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4월호

ISSN 2233-4688 04 2 0 2 3 vol.670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편집간사 김승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3년 4월 5일통권제670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더블루랩 일러스트 혜영드로잉 정기간행물등록 1965년 5월 7일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강남구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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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23년 4월 vol. 670 10 50 법으로본세상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한 젊은 농부의 토지거래허가절차이행청구사건 (2008. 서울서부지방법원) 16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_ 정치는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 22 주목 이 법률 _ 상속세 과세체계, 유산취득세 방식 전환의 쟁점과 과제 26 법률고민 상담소 _ 가사비송, 민사집행, 가족관계등록, 민사 분야 30 새로 시행되는 법령 _ 「행정기본법」 제정(2023.3.24. 시행) 등 91 내가 만난 법무사 _ 이경록 법무사(강원회)

법무사시시각각 32 이슈와 쟁점 _ 등기원인증서 공증제 도입의 문제점 - 「부동산등 기법」·「민법」 일부개정 발의안(철회)에서 _ 신탁 관련, 조세심판원 심판청구사건(2022지 0317)의 경과와 해결 _ ‘챗GPT’, 법무사 실무 활용법 44 발언과 제언 _ 법무사 업무범위 조항 위헌확인청구 기각결정 (2019헌마1235)에 대한 비판적 검토 _ 친생추정 예외 규정 추가, 「민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50 법무사가 사는 법 _ ‘법무사·워킹맘·세무사시험수험생·유튜버’ 1인4역, 진짜 열심히 사는 박선정 법무사 54 성년후견 사례 _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 지적장애인에 대한 한정 후견 활동 슬기로운문화생활 08 미경유람 _ 부여 궁남지의 잔물결 70 문화로 쉼표 _ (수상) 고종명의 복 72 한국인은 왜 _ 한국에는 왜 그렇게 ‘억울한’ 귀신이 많을까? 76 부자되는책읽기 _ 이현철, 『아파트 투자는 사이클이다』 78 소확행 건강관리 _ 업무 스트레스 풀어주는 3가지 운동처방 동정·등록 80 협회는 지금 _ 협회 · 지방회 · 법무사 동정 86 법무사 신규등록 · 등록공고 90 편집위원회 레터 _ 법무사의 봄은 오는가 81 80 현장활용실무지식 56 맞춤형 최신 대법원 판례 요약 _ 2022.12.29.선고 2017다261882판결 60 나의 사건수임기 _ 사망한 임차인 상속인들의 상속 포기로 인한 전세 권등기 말소소송 사건 _ 파산선고 전 채무자 사망에 따른 상속재산파산 절 차 속행사건

부여궁남지의잔물결 08 미경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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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게운이없는땅주인의 ‘한풀이소송전’ 한젊은농부의토지거래허가절차이행청구사건(2008. 서울서부지방법원) 유병일 ● 법무사(서울서부회)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법무사가실제수임한, 이시대민초들의생활사건이야기

2023. 04 vol.670 갑자기오른땅값에 “소유권이전못해줘” 매도인의소송제기 젊은 나이였지만, 바쁘고 삭막한 도시 생활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농업에 종사 중이던 김농부 씨. 젊은 이답게 농업을 보다 사업화하여 운영해 보고 싶었던 그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농지를 마련키로 하고, 공인중개사를 통해 쓸만한 토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주지와 가까운 경기도 파주시 토지 거래허가구역 내에 있는 농지를 매입할 수 있는 기회 가 찾아왔다. 김농부 씨는 곧 매도인을 만나 가격 절충 을 시도했다. 김농부 씨가 “젊은 나이지만, 농사를 짓고 싶다. 다른 일은 적성에 안 맞다”며 토지 매입 이유를 설명한 후 매수를 희망하자, 매도인도 “젊은 사람이 농 사를 지으려 하니 특이하다”며 매도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큰 잡음 없이 2008.1. ‘경기도 파주시 광 탄면 ○○리의 전 1,176㎡’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 었다. 중도금도 문제없이 지급되었다. 그런데 잔금을 지 급하기 전 문제가 발생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 있 던 매입 토지 주변의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매입 토지 (전) 근처로 도로가 개설된다고 하여 갑자기 토지가격 이 급상승한 것이다. 상황이 이리되니 매도인의 생각이 달라졌다. 김농 부 씨와의 매매계약을 조금만 늦게 체결했더라면, 훨 씬 비싼 값으로 토지를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금까지 받았으니 문제였다. 매매계약만 체결한 상 태였다면, 계약 시 약정한 대로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 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었겠지만, 중도금까지 받은 상태에서는 계약 해제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매도인은 억울한 생각에 변호사를 찾아가 계약을 해제할 묘안이 없는지 알아보았다. 변호사는 매매계약 을 체결한 농지가 투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토지거 래허가구역에 있으므로 방법이 있다고 했다. 즉, 김농부 씨의 매매계약은 토지거래허가를 잠 탈할 목적으로 체결한 계약이므로 매매계약은 무효이 고, 따라서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줘야 할 채무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김농부 씨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김농부 씨는 아닌 밤에 홍두깨 식으로 매도인에게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 “매도인이부동산팔려고해요” ‘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의뢰 매도인의 변심으로 소송을 당한 것이 황당하기만 했던 김농부 씨는 채무부존재확인소장을 들고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젊은 사람답게 인터넷을 통해 이 미 많은 정보를 알아보고 온 터라 단도직입적으로 가 처분금지 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매도인이 급등하는 시세보다 약간 저렴하게 토 지를 매각하려고 하는데, 이미 판매된 토지라는 것이 소문나서 처분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토 지가격이 급등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언제 처분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빨리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하고 싶습니다.” 필자는 김농부 씨가 건넨 계약서와 소장을 살펴 보았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계약을 체결한 경 우, 토지거래허가를 잠탈하려는 목적이 있으면 안 되 기 때문에 계약서만으로는 부족하고, 취득하려는 토지 가 농지니까 농업 목적으로 취득한다는 것도 소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지를 취득하면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면 처음부터 토지거래허가를 받 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토지거래허가를 잠탈할 목적 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소명할 필요가있다는뜻이었다. 그러자김농부씨는자신은농 업인으로 농지원부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아무문제가없으니바로가처분신청을해달라고했다. “그게 단순하게 말로는 안 되고, 자신의 말을 입 증할 증거가 필요합니다. 말만 믿고 해줄 거면 법원이 필요 없지요, 그냥 신청인이 결정문 만들면 되지….” 의뢰인들은 자신의 말은 당연하게 전부 진실이므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1

