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10월호

ISSN 2233-4688 10 2023 vol .676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편집간사 김승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3년 10월 5일 통권 제676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 더블루랩 일러스트 혜영드로잉 정기간행물 등록 1965년 5월 7일 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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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출생에서 상속까지” 생활법률 전문가 법무사 보내세요

Contents 2023년 10월 vol. 676 40 44 법으로 본 세상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상속포기취소 즉시항고 인용 사건 (2022 수원가정법원 안양지원) 16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_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 22 주목 이 법률 _ 익명 출산 허용, ‘보호출산제 특별법’ 제정안(대안)의 의미와 과제 26 법률고민 상담소 _ 민사소송, 개인파산, 신탁 분야 30 새로 시행되는 법령 _ 「의료법」 일부개정(2023.9.25. 시행) 등 91 내가 만난 법무사 _ 은성기 법무사(경기중앙회) 동정·등록 82 협회는 지금 _ 협회 · 지방회 · 법무사 동정 86 법무사 등록공고 · 신규등록 90 편집위원회 레터 _ 각자가 보는 세상

법무사 시시각각 32 이슈와 쟁점 _ 대전고법 즉시항고 결정(2022.8.24.)과 가처분 신청 대리한 법무사의 송달영수인 신고의 효력 _ 공정위 ‘다크패턴 가이드라인’과 관련 「전자상 거래법」 개정안 검토 40 이슈 투데이 _ 서울가정법원·한국후견협회, 제2회 한국후견대 회 개최 등 _ 행정안전부, ‘2023년 지방세입 관계 법률’ 개정 안 발표 44 법무사가 사는 법 _ 구립송파극단 ‘주민배우’로 활동 중인, 김승호 법무사 48 성년후견 사례 _ 혼인무효소송 등 피성년후견인의 일신전속적 권리에 관한 소송 수행 사례 83 66 슬기로운 문화생활 08 미경유람 _ 북한강 노랑 코스모스 72 한국인은 왜 _ 한국사회의 혐오에는 ‘특권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다 76 문화路 쉼표 _ (시) 강아지풀, 황금사원 78 부자되는 책읽기 _ 최윤진, 『혼자서도 잘하는 SNS 마케팅』 80 소확행 건강관리 _ 술 끊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건강한 음주습관 5가지 현장활용 실무지식 50 맞춤형 최신 대법원 판례 요약 _ 2023.7.13.자 2019마449결정 등 54 법무현장 Q&A _ 토지수용 보상금 공탁 관련 공탁서 정정 및 공탁금 회수 등 협회 질의회신 5건 60 나의 사건수임기 _ 부모 모두와 친생자부존재 판결에 따른 성·본창설 및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66 유비무환, AI 이야기 _ 네이버가 칼을 뽑았다! 한국형 GPT ‘하이퍼클로바X’ 공개

북한강 노랑 코스모스 08 미경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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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법무사(경기중앙회) 남매간의 우애를 지키는 데는 얼마만큼의 상속재산이 필요한가? 상속포기취소 즉시항고 인용 사건(2022 수원가정법원 안양지원) ※ 이번 달부터 새로운 필자가 연재를 이어갑니다.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법무사가 실제 수임한, 이 시대 민초들의 생활사건 이야기

