론 상대방도 즉시항 고를 할 수 있다(안 제145제6항). ●양육비지급명령불이행자감치요건의완화(안제151조) 개정안에서는 양육비의 지급을 명령 받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신속하게 의무이행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 하여 양육비의 지급을 명령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 이 ‘30일 이내에’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현행 3기, 보통 3개월 이상, 법 제68조제1항제1호) 의무자에 대한 감치를 명할 수 있도록 감치명령의 요건을 완화하 였다(안 제151조제1항제2호). 3. 개정안의의미와향후과제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이번 「가사소송법」 전부개 정법률안은 전반적으로 미성년 자녀의 가사소송 절차보 장을 강화한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미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 그 자체가 「가사소 송법」의 목적은 아니며, 문장 구조 자체도 비문이므로 개정안 제1조에서의 ‘미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를 위하 여’는 ‘미성년 자녀의 복리 보호를 기본 이념으로 하여’ 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미성년자에게 소송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가정 법원의 허가를 받아 법정대리인이 소송행위의 대리를 시작한 때부터 미성년자는 소송능력이 없는 것으로 본 다는 규정(안 제28조제4항제2문)은 직권탐지주의를 채 택하고 있는 가사소송에서는 불필요한 규정으로 삭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가사채무 중 특히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이 행확보를 위한 여러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도 양육비 채무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는 권리자의 생존을 위한 최 소한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양육비 채무는 단순한 사적 인 채무가 아니라 공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관 점에서 양육비 이행확보의 문제는 국가에 의한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주목! 이법률 25 법으로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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