매매계약체결후중도금도지불되었다. 그런데잔금을지급하기전개발호재가 가시화되면서갑자기토지가격이급상승했다. 그러자매도인의생각이달라졌다. 계약을해제하고높은가격으로토지를 팔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중도금을받아 계약해제가불가능하자매도인은땅의 소유권을이전하지않기위해의뢰인을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제기했다. 로, 증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 래서 필자는 의뢰인들에게 늘 “말은 필요 없다,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되뇌곤 한다. 김농부 씨는 그제야 필자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물었다. 사실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문 사건이었다. 필자도 대법원 판례로만 보았을 뿐, 실제로 접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관련 법을 충분히 검토한 후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겠다”고 하고, 일단 돌려보냈다.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청구권’으로 피보전권리변경, 보정명령 김농부 씨가 돌아간 후 필자는 관련 법령을 찾아 검토를 시작했다. 그 결과, 김농부 씨의 거주지와 농지 의 거리가 당시 법령에서 규정(2008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9조제1항제2호)한 허가기준인 20km 이내였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농지를 취 득한 경우,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요하나 토지거래허 가구역이라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면 별도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을 필요도 없었다. “김농부 씨, 가처분신청을 해도 괜찮겠습니다. 농 업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모두 챙겨 서 사무실로 오세요.” 필자의 연락을 받은 김농부 씨가 잽싸게 임업후 계자증명과 농지원부 등의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방문 했다. 필자는 이 서류들을 첨부해 매도인을 상대로 부 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했다. 이미 매도인이 제기 한 채무부존재소송이 서울서부지방법원(처음에는 의 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진행되었으나 피고의 주 소지인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이송)에서 진행 중이었 으므로, 가처분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신청했다. 그런데 얼마 후 법원에서 보정명령서가 왔다. 피 보전권리와 법적 근거를 명확히 밝히라는 것이다. 무효 인 계약에서(토지거래허가를 받기 전이므로 유동적 무 효이고, 유동적 무효도 기본적으로는 무효다) 소유권 이전등기청구권이 발생할 수는 없으므로, 가처분신청 시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피보전 권리로 한 것은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청구권”으로 변 경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체결한 계약에 관 한 효력은 유동적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1991.12.24. 선고 90이다12243판결)와 “유동적 무효인 계약에 근 거하여 처분금지처분이 가능하다”는 판례(대법원 1998.12.22.선고 98이다44376판결)를 인용해 가처분 신청에서의 피보전권리와 법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한 보정서를 서둘러 제출했다. 12