2023. 10 vol.676 ‘생활법률 전문가’를 모토로 국민의 크고 작은 법 률문제를 해결하는 법무사. 법무사가 가장 흔하게 접 하는 업무는 ‘상속’이다. 상속은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 없이 가족의 사망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법률 문제이므로, 국민 누구나 살면서 평생에 한 번은 꼭 거 치게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속으로 인해 남겨진 재산은 때때로 상속인들 사이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새롭 게 연재를 시작하며 소개하는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상속재산’을 둘러싼 의뢰인들의 이야기다. 4년 차 법무사로 아직 젊은 나로서는, 장장 1년여 에 걸쳐 한 편의 드라마같은 ‘스펙타클’을 경험하며, 많 은 것을 배우고 느낀 사건이다. 상속 협의분할, “남동생이 말을 잘 듣지 않아요.” 2021년, 안양에 사무소를 열고 1년여 남짓 지났 을 무렵이었다. 나이 지긋한 한 신사분이 사무소를 방 문했다. 고령의 어머니가 최근 돌아가시며 오피스텔 4 채를 남기셨는데, 4명의 자녀가 한 채씩 갖기로 협의가 되었으니 상속등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3채는 크기가 같고 1채만 크기가 좀 더 큰데, 본 인이 장남이라 돌아가신 어머니 수발을 다 하였기에, 큰 1채를 가지는 것에 대해 동생들이 협의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재산이 많은 집은 상속재산 때문에 많이들 싸우게 되는데, 참 사이좋은 형제들이라고 생각했다. 상속등기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조금 까다로운 점은 상속인 중 두 따님이 미국 시민권자여서 외국인 상속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여동 생들에게 내가 직접 외국인 서류에 대해 안내해 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열었다. 그리 고 나와 의뢰인, 두 따님 의뢰인까지 총 4명이 함께 외 국인 상속인에게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법무사님, ‘아포스티유’가 뭐예요? ‘영사인증’은 어떻게 하는 거라고요? 너무 어렵네. 오피스텔 한 채인 데, 그냥 안 받을까 봐….” 따님 상속인들도 모두 연세가 있다 보니 서류 준 비를 버거워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며 최대 한 귀찮음을 덜어드리기 위해 많은 궁리를 했지만, 쉽 지는 않았다. 장남 의뢰인도 부동산등기도 등기지만, 예금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다며 하소연이었고, 따님 상속인들도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위임하는 위임장에 공증을 받는 것,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 신청, 나중 에 처분할 때 필요한 이런저런 서류의 준비를 무척 부 담스러워했다. 결국 따님 중 맏딸인 의뢰인이 이참에 한국에 들 어갈 의사가 있으니, 한국에서 상속등기에 필요한 서 류를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면서 귀국을 결정했다. 한 국에서 상속등기를 한다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대 폭 간소해지므로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맏딸 상속인의 한국 입국까지, 몇 주간의 공백 동 안 나는 한국인 상속인들 서류부터 먼저 준비하기로 했다. 상속인은 장남 의뢰인을 포함한 한국 국적의 아 들 둘, 미국 시민권자인 딸 둘이었다. 상속재산분할협 의서를 먼저 작성해둔 후, 한국인 상속인들의 서류와 인감도장을 받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항상 협조적이었 던 장남 의뢰인이 곧바로 사무실을 방문했다. 상속등기를 진행할 때는 사무실을 방문하는 상 속인이 나머지 상속인들의 서류와 인감도장을 모두 취 합해 가져오거나, 인감도장을 가져오기 어려운 경우라 면 법무사가 작성해준 협의서에 상속인들의 도장을 모 두 찍은 후 가지고 오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이번 상속인들은 조금 독특했다. 장남 의 뢰인이 “동생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나에게 남 동생과 직접 연락해 볼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오피스 텔이 4채다 보니 보수도 적지 않은지라 나는 흔쾌히 의뢰인의 남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사건을 맡은 후 처 음으로 장남 의뢰인의 남동생과 연결된 날이었다. “왜 형만 오피스텔이 두 채예요?” “왜 형만 큰 호수를 갖나요? 형은 부모님 살아계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1

실 때도 재산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억울해요. 상속협 의를 이렇게 해도 되나요? 법무사님께서 형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서류와 인감도장을 갖고 방문해 달라는 나의 안 내에 남동생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 국인 따님들의 서류만 잘 준비하면 문제 없겠다고 생 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당시는 “등기는 법무사가, 협의는 상속인들이 직 접”이라는 모토로 일했던 때였던지라 “법무사가 협의 를 조정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협의는 상속인 분들께 서 직접 하셔야 해요. 형님께 잘 얘기해 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남동생의 상속 불만 에 대해 어떻게 협의했는지, 이후에 별다른 이야기가 없기에, 나는 협의가 잘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 들어오기로 한 맏딸 의뢰인이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국내거소신청과 인감등록을 한 후 협의하기로 했는데, 국내거소신청에 시일이 많이 걸린다고 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법무사님, 막냇동생이 상속포기를 하고, 내가 그 호수를 갖기로 했어요. 동생이 서류 준비를 어려워하 네요. 나한테 빚진 게 있는데, 그걸 팔아서 내 빚을 갚 는 셈 치기로 했어요.” 장남 의뢰인이 두 따님 상속인 중 미국에 남아있 는 막냇동생 상속인이 상속포기를 고려하고 있다며 내 게 전화로 알려왔다. “재산을 상속받지 않아도 된다면, 법원에 상속포 기를 신청하시는 게 등기서류를 준비하는 데 훨씬 간 단합니다. 부동산등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금도 찾 으셔야 하는데, 은행에 상속포기 결정문만 내면 간단 하게 처리가 되거든요.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하지 않으면, 부동산 소유를 하지 않더라도 서류를 준비하 는 건 거의 동일하고, 상속분할 위임도 별도로 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안내하자 장남 상속인은 상속포기 신청에 관심을 보였다. 다만 바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 ‘연장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법원에 “상속포기 연 장신청”을 해놓고는 말 그대로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 을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상속재산분할 위임보다 상속포기 위임이 훨씬 간 단하고, 그 양식이 전형적이기 때문에 장남 의뢰인은 막내 상속인의 동의를 받아 자신을 대리인으로 한 상 속포기 서류를 준비해 사무실로 보내주었다. 나는 상속포기신청을 해 결정을 받고, 그 내용을 반영한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재작성했다. 그사이 장 녀 의뢰인도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 준비를 모두 마쳤다. 드디어 거의 반년이 넘게 걸린 상속재산분할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상속취득세가 걱정이었지만, 상속인 중 외국인이 있는 경우에는 취득세 신고기간이 3개월 더 연장되어 9개월 안에만 납부하면 되기 때문 에 시점도 딱 알맞았다. 이제 드디어 상속등기를 할 차례가 되었다. 처음 상속등기 의뢰를 받았을 때 받은 서류들은 3개월이 지 나 사용할 수 없으므로, 장남과 차남 의뢰인들에게 서 류 준비를 다시 부탁드리고 인감도장을 날인하러 오시 도록 했다. 장남과 차남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해 연 락도 각자에게 하고, 도장도 각자 찍을 수 있도록 준비 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이람? 차남 상속인이 사무실을 방문해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보더니, “왜 형 만 두 채를 갖는 거예요? 나는 이런 얘기 들은 적 없어 요. 도장 못 찍어요.” 하면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12