2023. 04 vol.670 그러자 곧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중간에 보정 명령을 받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사 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김농부 씨가 불쑥 사무실에 나타났다. “법무사님, 글쎄법원에서이런서류를보냈어요.” 김농부 씨가 내민 봉투를 열어보니, 법원의 ‘제소 명령결정문’이 들어있었다. 김농부 씨의 가처분 사실을 알게 된 매도인이 제소명령을 신청한 모양이었다. 가처분신청에분노한매도인, 제소명령신청 제소명령은 가처분·가압류에 해당하는 보전처분 을 당한 채무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 하면 채권자에게 소송을 제기토록 함으로써 누구 말 이 맞는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법원의 제소명령결정문을 받은 이상 채권자인 김농부 씨는 소 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농부 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매도인이 제기한 소송이 이미 진행 중인데, 또 무슨 소송을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20일 전쯤 인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토지에 왜 가처분을 걸어놨 나며 다짜고짜 욕을 하고, 가만두지 않겠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 반협박을 하는 겁니다. 기가 막혀서!” 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소송을 하나만 하면 될 것 같지만, 두 소송은 서로 다른 소송이다. 매도인이 제 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매매계약이 무효이니 매 도인인 자신에게 채무가 없다는 소송이고, 제소명령에 따른 이번 소송은 김농부 씨가 매매계약은 유동적 무 효이니 매도인에게 토지거래허가신고의 절차를 이행 하라고 한 데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소송인 것이다. 그러나 소송에서 김농부 씨가 패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또, 가처분을 한다고 해서 토지를 사용하 지 못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매도인의 손해배상청구 운운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제소명령 에 따른 소장도 법무사님이 잘 써주세요.” 김농부 씨가 의뢰한 소장 작성을 위해 여러 자료 를 검토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처분신청 당시 법원에서 보정명령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만 일 가처분신청 없이 소송을 제기했다면, 매매계약이 유효라는 전제에서 “소유권이전등기 이행하라”는 소송 을 제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정명령을 통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토지거래허가를 받기 전 유동적 무효인 계약에서는 소 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없다”는 법원의 결론이 이 미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필자는 매매계약 유효를 전제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가 아니라 유동적 무 효를 전제로 한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이행청구의 소’ 를 제기하게 되었다. 역시나 생소할 수밖에 없는 소송이었으므로, 필자 는여러법령과자료를검토하여 “반소피고(본소원고)는 반소원고(본소피고)에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리 전1,176㎡에 대하여 2008.01. 매매계약에 따른 토지거 래허가신청절차를이행하라.”는청구취지를작성했다. 이미 채무부존재소송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별도 소송이 아니라 매도인이 제기한 소송에 결합하여 신속 히 분쟁이 해결되도록 반소를 제기했다. 제소명령이 있 는 관계로 검토를 오래 할 수 없어 반소장을 접수한 후 접수증명원을 받아 제소명령 사건을 접수, 제소명령에 따른 소송을 진행했음을 소원에 소명하였다. 다행히 변 론기일전보정명령없이무난하게소송이진행되었다.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3

억지쓰는매도인, 재판부 “그냥토지거래허가신청을하세요!” 소송의 사실관계는 전부 확정되어 있어 다툼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준비서면 등 재판부에 제출할 서류는 없었지만, 김농부 씨는 변론기일이 열려 재판에 참석했을 때마다 꼬박꼬박 필자의 사무실에 들러 재판 경과를 상세히 전해주었다. 김농부 씨에 따르면, 첫 기일에 재판부는 “힘들게 소송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중도금까지 지급한 상황이 니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해서 토지거래허가가 나오면 잔금을 지급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면 되고, 토지거래 허가가 안 나오면 계약이 무효이니 힘들게 재판할 이유 가 없다”면서, 매도인에게 토지거래허가 신청을 하도록 권했다고 한다. 이는 필자가 반소장에서 분쟁의 간단한 해결을 위해 제시했던 방법이다. 재판부도 토지거래허가신청 을 하면 될 일을 복잡하게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 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원고의 대리인이 무척 당황해하면서 “계 약이 무효이니 토지거래허가신청 없이 판결을 받고 싶 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재판부는 “그렇다면 심리는 하겠지만, 간단한 방법을 두고 복잡한 일을 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므로, 당사자를 잘 설득해 보라”며, 다 음 기일을 지정하고 첫 변론기일을 마쳤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재판부의 판단이 옳았다.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해보면 다 해결될 일을 굳이 재판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할 경우, 김농부 씨의 임업후계자증명과 농지원부 등이 있으므 로 토지거래허가가 날 것이 명백하므로 임대인이 억지 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기일에출석한김농부씨는재판부에서 “원고 측이 재판을 통한 분쟁 해결을 원하니 심리한다”면서, 피고인 김농부 씨에게 “계약 당시 정황을 알 수 있는 자 료를 제출해 주면 재판이 빨리 끝날 것 같다”고 말하고 는다음기일을지정한후, 바로재판을마쳤다고했다. 김농부 씨가 재판부의 태도에 불안감을 내비쳐 필자는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의 증언서를 제출해 보자고 제안했다. 계약 경위는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 사가 제일 잘 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김 농부 씨가 환한 얼굴로 공인중개사의 증언서를 가지고 나타났다. 증언서에는 김농부 씨가 처음 매도인을 만나 “젊 지만 농사가 적성에 맞아 농지를 취득하려 한다”고 농 지 취득 이유에 대해 말한 내용과 그에 대해 매도인이 “특이하다”고 말한 내용 등 당시 두 사람의 세세한 대 화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동안 여러 분쟁에서 다양한 제3자의 증언서를 받아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히 기술된 증언서를 받아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제3자의 증언서는 받아오는 것 자체도 힘들 뿐만 아니라, 분쟁 당사자의 마음에 맞는 자세한 증언서를 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김 농부씨가이런증언서를받아왔다는사실이놀라웠다. “공인중개사가 엄청 화가 났더라고요. 중개사가 저와 짜고 비싼 토지를 헐값에 처분하게 했다면서 매 도인이 엄청 항의를 하고, ‘너도 같은 사기꾼 한패’라며 매도까지 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제가 증언서를 써달라고 하니, 이렇게 당시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적 어 주었지 뭐예요.” 분노는 열정의 원천인 법이다. 필자는 공인중개사 의진술서를서증으로제출했다. 그리고얼마후변론기 일이 열렸다. 재판부는 원고 대리인에게 “재판은 이미 14