2023. 10 vol.676 완전히 토라진 차남의 ‘상속재산분할심판’ 청구 그리고 얼마 후, 차남 의뢰인에게 연락이 왔다. ‘상속재산분할심판’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 가 일이 심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협의 는 당사자들이 한다”’는 나의 모토를 깨야 할 순간이었 다. 이제는 무조건 차남 의뢰인을 달래드려야 한다. 이 긴 시간 공들인 나의 사건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다. “선생님이 갖기로 한 오피스텔은 변동이 없으니 손해보시는 건 없습니다. 시간이 더 지체되면 상속취 득세 가산세도 내야 하고, 서로서로 손해입니다. 부동 산은 이대로 협의해 주시고, 좀 더 원하는 게 있으시면 형님과 잘 얘기해서 예금이나 다른 재산을 좀 더 받아 보시는 건 어떠세요?” 하지만 차남은 이미 단단히 토라진 상태였다. 사 태는 내 손을 떠났다는 걸 직감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선생님, 지금 4채를 1채씩 나눈 것은 비교적 공 평한 분할이라서 상속재산분할심판을 해도 이익이 그 렇게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토라진 차남은 심판 사건을 맡아주 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설득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결국 차남 의뢰인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 채 2021년 한 해가 저물고 말았다. 희망찬 2022년, 설날이 지나고 나는 장남 의뢰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법무사님, 동생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어요.” 사무실을 찾은 장남 의뢰인의 손에 들려 있는 것 은, ‘상속재산분할심판’ 소장이었다. ‘아뿔싸!’ 막내 의뢰인은 이미 상속포기를 했기에, 상속재산 분할심판 당사자도 되지 못했다. ‘큰일났다.’ 차남이 청구한 소장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니 기 여분과 특별수익분을 주장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결정 적으로 차남은 상속포기한 동생의 몫에서 자기 몫을 주장하고 있었다. 상속포기를 하면 그 상속분은 나머 지 상속인에게 원래 상속분만큼 나누어서 분배된다. 나와 장남 및 막내 상속인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 었지만, 상속포기를 하게 된 정황은 나, 장남, 장녀, 막 내 상속인 4명이 있는 단톡방에서 합의되었으니, 차남 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법적으로 틀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제야 ‘왜 차남 상속인은 단톡방에 참여를 안 하시지?’라고 처음 의문을 가지게 된 시점, 그러니까 장남과 차남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등기 대리인’을 떠나 이 상속협의가 원활히 되 고 있는지를 좀 더 면밀히 체크해 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협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속인이 있다면, 상속인 간의 의사소통에서 소외된 사람이 있다면, 그분의 의 사도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방법은 단 하나, 막내 상속인의 ‘상속포기 취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막내 의뢰인의 상속 포기를 취소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막내 의뢰인 에게 “차남분은 이 내용을 모르셨나요?”라고 물어보 니, 내가 상속포기 대리인을 장남분으로 기재해 위임 장을 보내드렸기 때문에, 자신이 포기한 법정 상속 지 장남 의뢰인은 미국에 남아있는 막내 상속인이 자신에게 빚진 게 있어서 상속포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차남 상속인은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보고 “왜 형만 두 채를 갖는 거예요? 나는 이런 얘기 들은 적 없어요. 도장 못 찍어요.” 하고는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3

분이 다른 상속인들이 아닌 대리인에게 귀속되는 것으 로 생각해 굳이 차남 상속인에게 얘기할 필요를 못 느 꼈다는 것이다. 장남과 막내 상속인은 “외국인이 부동산을 소유 하면 그 이후 매도나 세금 문제가 번거롭다고 해서 조 금 간단히 정리하려 한 것인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두 사람이 왜 그 런 오해를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 도 이해한다. 법률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국민들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결국 해결 방법은 막내 의뢰인의 상속포기를 취 소시키고 심판의 대상자로 참여시킨 후, 오피스텔 한 채를 상속받는 내용으로 결정을 받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상속포기 취소의 요건과 판례를 찾아보고, 막내 의뢰인의 상속포기취소가 인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의뢰인들에게 상속포기취 소 신청을 해보자고 강력히 권유했다. 하지만, 막내 의뢰인은 취소신청을 하지 않겠다 며, 그냥 상속포기를 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멋진 커 리어를 쌓아온 막내 의뢰인은 주변에 아는 변호사도 많고, 특히 장남 의뢰인의 딸인 조카도 변호사여서 ‘상 속포기취소'가 쉽지 않다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었다. 의뢰인을 돕기 위해 보다 간단한 상속포기 절차 를 권유했던 내 행동이 이런 파장을 몰고 온 것이 너무 분하기도 하고, 이런 결말로 끝나는 것은 결코 용납되 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좀 어렵긴 하지만, 제 책임도 있으니 최소 비용만 받고 신청해 드리겠다”고 의뢰인을 설득해 상속포기취소 신청을 하기로 했다. 판례를 살펴보니 상속포기취소를 할 때 ‘재산에 대한 착오’는 취소사유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 대신 ‘법률효과에 대한 착오’를 강조하기로 전략을 짰다. 상속포기취소 신청서에는 외국에 산 지 오래되어 서 상속포기의 법률효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상속 재산을 좀 더 간이하게 정리하기 위해 상속포기를 한 것 이며,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도 대표 상속인을 통해 납 부했다는 것을 강조해 작성했다. 그리고 원래 1채씩 상 속받기로 이미 합의되었던 내용을 주장하며 증거와 함 께 제출했다. 또, 변호사 조카가 상속인들이 카톡방에서 나눈 대화 중 상속포기취소에 도움이 될 만한 대화를 선별 해 팩트를 정리해 주었다. 나는 상속포기취소의 요건 에 맞게 이를 정리해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자 차남 상 속인 측의 상속재산분할심판사건 대리를 맡은 변호사 는 막내 의뢰인이 상속포기취소를 접수했다는 서류를 제출하고, 이 사건에 대한 결정 후 상속재산분할심판 을 해달라는 서면을 제출했다. 상속포기 취소 인용률은 단 10% 수준이다. 상대 측 변호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자신 이 있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초조했다. 정말 막냇동 생이 재산을 한 푼도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 우리 계획은 이게 아닌데…! 즉시항고로 결국 상속포기 취소 인용! 얼마 후,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전자소송 사이트 에 접속 중이었다. 법무사는 매일 전자소송 사이트에 서 송달문서를 확인하며, ‘승소 결정문’을 발견할 때 큰 희열을 느낀다. 이번 상속포기취소사건은 어떤 결정문 이 와 있을 것인가. 수능성적 발표, 대학합격 발표, 법 무사시험 합격자 발표만큼이나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 이었다. 그러나 송달문서에서 확인한 것은, 슬프게도 ‘기각’ 결정이었다. 막내 의뢰인은 상속재산분할심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상속포기취소’ 인용 경정 결정을 근거로 공동소송 참가를 할 수 있었다. 심판 결과는 원래 협의한 대로 오피스텔을 각자 1채씩 갖되, 장남이 차남에게 1,000만 원 정도를 지급해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4

2023. 10 vol.676 나는 장남과 막내 의뢰인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밖에 없었다. 의뢰인들도 워낙 승소율이 낮은 것을 알 고 있었기에, 그래도 고생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 다.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장이 날라온 날부터 나는 항상 이분들께 죄인이었다. 나라면 정말 법무사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 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들은 한 번도 내게 화를 내거 나, 원망을 하거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어 떻게 대처해야 할지에만 집중했다. 법무사 업무를 하면 서 가끔 연세 지긋한 의뢰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데, 이번에도 당신들의 인생에서 발생한 큰 이슈에 어른 답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의뢰인들에게 “즉시항고”가 가능하니 해보자고 했다. 어르신 의뢰인들은 이번에도 점잖게 승낙해주었다. 나 는 곧바로 항고 접수를 했다. 그렇다고 받아들여질지 는 미지수였지만, 나는 꼭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고가 받아들 여져서 “상속포기취소”를 인용한다는 경정 결정을 받 은 것이다. 나는 당장 이 소식을 의뢰인들과 상속재산 분할심판 담당 변호사에게 알렸다. 장남, 장녀, 막내 의 뢰인은 나에게 정말 잘되었다며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 인사와 격려를 아까지 않았다. 막내 의뢰인은 상속재산분할심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이 상속포기취소 인용 경정 결정을 근거로 공동소송 참가를 할 수 있었고, 심판 결과는 원래 협의 한 대로 오피스텔을 각자 1채씩 갖되, 장남이 차남에게 1,000만 원 정도를 지급해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처음 장남 의뢰인이 상담을 오던 날부터 이 결정 을 받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차남을 제외한 3분의 상속등기까지 완료해드리고, 기쁜 마음 으로 이 상속 사건을 완료하였다. 상속은 양보이고, 상식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상속은 나의 의지에 따라 발 생하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와중에 망인 의 재산에 대해서 각 상속지분만큼 상속이 이루어지 므로 각자의 처지에 맞는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 채무가 많은 상속인이라면 상속포기, 한정승인 을 적법하게 해야 하고, 재산이 있는 경우는 상속 협의 를 통하여 재산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상속인 간에 협 의가 원활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길이다. ‘과연 1,000만 원 때문에 모든 형제들과 원수가 되어야 했을까?’ 지금도 차남 의뢰인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그 사건을 대리한 전문가가 그분을 말렸어야 했다 고 생각한다. 가족을 원수로 만드는 사건은 맡지 않는 것이 옳다. 차남이 자기가 얻을 이익이 적은 것을 생각 했다면, 막내 의뢰인과 장남 의뢰인이 상속 포기의 법률 효과에 대해서 잘 알았다면 상속등기는 처음 노신사가 우리 사무소를 방문했던 그때 바로 완료되었을 것이다. 이 상속 분쟁으로 인해 잃은 것은 시간이고, 약 간의 상속취득세 가산세이며, 사랑하는 형제와 각자의 상속인들이 들여야 했던 법률 비용이다. 국민 모두가 ‘상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억울 한 일을 피할 수 있고, 법률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리 법무사들이 상속에 대해 국민이 잘 알 수 있도록 더 많 이 도와드려야 할 것 같다. 상속지식이 상식이 되는 날 까지.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5