2023. 04 vol.670 한달안에토지거래허가를함께신청하도록하되, 누구라도협력하지않으면단독신청이 가능하도록하고, 토지거래허가여부에따라서 소유권이전등기를하거나주고받은계약금과 중도금을반환한다는내용의조정안에대해 화해가성립되었다. 예상대로 토지거래허가신청에서허가결정이나서 김농부씨는잔금을지급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마칠수있었다. 결론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의 변론은 무의미하 고당사자들이화해할가능성을주기위해다음기일을 지정하지만, 다음 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하겠다, 원고대리인은원고를잘설득해보라”고했단다. 다음 기일에 출석하기 전 사무실을 방문한 김농 부 씨는 매도인이 “변호사를 잘못 선임해 재판에서 지 게 생겼다, 너무 억울하다, 조정하겠다”고 했다면서 “재판이 오늘 조정으로 끝날 것 같다”고 낙관적인 전 망을 전해주었다. 누구를탓하랴, 그저운이없어서벌어진일일뿐 그러나 김농부 씨에게 마지막 변론기일의 결과를 듣지 못한 채 몇 달이 흘렀다. 마침 김농부 씨가 농업법 인에 대한 문의 전화를 했기에 당시 재판의 종결 결과 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재판부의 조정안이 나왔는데, 한 달 안에 토지거래허가를 함께 신청하도록 하되, 누구라도 협력 하지 않으면 단독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토지거래허 가 여부에 따라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거나 주고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이 조정안에 대해 양 당사자의 화해가 성립 되었다. 매도인은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했고, 예상대로 허가 결정이 나 김농부 씨는 무사히 잔금을 지급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었다. 김농부 씨로서는 난데없이 매도인의 한풀이 소송 전에 휘말려 애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지만, 어떻 든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매도인은 아직도 억울함에 사무치는가 봐요. 저만 보면 ‘법원도 사기꾼 편을 들어준다, 너무 억울하다. 법원에서 내 편만 들어줬어도 토지를 이렇게 똥값에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법원과 저 를 싸잡아 원망하고 있어요.” 김농부 씨는 승자의 여유를 보이며 웃음과 함께 말을 마쳤다. 매도인의 입장도 한편 이해는 되었다. 개 발계획으로 토지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간발의 차이로 엄청나게 오른 땅값만 생각하면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누구라도 탓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김농부 씨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법원이 불합리한 결정을 해서도 아니니,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저 매도인이 억세게 운이 없어 벌어진 일 이라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일 뿐이다. 그나마 법원이 라도 욕해서 분이 풀린다면 다행이라 해야 할까. 어떤 판결을 해도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에 게 욕을 먹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니,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법원 일지도 모를 일이다. ┃ 법으로본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5

위기의시대에도행복을찾아가는 12가지인문학적성찰④ 정치는 행복을위한 도구일뿐 유창선 ● 인문학 작가 happiness 16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023. 04 vol.670 ‘내생각은언제나옳고, 당신들의생각은 언제나틀리다’는태도로는 세상을함께살아갈수없다. 내생각이틀릴수도있고, 당신의생각이옳을수도있다는열린마음을 가져야서로간의이해와소통이가능하다. 그것이서로다른생각들의공존이다. 어떤 때는 우리들의 인간관계에서 정치가 가장 커다 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체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우리들 사 이의 관계를 좌지우지하게 된 것일까. 정치가 이런 식으로 까지 우리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뉴스가넘치는 SNS 세상의과잉정치화 물론 우리에게 정치는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서의 수많은 일이 바로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되기 때문이 다. 경제, 노동, 복지, 교육, 젠더, 외교, 문화 등 각 분야에 대 한 정책들이 어떻게 입안되고 결정되는가에 따라 우리 사 회의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20세기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관조 적 삶이 아닌 활동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살라”고 주문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렌트가 지켜본 세상은 암울했다. 전체주의는 1945 년에 무너졌지만, 그 잔재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뿌리 뽑힌 인간들이 잉여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생존에 만 매달린 채 정치를 잊고 있다. 그것은 사막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적 삶을 되찾는다면 인간성을 회 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렌트는 놓지 않았다. 아렌트는 우 리가 정치적 삶을 살아감으로써 사막이 되어버린 이 세계 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정치가무엇이길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족 혹은 지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의견 차이 때 문에 서먹해지거나 불편해지는 상황을 많이 겪어왔다. 오랜 친구나 동창들 간 에도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거북해 지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의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적 논쟁을 하다가 서로 관계를 끊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몇 년 전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 치면서 우리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 의 투쟁’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극심한 분 열과 갈등을 경험한 바 있다. 나라는 온 통 ‘친조국’과 ‘반조국’으로 쪼개져 서 로 손가락질하며 반목했다. 그 뒤로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인 간관계도 깨져버리는 일들이 당연시되 는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다. 선거 때마다 어느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 의 차이는,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 를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허망하게 만 들어 버린다.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7

100명의사람이면 100개의생각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물며 사람마다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 지는정치에관해서야두말할것도없다. 그러니 ‘내 생각은 언제나 옳고, 당신들의 생각은 언제나 틀리다’는 태 도로는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없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당신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서로 간에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 그 것이 서로 다른 생각들의 공존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정치적 삶 은 서로 다른 다원적 인간들 사이에서 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 의사소통 행위 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신념만이 옳다고 믿으며 정치를 적대와 증오의 감정으로 덮어버리는 광 경은 아렌트가 꿈꾸었던 정치적 삶과 는 거리가 멀다.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 해지면 아렌트가 말했던 의사소통 행위 는 불가능해진다. 이는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공동체의삶을피폐하게만든다. 움베르토 에코의 유명한 소설 『장 미의 이름』은 신념에 갇힌 인간이 불러 온 비극적 재앙에 관한 이야기다. 눈이 먼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전통적 교리 만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낡은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 학』 2권, 희극 편을 수도원 장서관에 숨 겨놓고, 그 책에 접근하는 젊은 수도사 들을 한 명씩 살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책에서 “웃 음은 우리 삶에 바람직한 것이며, 진리 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웃음을 악마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막상 정치의 결핍을 느끼 지는 않는다. 누구나 손에 쥔 휴대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시 대를 누리고 있다. 연령과 세대를 불문하고 정치 유튜브 방 송의 열렬한 시청자가 되었다. 누구를 지지하고 반대하든 저마다의 정치적 주장들이 차고 넘친다. SNS에라도 들어가 보면 사람들이 온통 정치에만 관 심을 갖고 사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과잉 정치화의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정치 무관심층의 문제보다 정치 고관심층의 문제가 한결 도드라 져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정치에 과몰입되어 여러 부작용 이 생겨난다는 사회적 우려가 커진 지 오래다. 신념에갇힌인간이불러온비극적재앙 우리는 왜 이렇게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참지 못하 는 것일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은 서로가 생 각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 고, 직업과 계층이 다르며 생활환경이 다르다. 18

2023. 04 vol.670 해가 다른 사람끼리 서로 원만하게 대화를 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런데 굳이 열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람들은 정치 적견해에관해서는좀처럼남에게설득당하지않는다. 아무 리 내 얘기가 옳음을 입증하려고 애를 써도,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누구에게 나자기가믿는것을확신하는확증편향이있기때문이다. 정치 얘기는 너무 열을 내지 말고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 공연히 좋았던 관계들을 해쳐 서로가 어색해지고 불 편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지인들과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은 소모적인 감정 소비만 낳고 끝날 가능성이 99%다. 그런데 정치에 과몰입하는 사람은 종종 거칠고 사나 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온순하고 예의 바르던 사 람이 정치 얘기만 나오면 과격해지고 거친 사람으로 달라 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SNS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나 인격 모욕적 악플을 다는 사람도 머리에 뿔 달린 사람 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경 우가 대부분이다. 한 개인으로서는 너무도 멀쩡한 사람이 어째서 정치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거칠어지는 것일까. 이는 정치가 갖는 집단적 속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문제다. 정치에 몰입하는 경우들은 대체로 어느 한쪽 진영이 나 편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속한 편이 정의이니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반면에 상대편은 심판해야 할 악마로 여기는 선악의 이분법에 갇히게 된다. 여기에는 내가 속해 있는 편에 대한 집단적 우월의식 생각하는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수도사들이 읽어서도 안 되고, 그 책이 세상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고 믿 는다. 그래서 절대적 진리에 대한 호르 헤의 맹신이 수도원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수도원 연쇄살인 사건의 살 해범이었음이 발각된 호르헤는 수도원 에 불을 지르고 최후를 맞는다. 불타버린 교회를 바라보면서 수도 사 윌리엄은 시종 아드소에게 말한다. “선지자를두렵게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 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대신죽게하는법이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지나친 믿 음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죽어가게 만 든 호르헤는 ‘가짜 그리스도’였다. 윌리엄은 진리를 과신하며 진리를 위해 죽는 자를 경계하라고 했다. 진리 에 대한 집착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이야말로 참된 진리임을 에코의 『장 미의 이름』은 말하고 있다. 타인에대한도덕적우월의식, 증오와차별의뿌리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서도 마찬가 지다. 이상하게도 정치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 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치적 견 정치에몰입하는경우는대체로 어느한쪽진영이나편에속해있는경우가많다. 내가속한편이정의이니까 반드시이겨야한다는신념은, 상대편을심판해야할악마로여기는 선악의이분법에갇히게한다. 여기에는내가속해있는편에대한 집단적우월의식이자리하고있다.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9