登高 今 夕事 久 久是 天 长 위기의 시대에도 행복을 찾아가는 12가지 인문학적 성찰 ⑩ 유창선 ● 인문학 작가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 16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023. 10 vol.676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다시는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슬픈 현실이다. 폴 고갱의 그림을 봐도 그렇다. 고갱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은 늙어가는 길을 그렇게 하나의 긴 화폭에 담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인은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나이 든다는 것이 그렇게도 슬프고 괴로운 일이던가. 현실이다. 폴 고갱의 그림을 봐도 그렇다.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는 인생의 경로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시작인 맨 오른쪽에 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아기와 젊은 세 여인이 있다. 이어서 그림의 중앙에는 두 팔을 올려 과일을 따고 있 는 젊은이, 과일을 먹고 있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림이 끝나는 맨 왼쪽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이 고통과 절망에 찌든 모습으로 앉아 있는 노파가 있다. 고갱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은 늙어가는 길을 그렇게 하나의 긴 화폭에 담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 다보면 노인은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으 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나이 든다는 것이 그렇게도 슬프 고 괴로운 일이던가. 사람은 대개 나이 50이 되고 60을 넘으면 몸이 조금 씩 둔해짐을 느낀다. 신체에 있는 각 기관은 세월이 지나면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일종의 소모품이기에 병원 출입도 잦아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기분이 가 라앉게 되고 심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서는 무척 슬픈 일인 것은 사실이다. 내 몸이 전과 같지 않 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나 이가 들어 몸과 마음의 노화 현상을 겪 게 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사이클이다. 필자의 나이도 몇 해 전에 60을 넘어섰다. 그 뒤로는 책을 내고 언론과 저자 인터뷰를 하면 기사에 내 나이가 괄호 안에 나오는데, 글쎄 60이 넘은 숫자가 표기되곤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전까지 60대가 되는 일 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나이 를 밝히는 숫자가 그렇게 생소할 수 없 었다. 자신의 나이를 숫자로 받아들이 는 데는 심리적 적응이 필요했다. 나이 드는 것의 슬픔 지난해 십수 년 만에 이사를 했다. 이삿짐들을 정리하다가 옛날 사진이 담 긴 앨범들을 정말 오랜만에 꺼내서 들 여다보았다. 앨범을 펼치니 10살도 되 지 않은 내가 강아지를 껴안고 사진 속 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제법 귀 엽게 느껴졌다. 이제는 변색된 사진 속의 어린 내 모습이 아직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건만, 어느덧 나이는 60이 넘었음을 마음으 로부터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 었다.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 과 희망이 넘치고 용기가 넘쳐 나날을 새롭게 활동하는 한 청춘은 영원히 그 대의 것”이라는 사무엘 올만의 말이 있 다. 그렇게 젊음은 희망이고 용기이다. 그러니 그 시절이 끝나고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다시는 청춘으로 돌 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슬픈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7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면서 조심해 야 할 것은 자기의 생각에만 갇혀 고집 세고 완고한 노인이 되어버리는 일이다. 아마 우리 자신이 젊었을 때 많이 들 경험했을 것이다. 노인이 되어버린 어른들과 대화할 때면 그 고집 앞에서 좀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벽 같은 것을 느꼈던 기억 말이다. 어떤 노인들은 종 종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며 의견을 굽 히지 않으려 한다. 사람마다 경험은 다른 것이고, 경 험의 차이에 따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 해야 서로 간에 대화가 되는 것인데, 나 의 경험만이 절대적 기준으로 섬겨지면 서 고집스러울 정도의 집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늙어가면서 삶이 완성된다 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절대시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늙어가면서 겸손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내면의 완성을 향해 가는 모습이 다. 젊은 사람들에게조차 자기를 낮추며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는 세상을 넓게 껴안을 수 있게 된 노년의 힘을 보 여준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 의 옳음을 무턱대고 강변하는 것은 어 른답지 못한 일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 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 이 생각하지 못했던 깨침을 갖고 그들 과 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이를 무기 삼아 다 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것은 노년의 추함이다. 자기 고집에만 갇혀있는 사람은 자기 변화를 포기한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하 고집불통 늙은이의 집착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을 우울하고 슬프게만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 나의 아름다움은 나이의 숫자나 젊은 외 모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청춘 시절보다 더 무르익은 내 면의 성숙함이야말로 빛 바라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준다. 젊어도 추할 수 있고, 나이가 들고 늙어도 아 름다울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늙으면 발전이 멎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 숙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독일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 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만 있어도 평정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나이 듦에 맞서 싸우느라 모든 힘을 낭비하는 대신, 주름살에 새겨 진 삶을 자신 있게 내 앞으로 가져오고 싶다.”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 한 노력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만, 18