부족주의』라는 책에서 인간에게는 부 족 본능이 있으며, 이는 단지 소속 본능 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배제 본능을 겸한다고 말한다.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 면 우리의 정체성은희한하게도그 집 단에단단하게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 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없는데도외부인에게징벌적인 위해를 가하려 한다. 또한 집단을 위 해희생하며목숨을걸기도하고남의 목숨을빼앗기도한다.” 자신이 어느 진영에 속해 있음을 스스로 의식하는 사람들이 개인의 성 정과는 달리 거칠고 사나운 사람으로 돌변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이 나라는 ‘개인’ 을 압도하게 된다. 집단사고에 따라 나 는 그렇게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토록 온순했던 내가 아닌, 낯선 정치적 정치는우리의행복을위한도구이지 그자체가목적이되어서는안된다. 나의행복을책임질수있는것은 오로지나의마음이다. 정치의세계에서누가이기고누가지든, 내삶의 행복은 스스로가가꾸고키워나가야할일이다. 자기의내면을돌보며넓고깊은자아를만들어 간다면, 우리의삶은더튼튼해지고 행복해질수있다. 이 자리하고 있다. 샐리 콘은 저서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의식이 증오를 낳는다고 말한다. “나는 모든 증오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질화된 (왜곡된) 사고방식을전제로한다는것을배웠다. 체계적 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교묘하게 말살하면서 우 리 자신은 경건한 척 높이려는 우월성이 바로 증오의 근 본적인뿌리이다.” 우리는 크든 작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 리의 노골적이고 은밀한 편견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끊임 없이 관찰하며 걸러내고 있다는 것이 샐리 콘의 진단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우월의식은 자기 자신의 오만과 자만을 낳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증오를 낳게 되는 위험한 심리 기제다. 인간의 ‘부족본능’, 집단을위해목숨을걸기도빼앗기도 여기서 ‘우리 편’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대편 을 배제하는 정치적 기술이 사용된다. 정치학자 에이미 추아는 집단 본능을 분석한 『정치적 조너선하이트 『바른마음』 20

2023. 04 vol.670 승리를 위해, 내가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패배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기도 한다. 물론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는 시 민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했다. 정치를 정치인들만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여 발언하고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는 한 단계 발전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정치에 대한 지나친 몰입으로 인해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고 사람들의 인성이 파괴되는 광 경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정치를 말하면서 공존의 정신은 사라지고증오의마음만남은모습들을많이보게된다. 하지만 내가 증오의 마음에 갇혀버리면 누구보다 나 의 삶이 먼저 황폐해진다. 지금 이 시간은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는다. 골방의 정신세계에 갇혀 정치적 미움과 질투와 증오 의 싸움을 하고 있을 시간에 좋은 길을 찾아가서 마음껏 걸어 보시라. 세상이 달라 보이고, 내 삶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정치는 우리의 행복을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 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오 로지 나의 마음이다. 흔히 정치가 나의 행복을 보장해줄 것처럼 매달리지 만, 막상 정치가 우리의 삶을 크게 개선한 경우를 경험하지 못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내 삶의 행복은 스스로가 가꾸고 키워나가야 할 일이다. 젊었을 때 세상에 대해 뜨거운 정념을 갖고 격정적이 었던 사람도 나이 들어 자기를 돌보고 마음의 평온함을 찾 고자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말년에 이르러 자기를 돌보는 ‘자기 배려’의 삶을 강조했던 철학자 미셸 푸코가 그 러했다.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그런 삶의 태도를 세상 으로부터의 후퇴나 철수라고 보면 일면적인 해석이다. 정치 적 삶은 단순히 정치에 매몰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 한 정치적 삶은 내면에서의 정신적 삶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기의 내면을 돌보며 넓고 깊은 자아를 만들어 간다 면, 우리의 삶은 더 튼튼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아울러 그런 사람들이 이끄는 정치라야 비로소 합리와 이성이 인 도하는 정치가 될 수 있다. 자아가 만들어지고 타인에 대한 증오 와 혐오의 언어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 온다. 조너선 하이트도 『바른 마음』에서 편싸움 속에서 눈이 멀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도덕은사람들을뭉치게도하고 눈멀게도한다. 도덕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 은 결국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편을 갈라 싸우게 한다는 뜻이다. 그 렇게 편이 나뉘면 우리는 매 싸움에 이 세상의 운명이라도 걸린 듯이 서로 이를악물고싸운다. 도덕이 우리를 눈멀게 한다는 것 은, 결국 우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 실을보지못하게된다는뜻이다. 각편에는저마다좋은사람들이 있고, 그들 이야기 중에는 뭔가 귀담 아들을것도있다는사실을말이다.” 문제는 그 도덕이 인간의 보편적 도덕이 아니라 어느 한 진영의 이익을 위한 도덕이라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그렇게 진영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러 나 내가 나를 대표하지 못하고 집단이 나를 대표한다면 내 삶은 허수아비와도 같다. 정치는행복을위한도구일뿐, 목적이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목숨을 걸 다시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1

접적으로 조정하고, 소득재분배 기능 면에서 소득 세의 기능을 보완 강화하는 사회 정책적 의의를 갖 는 조세로 이해되어 왔으며2, 출발점의 평등을 지향 하기 때문에 강한 당위성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5단계 누진세율 구조로 과세표준 1억 원 이하이면 세율 10%, 1억 원 초과 5 억 원 이하이면 20%, 5억 원 초과 10억 원 이하이 면 30%, 10억 원 초과 30억 원 이하이면 40%, 30 억 원 초과이면 50%가 적용된다. 직계 상속에 대한 최고세율 50%는 OECD 국 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와 같 은 과세표준 구간 및 세율은 2000년 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상향한 이후 20년이 넘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 상속세의의의와과세현황 상속세는 자연인의 사망을 계기로 무상으로 이전되는 재산을 과세물건으로 하여 그 취득자에게 과세하는 조세로 우리나라는 1950년 도입하였다. 상속세 제도는 국가의 재정수입 확보라는 일 차적인 목적 이외에도 자유시장 경제에 수반되는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 기 위해 국가적 규제와 조정들을 광범위하게 인정 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의 헌법 이념에 따라 재 산상속을 통한 부(富)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 화하여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 적이 있다.1 상속세는 증여세와 함께 부의 집중 현상을 직 상속세과세체계, 유산취득세방식전환의쟁점과과제 상속세,상속인각자취득한 상속재산에부과한다 임재범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변호사 22 주목! 이 법률

상속세 과세표준은 피상속인의 모든 상속재산 의 가액에서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 상속인에게 증여한 사전증여재산가액 등을 가산한 상속세 과세 가액에서 상속공제액을 차감하여 계산한다. 상속공 제로 일괄공제 5억 원과 배우자 상속공제 5억 원 등 을 공제받을 수 있다. 즉, 상속인으로 배우자와 자녀가 존재하는 경 우 기본적으로 10억 원을 상속공제받을 수 있어 적 은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1997년부터 현 재까지 동일한 액수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고 부동산 등 자 산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하여 상속세 세수는 2021년 6.9조 원으로 10년 전보다 5.8배 증가하였고, 상속 세 과세자 비율은 최근 10년간 2%대를 유지하였으 나 2021년 3.7%로 크게 높아졌다. 2유산취득세로의상속세과세체계전환논의 기획재정부는 2022년 10월,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용역에 착 수하였고, 유산취득세 전문가 전담팀을 구성하여 현재 회의를 지속하고 있다.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 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2019년 2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상속세 과세 방식은 유산세 방식과 유산취득 세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 이 남긴 유산총액의 이전을 과세물건으로 하여 피 상속인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이고, 유산취득세 방식은 재산의 무상이전 취득자(상속인, 수유자 등) 의 취득재산 가액을 과세물건으로 하여 상속인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의 모든 상속재산을 상속 세 과세대상으로 정하여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과세하고 있다.3 한편 증여세 과세체계는 무상으로 이전받은 재산 등에 대하여 수증자에게 증여세를 과세하는 취득과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상속세와 과세체계가 상이하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①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 인 각자가 취득하는 상속재산의 크기에 따라 세액 이 결정되나,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세액이 결정되어 상속인별 담세력을 고려 하지 못하여 응능부담 원칙에 어긋나며, ②과세체 계 정합성을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 과세체계를 유산 취득세 방식으로 일치시킬 필요가 있고, ③상속세를 부과하는 OECD 23개국 중 독일, 프랑스, 일본 등 19개국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국제적 동향 등을 감안하여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전환하는방안을검토중인상황이다.4 3유산세와유산취득세방식의비교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의 논거는 아래와 같다. ①유산세방식은부의소유자가스스로이를상 속인 등 많은 사람에게 분산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이 전혀없지만, 유산취득세방식은부를분산할수록상 1) 헌법재판소 1997.12.24.선고 96헌가19결정 2) 임승순, 『조세법』, 2017. p.786 3) 대법원 1977. 7. 26. 선고 75누184 판결, 대법원 1981. 9. 22. 선고 80 누596 판결 등 4)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전문가 전담팀’ 첫 회의 개최」, 2022.10.14. ┃ 법으로본세상 주목! 이 법률 23 2023. 04 vol.670