2023. 10 vol.676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67세의 나이로 사망 직전 집필 했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가운데서 죽음을 향해 늙어 가는 마음을 표현했다. “경주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마차를 잘 모는 법을 배운 들 무슨 소용이랴? 그때는 오직 어떻게 그 경기장에서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늙은이의 공부 는, 아직도 해야 할 공부가 남아 있다면, 오직 죽는 법을 배우는 것뿐.” 하지만 루소가 말한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 삶에 대 한 집착이나 삶의 허망함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루소 에게 “인내, 온유함, 체념, 청렴, 공평무사한 정의 같은 것들 은 자기 자신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자산으로서, 죽으면 가 치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계속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바로 이 훌륭하고 유익한 연구에 내 남은 노년을 바치고자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 자신의 진보를 통해, 최상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생에 발을 들여놓던 시절보다 더 덕성스러운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법을 배운다면 더 행복하리라!” 이렇게 이제까지 살아왔던 시간들 속에서의 모습보다 발전된 나의 모습으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장차 닥쳐올 죽음조차도 내 삶을 완성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니 나는 더 이상 변화할 것이 없다, 이 제 굳이 더 변화해서 무엇 할 것인가, 거 기에는 삶에 대한 이런 자포자기식 심 리가 깔려있다. 늙지 않는 영혼, 배우고 깨치려는 노력 더 이상 생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멈춘 것과 다를 바 없 다. 숨을 쉬고 심장은 아직 뛰고 있지만, 그의 삶에는 더 이상 아무런 자극도 울 림도 그리고 다짐도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 영혼이 살아있는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늙어가도 배우고 깨침을 얻으 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나 세상 다른 사람들의 얘기 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좋은 책과 말 들을 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하 면서 계속 깨치는 생활을 하는 것이야 말로 늙지 않는 영혼을 간직하는 길이 다. 요즘은 각 지역마다 지방자치단체 나 각종 기관에서 운영하는 장년 세대 를 위한 교육기관이 많이 있다. 필자도 그런 곳에 등록하고 요가 수업도 하고 성악도 배운다. 그림을 배 우러 온 사람들, 악기를 배우려고 온 사 람들, 인문학을 공부하려고 온 사람들 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롭게 무엇인가 를 배우고 익히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 에서는 새로운 에너지가 전해진다. 그렇 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 이가 든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더 이상 생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멈춘 것과 다를 바 없다. 영혼이 살아있는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늙어가도 배우고 깨침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나 세상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좋은 책과 말들을 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하면서 계속 깨치는 생활을 하는 것이야말로 늙지 않는 영혼을 간직하는 길이다.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9

젊음이 일생 가운데 불꽃 같은 시 기였다면, 더 나이가 든 후에는 그 격정 이후의 평화로움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우리의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 을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억압하면서 사는 경우 가 많다. 지금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너무 바빠서, 세상이 행복 하지 않은데 나만 행복하려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등등 여러 이유로 행복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누르면서 살아가 곤 한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정작 나를 위한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 고는,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본성이 요구 하는 대로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는 갈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야 본래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게 되었다 필자 또한 그렇게 새로운 경험을 했다. 투병을 하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 르며 다시 일어서던 시기가 나이 60을 막 넘을 때였다. 죽을 고비를 넘고 나니, 아직 몸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남은 인 생은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내가 원하던 삶이 어 떤 것인가를 돌아보면서 떠올렸다. 먼저 아내와 함께 제주에 가서 한 달살기를 했다. 여름철 휴가조차 제대 로 챙기지 못하며 정신없이 일하던 시 절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곳곳에 있는 좋은 길들을 찾아가 사람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존재다. 누구나 생물학적으로는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지만,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이제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삶의 막이 하나 내려지는 것일 뿐, 인생의 새로운 막은 다시 올라가게 된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 슬프지 않은 일이다 젊은 시절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채울 시간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음을 잃는 것이지만, 젊은 시절 에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기다린 다. 불편한 것들은 몸의 이곳저곳에 점차 생겨나지만, 행복 한 마음으로 자기 삶을 찾아가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사 람에게는 육체의 지배를 당하지 않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 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하던 일에서 물러서거나 은퇴를 하게 되어도, 그 대신 자신을 돌보며 삶의 여백을 새롭게 채 워갈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먹고사느라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일들에서 한발 비 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 이 그 이후의 생활일 수 있다. 우리는 젊은 시절 혹은 중년 시절에 대단히 무거운 짐 을 지고 살아간다. 젊었을 때의 열정이 갖는 아름다움도 있 지만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가족을 책임지느라, 혹은 사회 적인 여러 일들로 인해 정신없이 살아가게 된다. 자기를 찾고 돌보기 어려운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자 기 삶에 결핍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결국 잃어버린 자신 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때가 바로 인생 후반 기가 시작되는 장년의 나이이다. 그것이 우리가 일생을 살 아가는 패턴인지도 모른다. 20

2023. 10 vol.676 면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일하고 인생 후반부에 가서 그 결실 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한 코스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끝이 좋아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마지막까지 미지의 영역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평생 살아보지 못했던 고즈넉한 삶에 대한 설렘 같은 것이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설마하니 나이 60이 넘어서도 앞 으로의 삶에 대한 설렘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니 그런 마음도 가능함을 알 게 되었다. 그러니 인생이란 직접 거치고 겪어봐야 비로소 하나씩 알게 되는, 마지막까지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존재다. 누구나 생물학적으로는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지만, 자신이 마음먹 기에 따라서는 이제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몇 번의 삶을 살 기회를 가진 셈이다.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삶의 막이 하나 내려지 는 것일 뿐, 인생의 새로운 막은 다시 올라가게 된다. 그러 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 슬프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트레킹을 하고, 러닝 크루들과 함께 한강길을 따라 달 리기를 익혔고 마라톤 대회에도 난생처 음 출전했다. 이제는 정치가 아니라 인간의 영 혼과 감정을 다룬 예술이 좋아져서 각 종 공연과 전시회를 부지런히 다니는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건강을 지 키기 위한 운동을 즐겁게 하고, 아무런 목적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하고, 젊은 시절 아이들 키우며 전쟁 치르듯이 사 느라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내 것들이 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본시 살 고 싶었던 삶을 이제야 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실 하나하나의 것들은 대단한 것도 아니요 지극히 소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유 로 원하던 것들을 하지 못해왔다. 이제 는 자기 본성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들 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그러니 삶의 질이 젊고 건강했을 때보다 오히려 나아진 것 같다는 역설 이 가능해진다. 자기 인생을 그렇게 누 리고 즐기는 데 엄청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물론 나이 들어서 먹고사 는 것 자체가 힘든 환경에 처하면 그런 것조차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것들은 최소한의 환경만 되면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것 들이다. 인생 후반기에 자신이 살고 싶 은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젊 은 시절 부지런히 일하고 재산을 모아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노년을 맞았다 가 인생이 벼랑 끝에 몰리거나 무너지 는 모습들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어쩌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1

출생통보제는 유령아동의 예방을 목적으로 한 만큼 국가가 태어난 아동의 출생신고를 직접 관 리하는 제도다. 의료진이 출생기록을 14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지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 원은 이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한다. 지자체는 출생아의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 고, 그 결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7일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라고 독촉할 수 있다. 그럼에 도 출생신고하지 않는다면 감독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완결할 수 있다. 출생통보제 도입은 적어도 의료기관에서 출생 한 아동에 대한 출생 미등록 사태를 예방할 수 있 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출생통보제가 드리울 그늘, 제도 도입의 의도치 않은 효과도 우려되고 있 다. 출생통보제로 인해 위기임산부 등이 의료기관 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 ‘보호출산제’ 전격 도입의 배경 – 출생통보제와 위기임신 대한민국 국회에 ‘보호출산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14년 제19대 국회 때였으나, 그간 임기 만료로 폐기를 거듭해 오다 이번 제21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게 된 배경에는 지난 6월 30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하여 내년 7월 19일 시행을 앞두고 있 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이 있다. 의료기관에서의 출생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 기록이 없던, 일명 ‘유령아동’ 2,123명에 대한 보도 가 잇따르고, 미등록 아동에 대한 추적 끝에 두 구 의 아기 시신이 한 가정집의 냉동실에서 발견됨에 따라 출생신고되지 않은 ‘유령아동’에 대한 애도와 슬픔, 아동인권 사각지대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분 노가 출생통보제 도입을 가속화한 것이다. 익명 출산 허용, ‘보호출산제 특별법’ 제정안(대안)의 의미와 과제 위기임신 ‘보호출산제’, 취약 임산부 지원정책 우선돼야 허민숙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22 주목! 이 법률