속세부담이적어져부의분산유도기능에충실하다. ②유산세방식은상속인들이상속받는재산크 기에 관계없이 동일한 한계세율을 적용하여 응능부 담원칙에반하지만, 유산취득세방식은개별상속인 이 취득한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므로 응능부담의 원칙에충실하다. ③유산세방식은미성년자·장애인·배우자공제 등사회정책적고려에의한인적공제효과가그러한 공제 사유가 없는 상속인들에 대하여도 상속세 부담 경감의 혜택이 부여됨으로써 공제대상인 상속인에 게는그혜택이미미하게돌아가는문제점이있는반 면, 유산취득세방식은상속인각자의인적공제사유 에따른공제액을각각차감하기때문에공제효과가 직접적으로귀속된다. ④고액재산가가재산을미리나누어서사전증 여하면수증자가취득한재산에대해증여세로만과 세되지만, 상속개시이전 10년이내증여받거나상속 되는 경우 유산총액 기준으로 과세되는 문제가 있어 상속세와 증여세의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 로일원화하는것이필요하다. 반면, 유산세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유산세방식은피상속인의생애기간중형성 한재산을결산하는점이있으며, 상속인별취득분을 확인할필요가없어세무행정의집행도용이하다. ②유산세방식은유산취득세방식에비해세수 생산 능력(revenue producing ability)이 더욱 크기 때문에상대적으로많은세수를확보할수있다. ③유산취득세방식의경우상속재산분할이지 연되면세액확정이늦어지는문제가발생할수있으 며, 유류분청구소송등분쟁으로인하여상속재산이 미분할될수도있다. ④ 유산취득세 방식은 유산의 위장분할을 통해 조세를 회피할 우려가 있으며, 이를 모두 적출하는 것은현실적으로어려운문제가있다. 정리하자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유산취득자의 개인적 담세력에 대응하여 합리적으로 과세할 수 있 어 공평과세 이념에 적합하고, 상속인들 사이의 상 속재산 분할을 촉진시켜 부의 집중억제에 유효하다 는 장점이 있으나, 세 부담의 감경을 도모하기 위해 허위의 분할 신고가 행해질 우려가 있고 세무 집행 에 부담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4 유산취득세방식전환의쟁점과과제 상속인 각자가 취득한 상속재산에 상응하는 상속세를 부담하는 것이 응능부담 원칙에 부합하 며, 부의 분산을 촉진할 수 있고, 상속인의 인적 특성에 따른 인적공제의 효과가 해당 상속인에게 직접 귀속된다는 점에서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 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것 이다. 특히 금융실명거래의 정착과 부동산거래 신고 제도, 해외금융계좌·해외부동산 신고제도 등에 따 라 과세 기반이 구축되었고, 세무 행정이 크게 발전 하여 상속재산을 조사하여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 는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위장 분산을 포착하지 못 할 우려나 세무 집행의 부담도 감소하였다. ●상속세율낮아져상속세부담의감소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 하는 경우 상속세 과세제도가 전면 개편되는데, 가 장 큰 변화는 각각의 상속인이 취득한 상속재산의 24

가액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산정한다는 점이다. 피상속인의 모든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 는 현행 유산세 방식에 비하여 과세표준이 감소하 고, 이에 따라 적용되는 상속세율이 낮아져 상속세 부담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공동상속인의 수가 많고, 상속재산이 많이 분할될수록 세 부담 감소폭 이 커지기 때문이다. ●배우자상속공제등상속공제제도개선필요 또한 유산취득세 도입 시 상속공제에 따른 세 부담 감소 효과가 해당 상속인에게 직접 귀속된다 는 점을 감안하여 배우자 상속공제, 미성년자·장애 인 등 인적공제, 일괄공제 등 상속공제 제도를 개선 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 상속은 세대 간 부의 이전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생존 배우자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 여 배우자 상속공제를 확대하여 상속세 부담을 완 화할 필요가 있으며, 미성년자·장애인 등 인적공제 는 인적 사정 및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여 공제액을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 일괄공제는 인적공제 적용 간소화 및 상속세 부담 격차 완화 등을 위해 도입되었는데, 상속인 각 자가 취득한 재산에 대하여 상속인별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에서는 이를 유지할 필요성이 크다 고 보기 어렵다. ●상속세미신고및조세회피방지방안의검토 만약 상속인이 상속재산 미분할 등을 이유로 상속세를 신고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법정상속분 에 따라 상속재산을 취득한 것으로 보아 상속세를 과세하되, 협의분할이 이뤄지면 이를 경정할 수 있 도록 함으로써 상속세 과세가 곤란한 상황이 발생 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속재산의 위장분할을 통한 조세회피 를 방지하기 위하여 과세관청의 입증 책임을 완화 하는 추정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 이 있다. ●상속세연대납세의무의폐지및과세표준세율등조정 한편, 상속세 연대납세의무는 유산세 방식에 서 비롯된 것으로 유산취득세 도입 시 취득한 상속 재산에 대하여 각각의 상속인이 별개의 상속세 납 세의무를 부담하므로 원칙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상속공제 조정 수준, 상속세 실효세율 과 납세자의 세 부담 수준 및 상속세수의 변화 등을 고려하여 상속세 과세표준 기준금액 및 세율을 조 정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과세제도전면개편에따라증여세제도변화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 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상속세 과세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으로, 이에 따라 상속세의 보완세 역할을 하는 증여세에서도 증여재산 공제 등이 함께 개선되어 상속·증여세제가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유산취득세 도입을 통해 응능부담 원칙에 부 합하는 공평과세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산취득세방식은유산취득자의 개인적담세력에대응한합리적과세가 가능해공평과세이념에적합하고, 상속인들사이의상속재산분할을촉진해 부의집중억제에유효하다는장점이있으나, 세부담감경을위한 허위분할신고의우려가있고 세무집행부담이커진다는단점이있다. ┃ 법으로본세상 주목! 이 법률 25 2023. 04 vol.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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