예컨대 의도하지 않은 임신으로 고통받고 있거 나, 원치 않은 임신으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인정하 고 싶어하지 않는, 자녀 출산이 전혀 기쁘지도, 반갑 지도 않은 이들에게 임신은 그 자체로 자책과 비난 의 원인일 뿐이다. 출생통보제로 인해 자신의 신원과 출산 사실 이 그대로 공개되는 것이 공포스러운 이들은 의료 기관에서의 산전 검진 및 출산을 회피할 수 있다. 직 권등록제도 도입이 산모와 태아의 건강과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목이다. 2 보호출산제 - 익명출산 허용 및 생모·생부 동의에 따른 출생기록 공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보호출산제 는 위기임산부를 지원하여 산모와 영아 모두의 건 강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에 경제 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위 기임산부에게 국가가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하 고, 필요 서비스를 연계하도록 하였다. 상담 과정에 서 출산 및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가의 보호 하에 자녀를 무사히 키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상담에도 불구하고 임산 부가 끝내 자녀 양육을 희망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경우 보호출산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고, 보호출 산을 선택한 경우에는 비식별화된 정보로 진료기록 부를 작성하고, 출생정보 역시 생모의 가명으로 기 록된다. 산모는 출산 후 7일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 에 아동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인도하거나 지역 상담기관의 장에게 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 출생등록은 시·읍·면장이 하게 되고, 출생등 록 사실이 지역상담기관에 통보되면, 지역상담기관 은 출생기록을 밀봉하여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 한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출생아가 18세에 이르 면 자신의 출생기록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생모와 생부 모두의 동의가 있어 야 정보공개가 가능하다. 부모의 동의를 얻지 못하 는 경우에는 인적사항을 제외한 그 밖의 정보, 예컨 대 유전질환, 출산 당시의 경제적·심리적 상황 등이 공개될 수 있다. 3 해소되지 않는 논쟁 – ‘익명 출산할 권리 vs 태생에 대해 알 권리’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한국의 보호출 산제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프랑스의 ‘익명 출산(Anonymous Birth)’ 제도, 독일의 ‘비밀출산 (confidential birth, vertrauliche Geburt)’ 제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산 모와 아동의 건강을 보호함은 물론, 출생아 유기 및 영아살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적을 공유 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익명으로 출산을 원하는 산모는 의료기관에서 의료진의 조력을 받으며 안전 한 환경에서 출산할 수 있다. 출산 사실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전 검진을 포기하고 자 택에서 홀로 출산하는 위험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 해서다. 출산 직후 24시간 이내에 발생하는 영아 살해 가 대체로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홀로 출산하는 사례에서 발생할 우려가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 법으로 본 세상 주목! 이 법률 23 2023. 10 vol.676

다만, 익명성의 보장 정도에 있어서 두 국가 간 에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는 비밀출산을 하려는 산 모는 반드시 상담에 참여해야 하고, 상담기관에 자 신의 신상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모의 신상에 대한 기록은 밀봉되어 국가기관에 보관되나 자녀가 16세에 이르면 요청에 의해 모에 대한 기록을 열람 할 수 있고, 모는 자녀가 15세에 이르는 시점에서 자 신에 대한 정보공개를 반대할 수 있다. 이처럼 양자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가정 법원은 모와 자녀의 이익의 경중, 그 밖의 사안들을 고려하여 자녀의 열람권을 인정하거나 기각한다. 모 의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 자녀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임산부에게 신상을 포함하여 되도록 많은 정보를 남기도록 권유하되, 최종적인 판단은 임산부에게 맡겨두고 있다. 마찬가 지로 신상 등의 정보는 밀봉되어 국가기관(Conseil national)에 보관되고, 산모와 자녀 모두 이 기관을 통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법원 결정이 아닌 생모 의 의지에 따라 영구적인 익명성을 보장한다. 우리 나라의 ‘보호출산제’ 역시 생모와 생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부모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익명출산제와 유사하다 하겠다. 한편, 산모와 영아 모두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목적하에 익명출산을 보장하는 것이 아동의 “태생 에 대해 알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우려도 있다. 영아의 생존 보장을 위해 ‘익명으로 출산할 권 리’와 아동의 ‘태생에 대해 알 권리’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해당 사안은 제도를 도입한 국가 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만, 2003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생모가 익명 으로 남아있을 권리’를 우선적 권리로 보았다. 익명 출산제를 통해 태어나 입양된 38세의 Odiévre 씨 가 생모와 형제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국가(프랑 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바로 그 제 도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자의 생모를 알 권리’가 ‘익명 속에 남아있을 생모의 권리’에 우선하 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4 장애아 합법적 유기 등 ‘보호출산제’ 악용 우려도 한편, 보호출산제 도입이 아동유기를 양산하 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법안은 출산 이후 출생신 고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출산을 원하는 경 우, 출산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보호출산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안전한 방식의 아동유기를 허용하 고 있다. 미국 전역 50개 주에 모두 도입된 「safe haven law」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주정 부별로 출생 후 72시간~1년의 기간 동안 아동을 병 원, 경찰서, 소방서, 종교기관 등에 합법적으로 유기 할 수 있다. 아동학대 및 방임의 증거가 없다면 면책 규정 이 적용되어 아동을 유기한 부모에게 어떠한 책임 도 묻지 않는다. 위험한 곳에 유기되거나 살해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극단적 조치인 셈이다. 다만, 부 모에게 아이의 성(姓)과 의료기록을 남길 것을 권유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의 신원 등 이 국가에 의해 보관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장애아를 출산한 경우, 양육포기 를 손쉽게 결정하는 데 보호출산제가 악용될 수 있 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장애아 출산 등 양육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우, 신속하게 자녀의 양육을 포기하고 합법적으로 자녀를 유기하는 데 있어 보 호출산제가 일조할 것이라는 점에서 보호출산제 제 도 도입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면서 가지는 바람 중 하 나는 ‘아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잘 성장하는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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